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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적인 연대만이 살 길.. 영화 '바쿠라우'

새 날 2022. 2. 26.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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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미래, 브라질 동부에 위치한 작은 마을 바쿠라우. 최근 이곳에서는 이상한 일이 잇따라 발생한다. 정확히는 족장의 장례식이 치러지고 나서부터다. 마을에 도착한 식수차가 총탄에 의해 훼손되고, 밤사이 농장을 뛰쳐나온 말 수십 마리가 마을을 활보하는 일이 벌어진다. 말들을 해당 농장에 돌려주기 위해 마을 주민 두 명이 나서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외지인에 의해 무참히 살해 당하고 만다. 알고 보니 해당 농장은 이미 누군가에 의해 쑥대밭이 된 뒤였다. 또 다른 시신들이 농장 주변에 널부러져 있었다.

 

바쿠라우는 철저히 고립된 지역이다. 댐의 가동을 전면 중단시켜 마을의 물 공급을 원천 차단했다. 덕분에 마을 사람들은 필요할 때마다 식수차를 통해 최소한의 물을 공급받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경제적인 자립뿐 아니라 마을의 치안까지도 스스로 도모해야 하는 매우 열악한 상황. 최근에는 통신망마저 끊겼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모종의 세력이 개입, 바쿠라우의 고립을 촉발시킨 것이다.

 

 

영화 <바쿠라우>는 수도, 통신, 전기 등 생활기반시설이 모두 끊긴 고립된 마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이야기한다. 마을을 수호하기 위해 연대하는 사람들과 이들을 와해시키려는 세력 간의 다툼을 코미디, 미스터리, 스릴러, SF, 서부극 등 다양한 장르의 융합으로 완성했다. 제72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였고, 다양한 세계 영화제 69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그 가운데 52관왕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둔 작품이다.

 

 

마을사람들의 잇따른 죽음 뒤에는 마을을 완전히 고립시켜 이익을 편취하려는 세력이 도사린다. 이들이 고용한 다국적 용병들은 지휘부의 일사불란한 지휘 아래 첨단 장비와 고성능 무기를 활용, 마을사람들을 해치고 이들의 연대를 와해시키려는 작전을 구사한다. 전직 경찰관과 공무원 등 다양한 직업을 거친 용병들은 무고한 시민들을 적으로 간주, 무차별 학살에 나선다. 

 

 

용병들은 미국의 주도로 만들어진 다국적 집단이었다. 사람 죽이는 일을 마치 게임하듯 즐기는 부류였다. 개인적으로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어 밥 먹듯 살인을 저지르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잔인무도했던 이들은 어린이 등 약자를 학살하는 일에도 주저함이라곤 일절 없었다. 바쿠라우 마을주민들은 이렇듯 잔혹한 용병의 만행에 조직적으로 맞서 싸운다. 연대만이 살 길이었다.

 

 

영화는 특정 장르라고 단정 짓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장르가 혼재돼 있다. 브라질의 정체성이 각인된 작품인 까닭에 할리우드 문법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다가올지도 모를 일이다. 무언가 어수선한 듯한 데다가 잔인한 장면들도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영화는 현재 시점이 아닌 미래 시점을 가정한다. 바쿠라우라는 공간적 배경 또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마을로 설정돼 있다. 철저하게 픽션을 지향하는 작품이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구현된 가상세계는 결코 허구로만 볼 수 없다. 오늘날 브라질이 안고 있는 다양한 사회 문제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극중 주민들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용병들의 만행은 과거 문명을 앞세워 원주민들을 쫓아내고 식민 통치와 학살을 일삼었던 서구 세계를 가장 현실감 있게 풍자한다.

 

 

이렇듯 바쿠라우가 상징하는 바는 무척 다양하다. 바쿠라우를 관할하는 시장은 대표적인 부패 관료이자 정치인에 해당한다. 마을 주민들의 고충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오로지 선거운동에만 몰두 중이다. 극중 시장이 선심 쓰듯 주민들에게 제공한 식품은 죄다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이었고, 도서관에 기증하라며 마을 한가운데에 던져 놓은 책들은 하나 같이 낡은 것들투성이였다. 이쯤 되면 희극이다. 극중 시장은 부패 권력의 상징이자 부조리한 브라질 정치권의 현실이 투영된 결과물이기도 하다. 

 

다양한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룬 바쿠라우 마을은 불평등으로 대변되는 브라질 사회의 소외 계층을 상징한다. 이들의 끈끈한 연대는 부조리한 악습의 고리를 끊어낼 대안이다. 영화 <바쿠라우>는 브라질이 안고 있는 사회적 현실을 가장 독창적이면서도 설득력 있는 연출 기법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극중 용병들의 만행이 잔혹했던 만큼 주민들의 조직된 복수는 통쾌한 타격감으로 다가온다. 

 

 

 

감독  클레버 멘돈사 필로, 줄리아노 도르넬레스   

 

* 이미지 출처 :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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