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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향된 믿음의 위험성.. 영화 '언포기버블'

새 날 2022. 2. 3.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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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관 살해 혐의로 형무소에서 20년을 복역하고 가석방된 루스(산드라 블록). 그녀를 향한 세상의 시선은 차가웠다. 여성에게는 흔치 않은 목공 기술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전과 기록은 번번이 그녀의 발목을 잡는다. 법무부 소속 보호관찰관(롭 모건)이 알선해준 수산물 가공 공장에서 생선 다듬는 일을 할 수 있게 된 건 그나마 천운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경관 살해 장소였던 과거 그녀의 집을 다시 찾게 된 루스는 현재 집 주인이자 사회적 약자에게 무료 변론을 해온 존(빈센트 도노프리오) 변호사와 맞닥뜨리게 된다. 알고 보면 이 또한 천운이다. 루스는 존의 질문에 횡설수설 답하고, 존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말로 일관하는 그녀를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안타까운 사연을 전해들은 그는 내면에 감춰진 진정성을 확인하고 루스에게 자신의 연락처를 주며 도움의 손길을 건넨다.

 

 

영화 <언포기버블>은 경관 살해 혐의로 형무소에서 20년 간 복역 후 가석방으로 출소한 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다. 사건 전이나 후에도 오로지 동생만을 생각해온 여성에게 주홍글씨처럼 새겨진 전과 기록은 그녀의 모든 것을 집어 삼킨다. 이러한 낙인은 진실 여부와는 관계가 없다. 확증편향을 일으킨다. 사람들은 이 낙인 뒤에 가려져 있을지도 모르는 진실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다. 영화는 바로 여기에 천착한다. 

 

 

살해된 경관의 두 아들 가운데 형 키스(톰 귀리)는 루스가 출소할 때부터 그녀의 뒤를 밟아온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여성이 평범한 사람들처럼 살아가는 모습을 두 눈 뜨고 차마 바라볼 수 없다고 동생 스티브(윌 풀렌)에게 털어놓는다. 복수를 꿈꾸는 형을 향해 만류에 나서는 스티브. 하지만 그가 루스를 직접 찾아가 몇 마디 대화를 나누게 된 뒤로는 되레 그녀를 향한 복수심에 마음이 동요하기 시작한다. 

 

 

루스에게는 어린 여동생 케이티가 있었다. 루스의 어머니는 케이티를 낳자마자 사망하는 바람에 케이티의 양육은 루스가 전담하다시피 했다. 경관 살해 사건 이후 케이티는 루스가 알 수 없는 곳으로 멀리 입양 보내진다. 때문에 루스가 동생의 안위뿐 아니라 그외의 모든 것들을 궁금해하는 건 어쩌면 인지상정이었다. 루스가 존 변호사에게 요구하는 건 오직 한 가지. 동생을 입양한 양부모는 어떤 사람이며, 동생은 잘 있는지를 확인 받고 싶을 뿐이었다.

 

영화는 루스가 주변 사람들의 냉대 속에서도 동생의 안녕을 확인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스크린에 옮긴다. 지금은 캐서린(아이슬링 프란쵸시)으로 이름이 바뀐 동생은 자신이 5살 때 일어난 경관 살해 사건을 전혀 기억하지 못 하고 있다. 파편화된 기억들만 드문드문 떠오를 뿐. 안타깝게도 언니 루스가 형무소에 갇힌 뒤 20년 동안 써서 보낸 편지도 케이티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루스와 케이티의 사이는 자신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이렇듯 간극이 더욱 넓어졌다. 루스는 이를 좁히기 위해 존과 케이티, 아니 캐서린의 양부모에게 협조를 구하고 안간힘을 쓰며 다가선다.

 

 

극 중 루스를 향한 스티브의 복수 과정은 영화의 또 다른 축이다. 루스가 동생을 향한 연민을 강하게 드러낼수록 루스를 향한 스티브의 감정도 덩달아 폭주한다. 케이티를 향해 두 사람은 각기 다른 방향에서 동시에 수렴해간다. 루스가 자신의 정체를 스스로 밝힌 뒤, 즉 경관 살해 혐의로 20년을 복역했다는 사실이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그녀에게 가해지는 냉대 수준 또한 최고조에 달한다. 

 

 

하지만 영화는 절정에 다다를 무렵 반전 포인트 하나를 남겨둔다. 반전이 있기까지 이 영화는 전과자라는 낙인이 찍힌 뒤 주변 사람들의 냉대에도 불구하고 동생을 위해 무던히 애를 쓰는 언니의 사랑 이야기쯤으로 받아들여지기 십상일 것이다. 끊긴 필름처럼 다가오던 경관 살해 사건의 전모가 마침내 드러나고 나서야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님을 눈치 채게 된다. 필터링이 되기 전과 후의 세상은 전혀 달리 다가오는 법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자신의 가치관이나 판단 등과 부합하는 정보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확증편향에 갇힌 사람들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루스는 진정 '용서 받을 수 없는' 여성일까. 우리는 극 중 등장인물들처럼 루스가 전과자, 그것도 경관을 살해한 끔찍한 살인마라는, 그러한 편향된 사실에만 휘둘려온 게 아닐까. 영화 <언포기버블>은 전과자로 전락한 한 여성이 동생을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그 이면에 감춰진 진실에 다가가는 이야기다. 편향된 믿음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감독  노라 핑스체이트   

 

* 이미지 출처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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