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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울렁증 앓는 미국 사회의 민낯.. 영화 '모리타니안'

새 날 2022. 2. 28.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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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낸시(조디 포스터)에게 어느 날 동료로부터 다급한 요청이 들어온다. 아프리카 서북부에 위치한 국가 모리타니 출신의 한 남성이 사라진 지 수 년이 지났으나 행방이 묘연하다면서 그의 어머니로부터 9.11 테러 용의자들이 수감돼 있는 것으로 알려진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에 갇혀 있는지의 여부를 확인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는 내용이다. 낸시의 확인 결과 행방불명된 인물은 슬라히(타하르 라임)로 밝혀진다.

 

9.11 테러의 핵심 용의자로 지목된 슬라히는 기소는 물론 재판 절차도 없이 미국 정부에 의해 관타나모 수용소에 6년 동안 강제로 수감돼왔다. 9.11 테러로 몸살을 앓고 있는 미국 사회에서 테러 용의자는 그 어떤 영역에서도 결코 환영받지 못하는 기피 대상 1호로 꼽힌다. 그러나 신념이 뚜렷한 변호사 낸시는 달랐다.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동료 변호사 테리(쉐일린 우들리)와 함께 그의 변호를 자처한다.

 

 

영화 <모리타니안>은 단지 테러를 도운 혐의만으로 9.11 테러 핵심 용의자로 지목되어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됐던 한 남성에 관한 이야기다. 미국 정부의 주도 하에 그동안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용납된 끔찍하고 충격적인 진실은 자신의 신념을 지켜온 한 변호사의 집념 어린 노력 덕분에 세상에 낱낱이 밝혀지게 된다.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됐던 모하메두 울드 슬라히의 저서 <관타나모 다이어리>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슬라히의 사건을 수사하고 재판에 넘기는 일은 군검찰관 카우치(베네딕트 컴버배치)의 몫이었다. 그는 9.11 테러와 특별히 인연이 깊은 인물이었다. 9.11 테러 당시 공중에서 납치된 뒤 세계무역센터 건물에 충돌하면서 희생된 항공기의 부기장이 그의 절친이었다. 사건에 임하는 카우치의 자세가 남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그는 친구였던 부기장의 부인에게 슬라히의 사건을 맡았다는 사실을 전달하고, 그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겠다며 의지를 다진다.  

 

 

슬라히의 인신 보호권 변호에 나선 낸시, 그와 반대로 슬라히의 유죄를 확신하고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겠다며 벼르는 군검찰관 카우치. 극은 한동안 이들의 대립 구도로 그려 나간다.

 

국가 기밀이란 이유로 수감자들과 관련한 모든 문서는 검열이 이루어졌고, 수용소 시설과 근무 인력들은 철저하게 은폐된 상황. 낸시는 슬라히의 면회와 심문 기록을 통해 관타나모에서 슬라히에게 그동안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상세히 들여다보고, 카우치는 그 나름의 방식을 동원, 슬라히의 기소에 필요한 증거물 확보를 위해 관련 기밀문서를 꼼꼼이 살펴보게 된다.

 

 

한편 낸시는 심문 기록을 들여다 보던 중 슬라히가 테러 행위에 적극 가담했다고 자백한 사실을 발견하면서 테리와의 갈등을 빚게 된다. 하지만 슬라히의 자백이 무자비한 폭력과 끔직한 협박 그리고 잔혹한 고문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곧 알게 되는 낸시. 은폐된 진실로 인한 좌절감은 분노로 뒤바뀌고, 이를 연료 삼아 그녀의 신념을 지키고자 하는 거침 없는 행보가 시작된다.

 

 

9.11 테러로 가장 큰 상처를 입은 국가는 단연 미국이다. 단일 테러로 3천 명에 가까운 무고한 시민이 희생됐다. 이로 인한 후유증 역시 만만찮다. 덕분에 미국 사회는 한동안 테러의 '테'자만 나와도 경기를 일으키거나 이성을 잃곤 했다. 인권과 정의를 앞세우며 세계 경찰을 자임해온 미국이 유독 테러에 민감한 반응을 드러내며, 전혀 정의롭지 못한, 반인권 행위를 일삼아온 경우가 잦았다. 극중 슬라히를 향한 미국의 태도는 대표적인 사례다.

 

 

미 정부는 그를 단순히 테러 혐의만으로 기소와 재판 절차 없이 수용시설에 가둔 채 무자비한 폭력과 고문에 의해 억지 자백을 받아냈다. 그 과정은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무시무시하고 끔찍하기 이를 데 없다. 테러라는 단어가 등장하기만 하면 여지없이 국가 기밀로 이를 은폐한 채 그 이면에서는 반이성적이고, 반인권적이며, 반인륜적인 행위들이 공공연하게 펼쳐진다. 미국 정부의 엄호 아래, 국가의 이름으로 폭력이 자행된다. 부시 행정부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은 오바마 행정부 역시 이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영화 <모리타니안>을 통해 테러 혐의로 관타나모 수용소에 갇힌 한 남성의 억울함을 변론하기 위한 변호사와 그를 기소하여 재판에 넘기고 사형 선고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군검찰관 사이의 치열한 법리 다툼을 기대했다면 다소 실망스러울지도 모를 일이다.

 

전 세계 어떤 나라보다 인권 친화적인 국가로 꼽히는 미국. 그들이 테러라는 특수한 상황, 즉 자국의 이해관계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사안 앞에서는 얼마나 비이성적일 수 있는지 그 민낯을 낱낱이 보여주는 영화다.

 

 

 

감독  캐빈 맥도널드   

 

* 이미지 출처 : (주)디스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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