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글씨체의 유니크한 도장을 제작하는 장인으로 알려진 시각장애인 임영규(권해효). 모 방송국에서 그에 관한 다큐멘터리 제작에 나섰다. 인터뷰는 김수진(한지현) 프로듀서가 맡았으며, 임영규의 아들 임동환(박정민)이 앞 못 보는 아버지를 돕는 방식이었다. 인터뷰는 여러 회차로 나뉘어 진행될 예정이다.

그러던 어느 날, 동환에게 의문의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어머니 정영희의 시신이 발견됐단다. 무려 40년 만이다. 그러니까 그동안 어머니의 생사조차 모르고 살아온 동환이었다. 그녀의 죽음은 의문투성이일 뿐 아니라 타살 정황마저 읽힌다는 전언이다. 다큐멘터리 촬영을 담당하던 김수진은 화제성이 있음을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동환과 함께 사건 관련자들을 수소문하여 정영희의 과거를 추적해 나간다.

영화 <얼굴>은 생사조차 알 수 없던 어머니의 시신이 40년 만에 발견되면서 한 시각장애인의 가정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미스터리 장르의 작품이다. 박정민은 이 영화를 통해 제45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영평10선'에도 이름을 올리며 작품성과 대중성 모두를 인정 받았다.
동환은 김수진 피디의 도움으로 어머니의 지인들을 수소문, 접촉을 시도하며 과거 행적을 쫓는다. 어머니의 삶에 좀 더 깊숙이 다가갈수록 새로운 인물과 사건들이 속속 드러났다. 그녀의 삶은 녹록지 않은 듯했다. 죽음 또한 석연치 않은 구석이 엿보인다. 어머니를 향한 연민인지, 아니면 동환 자신의 치부를 드러낸 듯한 수치심 때문인지 모를 복잡하고 기묘한 감정이 그를 휘감는다.

임영규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아왔다. 시각장애인으로서 주변인들의 따가운 시선과 멸시, 조롱은 일상이었다. 극의 시대적 배경이었던 6,70년대 당시의 사회 분위기는 지금보다 나을 리 만무했다. 그는 온전치 못한 몸으로 밥벌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힘 있는 자의 선의(?)에 기대야 했다. 피복 공장을 운영하며 돈푼깨나 만지고 다니면서 주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백주상(임성재)과의 인연은 그렇게 싹 텄다.
공장 인근에 어렵사리 도장 가게 좌판을 연 임영규. 사업 초기 손님이 없어 고전 중일 때 그에게 먼저 관심을 보이며 호의를 베푼 건 백주상의 피복 공장에서 시다로 일하던 정영희였다. 두 사람은 주변 상인들의 부추김과 축복 속에서 혼인 계약을 맺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환을 출산하게 된다.

힘든 여건이었음에도 서로를 북돋우며 열심히 살아가던 동환네 가정에 짐짓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하는 건 정영희가 동료의 직장 내 성폭행 사건에 적극 개입하면서부터다. 성폭행 가해자는 다름아닌 사장 백주상.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그의 행태에 치솟는 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던 정영희는 주변에 범행 사실을 알리고 백주상이라는 권력에 홀로 맞선다. 앙갚음에 나선 백주상. 그는 정영희를 직장에서 해고함과 동시에 인력을 동원, 집단 린치를 가한다.

영화는 정영희라는 얼굴 없는 인물의 기구한 삶을 통해 증오와 혐오가 개인의 일탈을 넘어 사회적 편견으로 고착화되어 가는 현상을 이야기한다. 아울러 앞 못 보는 임영규를 앞세워 반복적으로 노출되고 집단 동조 현상까지 더해지면서 개인이 다수의 선택을 따라가거나 개인의 신념 강화로 인해 잘못된 믿음을 고수하다 어떠한 비극을 초래하는지 가감 없이 보여준다.
"예쁜 건 존경 받고 추앙 받고 추한 건 멸시 받아"
극 중 임영규의 대사다. 영화는 이렇듯 앞 못 보는 시각장애인조차 외모를 떠받들어야 할 정도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외모지상주의를 꼬집는다.
임영규의 인터뷰에 나선 김수진 피디. 애초 장인으로 우뚝 선 한 시각장애인의 삶을 조망하겠다는 다큐멘터리의 방송 취지와는 달리 자극적인 콘텐츠를 이용하여 조회수를 높여 보려는 그녀의 행태를 통해 영화는 사회적 공기로서의 언론, 그리고 언론인의 책무도 돌아보게 한다.

영화 <얼굴>은 미스터리 장르의 외피를 두른 우화에 가깝다. 상영 내내 스크린에 얼굴을 비치지 않다가 엔딩 신에서야 비로소 드러내는 정영희. 외모지상주의와 편견이 서로 뒤엉킨 우리의 그릇된 신념에 균열을 가하려는 시도였을까. 동환 역과 아버지 임영규의 과거 역을 오가며 열연을 펼친 박정민 배우의 연기력은 이제 제대로 물이 오른 느낌이다.
감독 연상호
* 이미지 출처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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