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공감해 주는 단 한 사람이 필요한 이유... 도서 <당신이 옳다>

새 날 2024. 7. 6.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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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친구와 싸운 뒤 교사로부터 혼이 난 아이에게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라'며 충고한 엄마. 그러자 아이는 이렇게 말했단다.

 

"엄마는 그러면 안 되지, 내가 왜 그랬는지 물어 봐야지. 선생님도 혼내서 얼마나 속상했는데, 엄마는 나를 위로해 줘야지. 그 애가 먼저 나에게 시비를 걸었고 내가 얼마나 참다가 때렸는데, 엄마도 나보고 잘못했다고 하면 안 되지."

 

칠칠맞게도 이 대목을 읽어 내려가는 도중 내 두 눈에서는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왜일까.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의 사연이지만, 아이 둘을 키웠던 과거를 떠올리면서 '나도 저렇게 행동했을 텐데, 어쩌나' 하는 안타까움 때문이었으리라. 아이들이 다 커버렸으니 이젠 이를 만회할 기회조차 없다. 아니면 문득, 비슷한 상황에서 부모님께 혼나거나 충고를 들었을 어릴 적 내 모습을 떠올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가 쓴 책 <당신이 옳다>를 읽은 느낌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표현하라고 한다면 나는 대뜸 저 첫 문단을 끄집어낼 것 같다. 서문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이 책 전체를 아우르는 화두는 단연 '공감', 이 한 단어다. 이 글의 첫 문단은 공감이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이른바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 없이 곧바로 독자를 이해시킨다. 실 사례인 까닭에 뇌리에, 아니 가슴에 아주 쏙쏙 박힌다.

 

저자는 자신의 책이 '적정 심리학'으로써의 쓸모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낸다. 적정 심리학이란 '적정 기술'에서 차용해 온 개념이다. 적정 기술은 첨단기술이라기보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요한 기술, 그러니까 생존에 당장 요구되는 지극히 기초적인 기술을 일컫는다. 이 기술만 익히고 있다면 적어도 요즘 같은 시대에 굶어서 사지로 내몰리는 등의 생존을 위협받는 일로부터는 벗어날 수 있는, 일종의 그런 개념이다.

 

그렇다면 적정 심리학이란 무얼까. 마음이 아파 한계에 이른 사람에게 최소한의 숨통을 틔워주는, 임계치에서 더 이상 어쩔 줄 몰라 허우적대는 사람을 일단 그곳에서 벗어나 안전한 곳으로 이끌도록 도움을 주는, 그런 심리학을 일컫는다. 저자는 우리 주변에 공감해 주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사람을 살릴 수 있다고 단언한다. 더 나아가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특정 병명의 진단을 내리고 관성처럼 약물 처방으로 일관하는 현대 의학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요목조목 지적한다.

 

마음이 병든 이들에게는 약물보다 공감 공급이 훨씬 더 시급하다는 저자의 주장에 나 역시 수긍하는 바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가 진정성 있게 들어주고 위로를 받고 싶은 심정일 텐데, 정작 의사는 그 사람의 사연을 듣는 둥 마는 둥 처방전 발급으로 이를 대체하기에 급급하다. 공감을 공급 받아야 하는 사람이 약물을 주입 받는 상황이라니, 지나친 편의주의에 과잉진료가 아닌가.

 

 

얼마 전 '아줌마'의 출입을 제한한다는 모 헬스장의 사연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 아줌마로 대상화된 특정 연령층 여성들의 특징을 싸잡아 비난하면서 빚어진 촌극이다. 아줌마라는 단어는 여성을 낮잡아 부르는 호칭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대체로 좋지 않은 이미지로 소비되는 경향이 있다. 이렇듯 특정 여성을 대상화하게 되면 그때부터 그 여성의 개별성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아줌마라는 공통 이미지만 남게 된다.

 

저자는 사회 전반으로 만연돼 있는 이런 대상화의 시도에 대해 경계한다. 당신이나 나나 그나 그녀나 모두 개별 존재로 인정 받고 공감 받아야 마땅한데, 그렇지 못 한 현 세태를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유일한 존재이거늘, 아저씨로 대상화됨과 동시에 그냥저냥 비슷한 류의 사람으로 특정되고 만다. 끔찍한 결과인데, 현실은 다양한 곳에서 이 대상화가 시도 중이라는 데 심각성이 있다. 공감은 누가 됐든 개별 존재로의 인정으로부터 출발한다.

 

저자가 말하는 공감의 실천은 의외로 어렵지 않다. 글 머리로 끄집어낸 문단처럼 상대에게 충고나 조언하지 않으며 평가나 판단 없이 상대를 개별적 존재로 인정한 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인 상태에서 이야기에 귀 기울여 수용하면 그만이다. 물론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건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 몸이 경직돼 있으면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못 하듯 마음이 굳어져 있는 상태에서는 상대를 인정하고 상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없는 까닭이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의 책 <당신이 옳다>를 곁에 두고, 일종의 교본이나 바이블처럼 누군가에게 공감이 필요할 때마다 이를 꺼내들어 활용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정혜신의 적정 심리학'이라는 부제는 이러한 소망의 결과물이다. 나는 이 책을 집에 한 권 비치해 놓고, 마치 상비약처럼 시급히 공감을 공급해 주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펼쳐드는 상상을 해본다.

 

세월호, 이태원 등 사회적 참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서 2차 피해가 횡행하고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이들이 덩달아 늘고 있다. 치열한 경쟁 구도 속에서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텨내고 있는 현대인들. 겉으로는 멀쩡한 듯 보여도 속으로는 이미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곪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누구나 마음의 병 하나쯤 앓고 있지 않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세상, 이미 임계치에 다다른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이의 곁에 공감을 불어넣어 주는 단 한 사람이 존재한다면 위태위태해 보이는 우리의 삶도 의외로 오랜 시간 지속 가능하리라고 본다. 무한 신뢰와 지지를 보내주는 단 한 사람. 우리에겐 바로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

 

 

 

저자  정혜신

펴낸 곳  해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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