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미술 교사 정하(장영남). 그녀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 진우(류경수)는 현재 캐나다에서 유학 중이다. 그가 어머니의 일터인 학교로 어느 날 불쑥 찾아온다. 여자 친구 제니(스테파니리)와 함께. 사전 예고 없이 찾아온 것만으로도 정하는 충분히 당혹스러운데, 여자친구와의 동행이라니, 게다가 두 사람은 곧 결혼한다나 뭐라나. 혼란스러운 감정을 감추지 못 하는 정하. 일단 자신의 집에서 두 사람과 함께 머무르기로 한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캐나다에 있어야 할 제니의 부모가 한국에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숙소 예약 문제로 당장 머무를 곳이 없게 된 것. 과연 우연일까. 아무튼 정하는 제니 부모의 딱한 소식을 전해 듣고는 외면하기가 어려웠다. 내키지는 않았으나 결국 자신의 집으로 모셔온다. 이렇듯 가까운 장래에 사돈으로 엮이게 될지도 모르는 두 가정이 한 집에서 동거하는 묘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영화 <비밀일 수밖에>는 각기 드러내놓기 곤란한 사연을 품은 채 불편한 관계로 엮인 두 가정이 우연한 기회에 한 집에서 동거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이야기한다.
13년 전 사고로 남편을 잃은 정하는 수년 전부터 지선(옥지영)과 동거해 오고 있다. 캐나다에서 온 아들, 제니 및 그녀의 부모가 동시에 정하 집에서 머무를 때에도 지선은 정하의 곁을 지켰다. 이런 두 사람을 평소와는 다른, 조금은 껄끄러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아들. 연인 관계는 당사자들이 감추려 해도 은연 중 드러나기 마련 아닌가. 정하는 아들에게 지선과의 관계를 밝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무척 고민스럽다. 커밍아웃하게 된다면 그건 또 언제가 좋을지.

30년 전 캐나다로 이민을 간 뒤 그곳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며 정착한 제니 부모. 이민 후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게 된 데엔 말 못 할 사연이 있다. 표면적으로는 사업 확장을 위해 고국을 찾은 것처럼 둘러댔으나, 지척에 둔 본가를 방문하지 못 하고 머뭇거리는 제니 아버지 문철(박지일)의 속내는 사실 복잡하다. 금전 관계 때문에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의 인연마저 거의 끊기다시피한 채 살아온 까닭이다. 제니 어머니 하영(박지아)의 계속되는 독촉에도 문철이 여전히 주저하는 데는 이러한 속사정이 있다.
진우는 어학원 재직 중 사표를 던지고 현재는 캐나다 현지에서 유튜브를 운영 중이며, 의학을 전공한 제니는 얼마 후 의사가 될 예정이다. 기성세대의 생각은 대충 비슷하다. 정하 역시 이로부터 자유롭지 못 하다. 애써 유학까지 보내주었건만 번듯한 직장 하나 갖추지 못 한 아들이 못내 서운한 정하. 하지만 두 예비부부의 의지는 확고했다. 아들이 신중히 판단하여 결정하고 제니의 신뢰까지 더해진 사안이라 정하는 그의 뜻을 존중해 주고 조용히 지켜보기로 마음을 다잡는다.

제니의 아버지는 이른바 '오륙남(50대 60대 남성을 부정적으로 지칭하는 신조어)'이다. 그 특징들을 고루 갖췄다. 이를테면 분노조절장애로 의심되는 독불장군식 행동, 눈치 없는 막가파식 행위, 위선적 태도 등. 때문에 MZ세대인 제니와의 관계는 늘 울퉁불퉁하다. 제니는 자신뿐 아니라 정하에게까지 사사건건 간섭하며 꼰대질하는 문철을 향해 필터 없는 분노를 드러내는 중이다.
문철은 장차 의사가 될 자신의 딸 제니에 비해 뚜렷한 직업조차 없는 진우가 못마땅하다. 진우와 제니는 부모의 도움 없이 독립적으로 혼례를 치르겠다고 일찌감치 선언했다. 하지만 사회 통념을 더 중시하는 문철과 하영 부부. 이들은 사돈이 될 정하에게 일정 수준의 예물 등을 갖춰 줄 것을 종용한다. 자식의 뜻을 따르는 게 맞지만 사돈의 체면도 어느 정도는 고려해야 하는 현실. 고민이 깊어지는 정하.

악동은 귀엽기라도 하지. 나이 먹고 꼴통 짓 일삼는 꼰대남은 정말로 답이 없다. 아내와 자식 말을 듣지 않는 꼰대는 더더욱 최악이다. 문철은 술과도 악연이 깊다. 그가 술을 마신 사실을 알게 된 아내와 딸은 동시에 기겁한다. 이렇듯 문철의 꼰대 짓이 절정에 이르고 인물들 간 갈등이 최고조에 달해갈 즈음 극은 클라이막스를 맞이한다.

죽은 정하의 남편 역시 문철 못지 않은 성격의 소유자다. 자신의 뜻에 반하면 분노부터 터뜨리고 동시에 손부터 올라가는 다혈질. 정하의 주변 남성들은 왜 하나 같이 '개저씨'인 걸까. 정하와 지선의 관계는 과연 우연일까.
영화 <비밀일 수밖에>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법한 캐릭터와 개연성 있는 스토리 전개, 그리고 배우들의 실감 나는 연기가 어우러져 보는 재미를 더한다.
가치관과 성격, 성별, 세대가 모두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나 처지도 제각기 틀리지만,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으로 하나둘 모여든 사람들. 때론 끈끈하게 때론 느슨하게 얽힌 만큼 서로 모호하고 불편한 관계일 때가 많다. 개인마다 각기 드러내놓기 곤란한 비밀까지 고이 간직한 상황이라면 더더욱. 이들이 동거하면서 빚어지는 사건은 어이 없어 절로 웃음이 나오게 한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결국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 삿대질하며 투닥거리고 웃고 울며 돌아서다가도 포용하고 연대하며 뒤섞여 살아가는 우리네 삶과 완전히 판박이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가족이라 비밀일 수밖에.

감독 김대환
* 이미지 출처 : (주)슈아픽처스, ㈜AD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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