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욕망의 결정체.. 영화 <84제곱미터>

새 날 2025. 12. 13.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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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직장인 노우성(강하늘). 드디어 그가 내 집 마련에 성공한다. 서울 하늘 아래에, 그것도 국평이라 불리는 84제곱미터. 물론 가용한 대출을 모두 끌어모은 '영끌'이긴 하지만 말이다. 직장 상사의 부러움 섞인 비꼼 정도는 애교로 봐줄 만큼 짐짓 여유를 되찾은 그다. 무언가를 이루었다는 뿌듯함에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존버하면 무조건 우상향'

 

우리 사회에서 아파트에 대한 믿음은 견고하다. 일종의 신앙처럼 굳어진 지 오래다. 그런데 최근 상황이 급변했다. 코로나 시국이 막을 내림과 동시에 고금리 시대로 접어든 것. 영끌로 내집 마련을 한 이들이 주로 직격탄을 맞았다. 급매물이 속출하면서 꿈쩍 않던 아파트 가격이 하방 압력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노우성은 갈림길에 놓였다. 주변에서는 존버하면 무조건 우상향일 테니 끝까지 버텨보라고 속삭이지만, 그의 앞을 가로막는 현실의 벽은 높다랗다. 고금리에 대응하느라 투잡까지 뛰며 고군분투 중인 우성, 과연 이 생활을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존버해 우성아!

 

 

영화 <84제곱미터>는 영끌로 내 집 마련에 성공한 평범한 직장인이 층간소음 문제로 입주민들과 갈등을 빚다가 야기되는 사건을 그린 스릴러물이다. 84제곱미터는 전용25평, 공용 포함 33평형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이른바 국민 평형으로 불리는 면적이다. 84제곱미터라니 제목만으로도 아파트가 자동 연상되고, 더 나아가 부동산 투기 광풍을 떠올리게 하는 일종의 마법 같은 단어다. 

 

그러던 어느 날 우성에게 직장 동료로부터 솔깃한 제안 하나가 들어온다. 코인에 투자하잔다. 리딩방에서 알려주는 대로 따라하기만 하면 무려 투자금의 9배를 회수할 수 있단다. 실제로 큰 돈을 번 동료가 있고, 그로부터 얻은 정보라 믿을 만하다는 전언.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해 왔다. 불안한 아파트 가격, 투잡을 뛰어도 감당하기 어려운 대출 원리금 상환. 우성의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존버냐 코인 투자냐. 

 

 

한편 우성이 매수 후 실거주 중인 아파트 1401호에서는 언젠가부터 층간소음이 발생해 골머리를 앓고 있는 중이다. 이의 해결을 위해 직접 윗집을 방문해 보지만, 정작 의심스러운 당사자들은 아니라는 답변만 할 뿐 뾰족한 해법이 없다. 설상가상으로 아래층에서는 아래층대로 불만투성이다. 우성이 층간소음의 주범이라며 올라와 협박조로 해결을 종용하는 게 아닌가. 미궁에 빠진 층간소음 문제. 우성은 과연 이 혼돈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우성은 코인 투자를 결정하고, 투자금 마련을 위해 일단 아파트를 처분하기로 한다. 이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인 셈. 중도금 입금 전 계약을 취소하고, 그 사이 코인 투자를 통해 불린 돈으로 계약금의 배액 상환까지 염두에 둔 나름 치밀한 계획이었다. 밤 늦은 시각, 부동산 사무실을 찾은 우성. 급매로 아파트를 계약하고, 계약금 전액을 코인에 투자한다. 일련의 과정들은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극 초반 우성이 코인을 투자하는 과정에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하는 감독. 코미디 장르가 아닐까 싶을 만큼 우유부단하며 어리버리한 캐릭터를 앞세워 웃음을 유발한다. 스릴러로의 손바뀜은 극 중반부에 들어서면서다. 층간소음으로 인해 입주민 사이에 내재된 갈등이 점차 표면화되고 증폭하면서 극은 본격 롤러코스터를 타기 시작한다. 

 

일종의 클리셰가 돼버렸으나 이 영화에서도 펜트하우스는 여지 없이 권력을 상징한다. 과거 검사 출신이었고, 현재는 아파트 관리인(엄혜란)인 그녀가 거주하는 이 공간은 모든 욕망의 집합체 같은 곳. 층간소음의 발원지를 찾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꾸만 위로 향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결국 그 끝이 가리키는 지점은 펜트하우스. 이곳에서는 모든 정보를 움켜쥔 채 욕망을 극대화하기 위한 음모와 조작 등의 행위가 이뤄진다.

 

 

K-아파트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만큼 독특하다. 땅 덩어리가 좁다 보니 용적률을 최대한 올려 하늘과 맞닿을 듯 자꾸만 위로 치솟고, 단지 크기나 브랜드 파워 따위가 입주민들의 부를 상징하기도 한다. 입지는 말해 무엇하랴. K-아파트는 단순한 주거공간이 아니다.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메타포다. 온 국민을 열광케 하는 부동산 투기 광풍은 아파트에서 시작하여 아파트로 끝나고, 여기에 탑승하지 못 하면 졸지에 벼락거지로 전락한다.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사람들.

 

우리 사회의 들끓는 욕망이 응축된 결정체, 그게 바로 아파트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간혹 웃지 못 할 일들이 벌어지곤 한다. 층간소음 등 집값에 악영향을 미치는 이슈는 입주민들이 스스로 나서서 잠재우기 바쁘고, 그와는 반대로 집값을 올릴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려든다. 영화 <84제곱미터>는 한국 사회만의 특수성을 지닌 바로 이 주거 공간이자 자산 가치로서의 아파트를 층간 소음과 부실 건축이라는 이슈를 통해 욕망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온통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그 답답한 공간에서 각기 다른 욕망이 분출하고 충돌한다.

 

 

극의 종착지. 우여곡절 끝에 우성은 어머니를 따라 서울 아파트를 벗어나 조용히 고향 남해 집에 도착한다. 영화의 주된 공간적 배경은 아파트. 높다란 콘크리트 덩어리들의 집합체인 이 아파트만 내내 쳐다보다가 모처럼 맨땅 위에 지어진 아담한 주택을 보고 있자니 절로 안도의 숨이 내쉬어진다. 하지만 여전히 존버를 외치면서 욕망이라는 미련을 끝내 내려놓지 못 하고 돌아서는 우성의 쓸쓸한 뒷모습은 우리의 현실을 암시하는 듯하여 못내 씁쓸하다.

 

 

 

감독  김태준

 

* 이미지 출처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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