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약한 탓에 힘깨나 쓰는 아이들에게 늘 표적이 되어 괴롭힘을 당해왔던 김독자(안효섭). 학창시절 그에게 유일한 안식처가 되어 준 건 다름 아닌 웹소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이하 멸살법)'이었다. 연재 도중 과한 설정 등으로 독자가 떠나며 그저그런 류의 비인기 소설로 전락했지만, 그는 마지막 연재까지 함께하게 된다. 무려 10년이라는 긴 시간이었다. 그 사이 직장인이 된 김독자. 하지만 그는 주인공 한 사람만 살아남는 소설의 결말이 탐탁지 않았다. 작가에게 자신의 생각을 피력해 보았지만 묵묵부답.
며칠 후 독자는 전철로 이동 중 회사에서 함께 근무하던 유상아(채수빈)를 우연히 만난다. 바로 그때 독자에게 메시지 한 통이 전달되는데, 보낸 이는 멸살법 작가였다. 오후 7시 멸살법을 유료화할 것이며 소설의 결말을 독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어보라는 내용이었다. 잠시 뒤 7시 정각, 동호대교 위를 달리던 열차의 객실이 아수라장으로 변모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놀랍게도 소설 속 내용이 고스란히 현실에서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은 자신이 읽던 아포칼립스 장르의 소설이 현실화되면서 위기에 빠진 세상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평범한 직장인의 이야기를 그린 판타지물이자 이세계물이다. 싱숑 작가가 쓴 웹소설이 원작이며, 소설은 웹툰으로도 제작되어 인기리에 연재됐다.
이른바 우리 은하 밖 성좌라 불리는 신적 존재들이 지구 행성을 파멸시키기로 작정했다. 인간을 그들의 유희 제물로 삼아 극한의 게임판으로 몰아 넣고 있는 것이다. 지하철 3호선 금호역을 필두로 각 단계별로 주어진 미션을 클리어해야 다음 단계로 진행되는 방식인데, 그 난이도가 상당했다. 독자는 소설이 현실로 고스란히 옮겨온 사실을 깨닫고 시나리오를 예측해 가며 각 미션에 대응하기 시작한다.

전철에서 만난 유상아는 물론, 미션 현장에서 각기 합류하게 되는 동료 이길영(권은성), 이현성(신승호), 정희원(나나) 등은 본인만의 필살기를 이용해 독자의 미션 수행에 도움을 주며, 독자는 시나리오 예측이라는 예지력 스킬을 활용, 코인을 모으고 미션 클리어에 필요한 아이템을 구비하면서 적재적소마다 돌파구를 마련한다. 이들은 과연 마지막 미션까지 완벽히 수행하고 파멸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지구를 구해낼 수 있을까.
극 중 성좌라 불리는 초월적 존재는 미션을 클리어하지 못 하면 행성 파멸이라는 조건을 내걸고 생사를 가르는 게임 속으로 인간들을 몰아 넣는다. 이들이 내건 기치는 다름 아닌 '각자도생'.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많이 본 내용이다. 게임, 각자도생이란 단어 속에서 자연스레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연상하게 된다. 실제로 서로를 죽여야 본인이 산다거나 사람 숫자에 비해 터무니 없이 적게 설정한 생존구역 등의 게임 룰은 서로 판박이다.

게임을 설계하고 그 룰에 따라 처절하게 생존경쟁을 벌이는 장면을 영상으로 즐기는 '윗분들'의 존재도 그 무게감만 다를 뿐 실은 동일선상에 놓여 있다. 생과 사를 가르는 게임 앞에서 인간은 본능에 충실해진다. 이런 성향을 즐기는 윗분들은 더 많은 도파민 분비를 원하고, 그래서 게임의 난이도를 한층 높인다. 아비규환 속 피 비린내 진동하는 인간의 동물적 본능을 즐기는 것이다. 이보다 더 잔인한 관음증이 있을까.
각자도생에서 살아남는 방식은 저마다 처한 환경에 따라 극명히 갈린다. 그저 현실에 순응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사람을 이용하여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등 파멸을 코 앞에 둔 상황에서도 욕망에 절어 제 것만 차곡차곡 쟁이는 부류들도 있다. 대재앙의 이전과 비교해 보면 드러나는 양상은 비슷하나 인간적 부끄러움에서 기인하는 주저함 따위가 사라지고 좀 더 대담해지고 있다는 점 정도가 차이라고 할까. 이렇듯 대재앙은 인간의 어두운 민낯을 여실히 드러내는 중이다.

각자도생이라는 극한의 공포와 치열함 속에서도 독자는 '주인공은 왜 혼자만 살아남아야 했을까' 하는 의문을 끝내 지우지 못 한다. 이 의문은 대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시키고 서로 연대해야 하는 당위성으로 승화되며, 바꾸고 싶었던 소설의 결말은 독자 스스로 게임 속 캐릭터가 되어 미션을 클리어하고 성장하면서 원하는 형태대로 완성돼 간다.
아포칼립스의 시대. 그 암울함 속에서도 우리는 희망을 엿본다.
감독 김병우
* 이미지 출처 : 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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