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한 인터뷰어의 성장기... 도서 <태도의 언어>

새 날 2024. 7. 13.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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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의 언어>는 성장기다. 기자라는 직업인으로 성장해 오면서 저자가 느꼈던 무수한 감정이나 생각의 조각들을 태도라는 꾸러미 안에 차곡차곡 쟁인 뒤 예쁘게 포장하여 진열대 위에 올려놓은 도서 상품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많고 많은 단어 중에 왜 하필 '태도'에 필이 꽂힌 걸까.

 

태도란 '어떤 일이나 상황 따위를 대하는 마음가짐. 또는 그 마음가짐이 드러난 자세'를 일컫는다. 책 안에는 그녀가 그동안 기자로서, 인터뷰어로서 어떤 마음가짐과 자세로 임해 왔는지 오롯이 담겨 있다. 큰 맥락으로 볼 땐 기자와 동일한 직업 범주에 속하겠지만, 저자는 특별히 인터뷰어로서의 김지은을 좀 더 부각시키고 싶었던 것 같다.

 

누구든 특정 분야에서 오랜 시간 몸 담다 보면 이 일을 계속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한 번쯤 심각한 고민에 빠져드는 시기가 오곤 한다. 번아웃일 수도, 회의감일 수도, 혹은 다른 이유 때문일 수도 있겠다. 김지은 기자도 그랬다. 결국 잠깐의 재충전 시간을 갖게 된다. 이후 새롭게 개척한 영역이 다름 아닌 인터뷰어다.

 

기자 생활을 할 때도 한결 같았지만, 인터뷰어로서의 김지은은 그야말로 훨훨 날아다닌다. 스스로의 직업 만족감도 상당했다. 자부심 같은 것도 느껴졌다. 내가 인터뷰어라는 직업을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이상 그 내밀한 세계까지 속속들이 알 수는 없는 노릇이나, 다양한 연령, 계층의 인터뷰이를 만나 그들의 감정과 생각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내려면 일선 기자보다는 연륜이 조금 더 필요한 영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인터뷰어로서의 김지은은 자신이 베풀 수 있는 최선의 태도로 인터뷰이에게 다가섰다. 이름을 대면 모두가 알 만한 인터뷰이들이 김지은의 이러한 태도를 반기며 '당신 같은 인터뷰어는 처음 본다'는 반응을 드러낸다는 점. 한 번 인터뷰했던 이들이 재차 인터뷰하기를 원한다는 점. 그리고 속내를 드러내기 꺼려하는 인터뷰이들이 스스럼 없이 개인사를 풀어놓거나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 열정적으로 인터뷰에 응한다는 점에서 김지은은 인터뷰어로서 만점짜리 인물이다.

 

김지은 기자가 오늘날처럼 입지를 굳히게 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수많은 실패가 쌓이고 덧대어진 결과물이다. 열패감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도 여러 차례 있었다. 특별히 인터뷰이를 섭외하는 과정에서 유독 내상을 많이 입었던 듯싶다. 의도치 않게 수많은 거절과 거부를 맛봐야 하니 그런 상황이라면 누군들 온전했을까 싶다.

 

그러고 보니 연륜이란 바로 이러한 실패와 거절의 경험들이 켜켜이 쌓여 화학작용을 일으키고 자연스럽게 우러나오게 되는 일종의 태도 같은 게 아닐까. 스스로 막강한(?) 연륜을 갖춘 뒤 어떤 종류의 인터뷰이를 만나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결과물을 이끌어낼 줄 아는 김지은, 바로 이러한 능력이 오늘날 인터뷰어 김지은을 이 자리에 있게 한 셈이다.

 

한 사람의 인격체는 이렇듯 온갖 악재 속에서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꿋꿋이 성장해간다. 우리 삶엔 정답 같은 게 있을 리 만무. 각자가 자신의 고유 영역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개척해 나가는 길이 곧 그 사람의 삶 아닐까. 이때 실패는 그 사람의 성장을 돕는 아주 좋은 영양제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는 수많은 직업군 가운데 특별히 의사의 직업적 태도에 대해 언급했다. 환자의 고통을 공감하려면 그와 눈을 맞추고 귀를 쫑긋 세워 이야기를 경청해야 할 텐데, 어찌된 영문인지 책에 소개된 의사는 모니터만 바라보며 자신의 이야기 몇 마디만을 툭 내뱉고는 진료를 마쳤단다. 인간미가 부족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지나치게 많은 환자를 대면하느라 지쳐서 그랬을까. 그런데 의외로 이런 류의 의사들이 우리 주변에 흔하디흔하다. 비단 의사만이 아닐 것이다. 누군가와 마주할 때면 눈과 귀를 열어 그를 향하게 하고, 상대와 주파수를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사람이니까.

 

이 책이 지난 해에 출간되었으니 현재 첨예한 이슈로 떠오른 의료분쟁사태와는 애초 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영혼과 사명감 없는 의사가 기자의 날카로운 시선에 떡하니 포착되었으니, 모든 의사가 다 그렇지는 않겠으나 어쨌든 의사라는 직업인들은 조금 긴장해야 할 것 같다. 환자에게 공감하며 마음을 활짝 열고 다가서려는 직업적 태도가 그 어느 때보다 아쉬운 요즘이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 하나가 있다. 최근 여러 일로 머릿속이 혼잡한 터, 마음을 다잡고 평안을 찾고자 함이었다. 약간의 인문적 소양도 쌓을 수 있으면 금상첨화다. 그동안 간간이 접해 온 도서 '~의 언어' 혹은 '언어의 ~' 류는 제법 만족스러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그런 류의 도서와는 결이 다르다. 그러니 내가 이 책을 펼쳐들면서 했던 생각과 비슷한 의도로 접근한다면 실망할 것이다.

 

이 책엔 수십 년 동안 몸 담아온 기자라는 직업인으로서의 경험적 태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기자가 되고자 하는 이들에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 같다. 제목만 스치듯 소비하는 기사 한 줄에 사실은 수많은 사람들의 수고로움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우린 흔히 잊고 지낸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기사를 작성해야 하는 기자들. 그들에게는 어느 누구보다 시대정신, 직업적 사명감이 요구된다.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져들기 십상이다. 나도 자주 그런 편이다. 이 책은 이런 내게 긴장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사람, 삶에 임하는 태도 역시 스스로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여전히 배우며 성장하겠지만, 한 사람의 인격체로, 그리고 한 명의 직업인으로 우뚝서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의 경험들이 축적되고 그로부터 그 사람의 됨됨이 즉 태도가 완성됨은 만고불변의 진리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  김지은

펴낸곳  헤이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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