간접 경험의 즐거움

햇빛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 영화 <만남의 집>

새 날 2025. 12. 2.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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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2번 수형자 미영(옥지영)이 모친상을 당했다. 하지만 그녀는 귀휴(교도소 복역 중 수형자가 일정 기간 휴가를 얻어 교도소 밖으로 나오는 제도)를 얻지 못 해 장례식장에 다녀올 수 없다. 딱한 사연을 전해 들은 교도관 혜림(윤혜리)은 미영을 대신해 함께 장례식장에 다녀오자며 주임인 태저(송지효)의 옆구리를 찌른다. 교도관으로서 자신이 담당하는 재소자와 사적으로 접촉해선 안 된다는 원칙을 누구보다 잘 아는 태저. 주저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하지만 결국 혜림의 제안에 따른다. 

 

밤 늦은 시각 장례식장에 도착한 두 사람, 빈소는 썰렁했다. 앳돼 보이는 미영의 딸 준영(도영서)만이 홀로 앉아 있었다. 어른들은 모두 자리를 비운 상태. 태저와 준영의 첫 만남은 이렇게 이뤄진다. 준영에게 자신들이 누구인지 소개한 두 사람,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잠시 후 돌아선다. 이후 '향불이 꺼지지 않도록 자리를 지키라'는 어른들의 지시로 홀로 빈소를 지키던 준영의 모습이 태저의 마음 한켠에 비집고 들어온다.

 

 

영화 <만남의 집>은 교도관과 수형자 그리고 그 가족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여성 교도관의 시선으로 바라본 교도소 안과 밖의 세상을 섬세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냈다. 영화는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멕시코국립시네테카 개봉지원상을 수상했다.

 

교도관의 직무는 교대로 이뤄진다. 어느덧 15년차에 접어든 태저. 그러나 낮과 밤이 뒤바뀌는 생활은 여전히 적응이 어렵다. 교도관을 향한 외부의 시선도 곱지 않다. 수형자들의 높아진 인권에 비해 교도관들의 근무 환경은 상대적으로 열악하다. 극 중 교도관들 사이에서 오고 가는 대사를 통해 이러한 분위기를 엿보게 된다. 아마도 그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 아닐까 싶다. 

 

 

태저는 이혼 후 줄곧 홀로 생활해왔다. 사려 깊고 감정이 풍부한 그녀, 일 처리만큼은 강단 있었다. 소신도 뚜렷했다.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가만히 있는 일에도 용기가 필요하다'며 담담한 어조로 말한다. 준영을 만나고 온 이후 그랬던 그녀의 마음에 작은 파문이 인다. 그 정체가 무얼까.

 

 

모텔에서 방 한 칸을 빌려 생활하는 중학생 준영. 아이에겐 열악한 환경이었으나 그나마도 모텔을 운영하는 엄마 지인(박현영)의 도움 덕분이다. 엄마가 교도소에서 수형 생활을 하는 동안 준영은 부모의 돌봄 없이 거의 방치되다시피 하고 있다. 언제든 나쁜 유혹에 흔들리기 쉬운 환경.

 

워낙 어릴 적부터 엄마와 떨어져 지내다 보니 그맘때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지닐 법한 엄마를 향한 따스한 감정도 이미 차갑게 식은 뒤. 내심 준영의 안위가 염려됐던 태저는 아이에게 아주 조심스럽게 다가가 먼저 마음의 빗장을 열고, 아이가 거기에 반응하도록 천천히 기다려 준다. 

 

 

모친의 사망 이후 정서가 불안해 보이는 미영. 툭하면 동료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난폭한 성향을 드러낸다. 태저는 이런 미영을 다독이고 모녀를 위한 일이 무얼까를 고심한다. 제도적으로 이들 모녀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교정시설에서 수용자와 가족이 일반 접견보다 긴 시간 함께 머물며 대화와 식사를 나눌 수 있게 하는 '만남의 집'이라는 제도를 활용해 보는 건 어떨까. 물론 이를 관철시키려면 몇 가지 조건이 선행되어야 한다.

 

첫째는 교도소장의 승인이 있어야 하는데, 모범 수형자 등 그 조건이 제법 까다롭다. 둘째는 미영이 이를 직접 신청해야 하고, 준영도 호응해야 하는 절차가 남아 있다. 태저는 과연 이 난관들을 모두 극복하고 이들 모녀를 만남의 집에서 상봉시킬 수 있을까.

 

 

영화 <만남의 집>은 온갖 자극적인 미디어들 속에서 유독 빛이 나는 작품이다. '빨리빨리' 구호에 치이고 지친 현대인들에게 한 박자 느리게 가라고, 그리고 천천히 숨을 고르며 가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수형자와 그 가족에게 햇빛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던 주인공 태저의 속 깊은 마음을 헤아리다 보면, 어느새 따스한 감정이 스며들어 오고 잔잔한 여운이 남는다. 

 

 

감독 차정윤

 

* 이미지 출처 : 마노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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