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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명 연장, 재앙일까 축복일까.. 영화 '말임씨를 부탁해'

새 날 2022. 5. 12.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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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출가시키고 대구에서 홀로 살아가는 85세 할머니 말임(김영옥). 그녀는 어느 날 자신의 집 옥상에 널어놓은 빨래를 걷다가 그만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한쪽 팔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게 된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큰일이 날 뻔한 낙상 사고였다.

 

급히 병원 응급실로 옮겨진 말임. 때마침 고향집으로 내려온 아들 종욱(김영민)은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한 김에 얼마간 치료를 더 받고 완벽하게 나은 뒤 퇴원하길 바랐으나 꼬장꼬장하기 짝이 없는 말임은 이러한 아들의 바람 따위는 나몰라라한다. 결국 아직 온전치 않은 몸으로 퇴원 길에 나선 말임, 그리고 어머니의 병구완을 위해 요양보호사를 고용하게 되는 종욱. 요양보호사 미선(박성연)과 말임의 인연은 이렇게 싹이 튼다. 

 

 

영화 <말임씨를 부탁해>는 홀로 남겨진 85세 할머니의 부양을 놓고 가족 구성원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어머니의 병구완을 위해 요양보호사를 고용하는 아들 내외. 하지만 이를 기화로 잠재돼 있던 갈등이 폭발하면서 현실적인 문제점들이 낱낱이 들춰진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보지만 노부모의 부양만큼은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상황. 영화는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나이듦이라는 현실 앞에서 빠른 속도로 초고령화되어가는 우리 사회의 현 주소를 들여다보게 한다.

 

말임은 자신을 돕겠다고 나선 미선이 영 탐탁지 않은 눈치다. 비록 현실은 딴판이지만 말임은 아직 모든 일들을 스스로 처리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 터, 때문에 요양보호사입네 하며 특별히 하는 일도 없이 꼬박꼬박 집에 와서는 돈만 축내는 미선이 몹시 꼴사나웠던 것이다. 평생을 알뜰하게 살아온 말임에겐 가당치도 않은 노릇이었다. 그녀는 결국 종욱으로 하여금 미선이 다시는 자신의 집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도록 종용하기에 이른다.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거주하는 종욱네는 비슷한 연령대의 보편적인 여느 가정들처럼 맞벌이로 가계를 꾸리고 자녀를 양육하며 하루하루를 정신 없이 살아가는 평범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고향 대구에서 홀로 떨어져 살아가는 어머니 말임은 그런 그에겐 늘 부채감으로 다가온다. 덕분에 그는 가끔 대구로 내려가 어머니의 안부를 확인하고 서울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종욱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말임이 다친 뒤로는 노모의 안위를 원격으로 확인하기 위해 고향 집에 CCTV를 설치하는 등 세심함까지 발휘하게 된다.

 

한평생을 자식 뒷바라지에 올인하고 어느덧 85세의 노인이 된 말임. 아들 내외가 서울 집으로 모시고 가겠다는 청을 완강히 거부하고 고향 집에서 반려견과 함께 살아가는 중이다. 작은 상가주택을 갖고 있어 그동안은 큰 경제적 어려움 없이 그럭저럭 살아온 편이지만, 나이가 나이인 만큼 근래 들어선 거동이 어려워지는 등 건강이 부쩍 나빠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아들의 청을 거절하는 데엔 그럴 만한 사연이 있었다. 갑갑한 아파트에 갇혀 사는 건 그녀의 체질과 전혀 맞지 않거니와 아들 내외의 속박은 더더욱 싫다는 아주 단순명료한 이유 때문이었다. 워낙 꼿꼿한 성품이었던 까닭에 어느 누구도 말임의 뜻을 거역하긴 어려워 보였다.

 

말임의 며느리(김혜나)는 시어머니를 향한 종욱의 태도가 시종일관 못마땅했지만 웬만해서는 내색하지 않으려 했다. 특히 말임이 불의의 사고로 팔을 다친 뒤로는 시시때때로 대구에 다녀 오고, 적금을 중도 해지해야 할 만큼 어려운 처지로 내몰렸음에도 비싼 대가를 지불해가며 요양보호사까지 고용한 종욱의 독단적인 행동은 그녀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듯싶었다. 그나마 시어머니의 도움으로 서울 집을 장만할 수 있었던 과거의 일이 그녀의 들끓는 감정을 일정 부분 상쇄시킬 뿐.

 

 

특별히 문제될 소지가 없고 일견 평화로워 보이기까지 하던 말임네 가족. 말임이 팔을 다치는 낙상 사고 이후 요양보호사 미선이 고용되면서 그동안 잠재돼 있던 노부모의 부양을 둘러싼 문제점과 갈등이 수면 위로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해결이 난망할 정도로 갈등의 골이 깊지만, 그래도 이들 가족 구성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 최선을 다해온 편이다. 맞벌이를 하지 않고선 생계를 꾸려나가기 어려운 여건, 비록 어느 누구도 만족스럽지 못 한 결과물이기는 해도 종욱 내외는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말임을 향한 부양 책임의 끈을 끝까지 놓지 않아 왔다. 영화는 개인이 노부모의 부양 책임을 전부 떠안기엔 현실적으로 녹록지 않음을 종욱의 가정에 빗대어 웅변한다. 

 

'수명 연장은 재앙'이라는 표현이 근래 대중들에게 심심찮게 회자되곤 한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독거노인이 크게 늘고 있고,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은 OECD 국가들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폭증하는 노인 인구 추세로 볼 때 노인 부양 문제가 시급히 해결되지 않고선 수명 연장은 말 그대로 재앙이 되고 말 것이다. 사회 시스템이 이를 책임져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비록 미봉책이기는 해도 영화에서는 다행히 나름의 해법을 찾아간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 여전히 답이 없다. 암울하다. 영화 <말임씨를 부탁해>는 언젠간 모두 노인이 되고, 또 그 전에 누구나 반드시 겪게 될 노인 부양 문제를 한 가정의 가족 구성원을 통해 들여다본다. 수명 연장이 진정 축복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를 바라며. 

 

 

감독  박경목   

 

* 이미지 출처 : 씨네필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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