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영화 <그녀가 죽었다> vs <드라이브>

새 날 2024. 7. 26.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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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영화 <그녀가 죽었다>와 <드라이브>는 닮은꼴이다. 장르가 스릴러라는 점에서 그렇거니와 근래 한창 상종가인 유튜버라는 직업인을 주연으로 내세운 점도 그렇다. 동일한 장르이다 보니 극의 전개 과정이나 전체적인 얼개도 엇비슷하다. 약간은  비대칭의 데칼코마니라고 할까. 

 

공인중개사 구정태(변요한)는 묘한 취미를 갖고 있다. 집주인 혹은 임차인이 부동산을 매매하거나 세를 놓기 위해 자신에게 맡겨 놓은 열쇠를 이용하여 타인의 삶을 훔쳐보곤 한다. 구정태의 관음증은 관찰 대상의 폭이 넓다. 직무상 접하는 주택뿐 아니라 특별히 관심이 닿는 사람에게까지 그만의 예민한 촉수를 몰래 뻗곤 한다. 인기 유튜버 한소라(신혜선)도 그의 관심권 안에 들어왔다.

 

선행 컨셉으로 한창 인기몰이 중인 한소라. 구정태는 문득 그녀의 실체가 알고 싶어졌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파헤치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한소라는 구정태의 사무실을 깜짝 방문하게 된다. 집을 내놓기 위함이었다. 열쇠도 건넸다. 회심의 미소를 짓는 구정태. 드디어 한소라의 실체가 드러나게 되는 것일까. 

 

한소라의 집을 방문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구정태는 드디어 거사(?)를 확정한다. 한소라로부터 넘겨받은 열쇠로 조심스레 현관문을 딴 뒤 주택 안으로 들어선 그. 하지만 기대감으로 콩닥거리던 가슴은 이내 공포감으로 뒤바뀌고 만다. 한소라가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 것이다. 온몸에 피칠갑을 한 채. 구정태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재빨리 사태 파악에 나선다. 이럴 땐 어떻게 처신해야 하나. 

 

 

일상을 담은 브이로그 '유나의 일상'을 제작하며 동영상 플랫폼에서 꾸준히 활동해온 스트리머 한유나(박주현). 하지만 그녀의 생각과는 달리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기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존재감 없는 그저그런 스트리머로 전락해가던 즈음, 우연히 한 영상이 시청자들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 모으고, 그녀에게도 드디어 반전이라는 게 찾아오는 건가 싶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 했던가. 이후 시청자들의 입맛에 맞는 영상 제작과 편집에 올인하는 한유나. 이러한 노력 덕분인지 그녀는 비교적 짧은 시기에 인기 절정의 스트리머로 등극하게 된다. 한유나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자 그녀를 끌어들이려는 메이저급 매니지먼트사들의 물밑 움직임도 덩달아 바빠졌다. 어느덧 공중파 방송으로까지 보폭을 넓히는 한유나. 우연한 기회에 예능 프로그램의 단독진행을 맡게 된다.

 

한유나는 자신이 단독으로 진행 예정이던 예능 프로그램의 공중파 방송사 간부와의 만남을 앞두고 누군가에 의해 납치된다. 자신이 소유한 차량 트렁크 안에 갇힌 한유나에게 납치 용의자는 10억 원을 요구해 왔다. 이를 마련하지 못 할 경우 폐차장에서 차와 함께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운명이라고 그녀를 협박한다. 납치범에게 건넬 자금 마련을 위해 긴급 생방송을 진행하는 한유나. 납치범의 요구 사항은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고, 점차 궁지로 내몰리는 그녀.

 

 

두 영화의 주연 캐릭터 한소라와 한유나는 같은 성씨 외에도 당대의 인기 절정 영상 크리에이터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그들이 인기를 끌어 모으던 루틴은 유사하다. 자신의 실체를 감추고 대중들의 입맛에 맞는 창작물을 제작하여 조회수를 최대한 끌어 올리는 방식이다. 실제로는 동물 학대 수준의 인성임에도 영상에서는 유기동물 돌봄 선행쇼가 펼쳐지고, 과장과 허세 가득한 몸짓을 통해 대중들의 들끓는 욕망을 대리만족시켜 준다.

 

한소라는 구정태라는 의뭉투성이 공인중개사에 의해 자신의 실체가 까발려질 위기에 처하게 되고, 한유나는 누군가에 의해 납치된 뒤 목숨을 위협받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한소라의 죽음과 한유나의 납치는 각기 두 영화의 주요 변곡점이다. 이때부터 사건의 실체가 점차 윤곽을 드러냄과 동시에 극의 긴장도는 최고조를 향해 치닫는다. 두 영화의 차이점을 꼽아보자면 <그녀가 죽었다>는 결과를 먼저 노출시킨 뒤 사건의 전개 과정을 퍼즐 맞추듯 빈 곳을 채워가는 방식이고, <드라이브>는 극의 결말부에 가서야 사건의 전모가 드러난다.

 

쉽게 돈을 벌 수 있으리라는 유혹에 못이겨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유튜버의 세계로 뛰어든다. 그러다 보니 문제점도 자주 노정된다. 최근 유튜버 혹은 스트리머들에 의한 크고 작은 사건들이 사회적 파장을 낳고 있다. 구독자 수가 곧 수익으로 연결되는 구조 탓에 구독자를 늘리기 위한 무리수가 더해지고, 이는 필연적으로 커다란 부작용으로 이어진다. 이권에 얽힌 유튜버들 간의 다툼이 잦고, 거친 송사 끝에 결국 폭력 행사로 귀결되는 경우가 잦다. 수년 전 생방송 도중 이른바 슈퍼챗으로 인한 갈등 끝에 살인사건으로까지 불거진 사례도 있다. 온갖 협박과 공갈이 난무하는 시장이다.

 

표면적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유튜버들. 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보통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무수한 사건들이 벌어지곤 한다. 두 영화는 이렇듯 일부 유튜버들의 일그러지고 뒤틀린 세상을 비교적 사실감 있게 묘사한다. 주어진 배경과 사건, 인물을 토대로 결말을 추리해가는 재미와 팽팽한 긴장감은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물이 갖춰야 하는 덕목이다. 두 작품 모두 이러한 장르적 특성에는 충실한 편이다. <그녀가 죽었다>는 짜임새, <드라이브>는 긴장감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영화를 관람하면서 극중 캐릭터들이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직업 윤리에 좀 더 충실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가정을 하게 된다. 이를테면 구정태의 경우 공인중개사인데, 그는 직업상 획득한 고객 정보를 욕구 충족이라는 지극히 사적인 용도로 활용하면서 사달을 빚고 만다. 유튜버나 스트리머는 또 어떠한가. 초심을 잃고 지나치게 인기와 돈만 좇다 보니, 본인의 정체성을 상실한 채 결국 범죄의 표적으로 전락하고 만다. 때문에 두 영화가 남긴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이렇듯 비틀어진 직업 윤리에 대한 경각심 같은 게 아닐까 싶다.

 

 

<그녀가 죽었다> 감독  김세휘

<드라이브> 감독  박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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