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사회적 편견에 맞선 여전사.. 영화 '섀도우 클라우드'

새 날 2022. 2. 6.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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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비바람이 심하게 몰아치던 날 밤의 일이다. 임무 수행을 위해 이륙 준비 중이던 연합군 소속 폭격기에 느닷없이 한 여성이 탑승한다. 그녀는 자신을 공군 장교 개리(클레이 모레츠)라 소개하면서 기밀이 담긴 물건을 급히 수송하라는 상부의 지시를 따르는 중이라고 밝힌다.

 

하지만 그녀의 탑승은 애시당초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승무원들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난감했다. 하지만 당장 이륙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 지휘부는 폭격기 하단에 위치한 볼 터릿에 일단 그녀를 태우기로 결정한다. 터릿에 홀로 갇힌 개리. 폭격기 내부에서는 그녀를 둘러싸고 승무원들의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그때였다. 폭격기 동체 밖을 유심히 살피던 개리의 눈에 감지되는 이상한 물체. 

 

 

영화 <섀도우 클라우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극비 임무 수행을 위해 연합군 폭격기에 탑승한 한 여성 장교에 관한 이야기다. 비행 중이던 폭격기 내부와 외부에서 잇따라 발생하는 예상치 못한 사건과 맞닥뜨리면서 이에 맞서 싸우는 여성의 서사를 SF와 액션 그리고 공포물에 녹였다. 

 

 

개리가 발견한 물체는 비단 적군 비행체뿐만이 아니었다. 흡사 설치류를 닮은 듯한 괴생명체가 폭격기 동체에 달라붙어 시시각각 위협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을 담은 그녀의 보고는 승무원들에 의해 묵살되고 만다. 터릿에 갇혀 옴짝달싹할 수 없었던 개리는 괴생명체의 공격과 적군의 포탄 세례뿐 아니라 남성들의 조롱과 멸시라는 또 다른 적과 맞서 싸워야 했다.

 

 

극은 간신히 한 사람만 앉을 수 있는 좁디좁은 터릿 내에서 등장인물들의 대화만으로 한동안 전개된다. 터릿이 적군과 괴생명체에 의해 잇따라 공격을 받으면서 게리는 비로소 답답하기 짝이 없는 공간으로부터 탈출한다. 그녀는 터릿 내부에서 지휘부의 통제 없이 적군의 공격에 맞서 포탄을 발사하고, 괴생명체를 물리친다. 터릿이 파괴되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 속에서도 침착하게 탈출을 모색하는 그녀. 

 

극 중 개리는 중력 등 물리 법칙을 벗어나는 초인적 면모도 드러낸다. 적군의 공격과 괴생명체의 출현으로 혼비백산하는 남성 승무원들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그려진다. 그녀는 실체가 있는 적뿐 아니라 실체가 없는 적을 향해서도 분노하며 폭주한다. 아슬아슬 손에 땀을 쥐게하는 통쾌한 그녀의 액션만으로도 영화는 팝콘 무비로써 손색이 없다. 걸크러시한 매력을 뿜어낸다. 클레이 모레츠가 클레이 모레츠한 작품이다. 

 

 

극 중 승무원들의 대화는 무전 신호를 통해 개리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남성만으로 채워진 공간이다 보니 그들의 입담은 거칠기 짝이 없다. 성차별 등 혐오 발언은 물론, 조롱이나 성희롱성 발언도 아무렇지 않게 튀어나온다. 지휘부의 묵인 아래 이를 만류하는 사람도 없다. 개리 혼자 저항해 보지만 역부족이다. 여성을 향한 멸시와 편견이 동체 내부를 지배하는 상황에서 개리의 목소리가 그들 사이를 파고들 여지는 없다. 폭격기 동체는 견고한 남성 본위의 사회를, 그리고 터릿에 고립되어 홀로 맞서는 개리는 여성들의 처지를 빚댄 셈이다.

 

영화 도입부의 애니메이션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공군 조종사들 사이에서 떠돌던 그렘린과 관련한 괴담 내용이 담겨있다. 그러니까 극 중 비행기 동체에 매달려 승무원들을 끊임 없이 괴롭혀온 그렘린을 닮은 설치류의 정체는 바로 당시의 괴담에 영화적 상상력이 더해진 결과물이었던 셈이다.

 

 

영화 <섀도우 클라우드>는 지금도 흔치 않지만 당시에는 더욱 드물었을 한 여성 공군 장교의 놀라운 활약상을 액션과 공포 그리고 SF 장르에 담아낸다. 판타지적 요소도 가미됐다. 여성이기 때문에 불가능할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오히려 여성이기 때문에 모든 게 가능했음을 이야기한다. 눈에 보이는 두 개의 적,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적과 일당백으로 싸우는 한 여성의 서사엔 거침이 없다. 

 

극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세계대전 당시 활약한 여성 공군 정비사 및 조종사들의 이미지가 나열된다. 성차별이라는 견고한 장벽을 깬 선구자들에 대한 일종의 헌사다. 과거 실존했던 인물을 기리는 작품이 아니라 SF와 액션 장르로서의 영화적 상상력이 더해진 헌사라는 측면에서 이 작품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감독  로젠느 리앙  

 

* 이미지 출처 :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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