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걷기 운동을 통해 터득한 작은 지혜

새 날 2019. 12. 6.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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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킬레스건에 염증이 발생, 뛰지 못한 지 벌써 8개월째다. 그동안 뛰기를 최대한 자제하고 발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걷기 운동에 집중했다. 더불어 병원 치료도 병행했다. 물리치료와 약물치료 그리고 인대를 강화하는 주사 처방까지, 다양한 형태로 치료해왔다. 물리치료와 약물치료만으로는 염증이 가시지 않던 상황이라 지난 9월부터는 병원을 아예 바꿔 인대 강화 주사 처방을 받기도 했다. 


한 달 여에 이르는 새로운 치료기간이 끝나자 그동안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던 염증이 거짓말 같이 말끔하게 사라졌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온전한 쪽의 발처럼 완벽하게 치유가 됐다고는 볼 수 없다. 여기서 완벽한 치유라 함은, 염증 등 불편함이 없어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를테면 내 오른쪽 발처럼 말이다. 하지만 아킬레스건염이 발생한 왼쪽 발도 어느덧 의식을 거의 하지 못하는 수준에 이르는 등 서서히 상태가 호전돼가고 있었다. 


얼마 전의 일이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평소보다 일찍 운동에 나섰다. 운동이라고 해봐야 동네 하천변 산책로를 한 바퀴 도는 일이 전부이지만 말이다. 아직 초저녁이고 해가 넘어가기 직전이었던 까닭에 어두컴컴한 환경에서 가로등에 의지한 채 산책로를 걷던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전방에 길게 쭉 뻗은 붉은색의 산책로는 흡사 운동장의 트랙을 연상케 할 정도로 곧고 아득하게 다가왔다. 



늦가을 바람이 사부작 온몸에 부딪혀 오니 가뜩이나 주변 분위기에 흠뻑 취해 있던 나의 기분은 더욱 고조돼갔다. 해가 넘어가는 와중이라 하늘의 빛깔은 붉은 물감을 흩뿌려놓은 듯 온통 붉은색 천지였다. 호흡을 가다듬고 평소 걷던 속도로 천천히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몸의 컨디션은 그 어느 때보다 좋았다. 틍증은 어느 쪽 발에서도 느껴지지 않았다. 


바로 그때였다. 내 곁으로 누군가가 획 지나쳐 저만치 앞서가는 게 아닌가. 뛰기 운동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발걸음은 경쾌했다. 부러웠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나도 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염증이 있던 아킬레스건도 더 이상 아프지 않으니 지금쯤이면 뛰어도 큰 무리는 없을 듯싶었다. 



나는 설렌 마음을 가라앉힌 뒤 서서히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지난 4월 이후 처음 달리는 거였다. 오랜만이었지만 예전의 감각이 고스란히 되살아나면서 온몸의 세포를 자극해왔다. 몸이 힘겨워하며 아우성칠 줄 알았건만, 다행히 그런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 이 느낌이야’ 


나는 자신감을 회복하고 예전의 감을 살려 뛰기에 더욱 집중했다. 아마 500미터쯤 달렸던 것 같다. 내 앞에서 뛰어가던 또 다른 사람을 따라잡았다. 나보다 느리게 뛰어가던 터라 자연스레 벌어진 일이었다. 그런데 내가 그를 앞선 지 얼마 안 돼 이번에는 그가 나를 다시 앞지르는 게 아닌가. 


괜한 오기가 발동했다. 나도 속도를 올려 그를 다시금 앞질렀다. 상대방도 지기가 싫었던 모양이다. 또 다시 나를 앞질러가는 게 아닌가. 나는 순간 숨을 헐떡거릴 만큼 몸의 상태가 한계에 다다랐지만 왠지 먼저 경쟁을 벌인 그에게만큼은 결코 뒤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또 다시 그를 앞질렀다. 그 역시 반응해왔다. 다시 나를 앞지르더니 이번엔 나와 나란히 달리면서 말을 걸어오는 게 아닌가. 


자신은 마라톤을 뛸 만큼 단련이 돼 있는 사람인데, 나더러 괜찮으냐며 반문해 왔다. 비록 도발은 그가 먼저 시도해왔음이 분명하지만 어쨌든 그의 눈에는 내가 무리했던 것으로 비쳤는가 보다. 나는 그와 몇 마디를 더 나누며 1킬로미터가량 달린 뒤 달리기를 멈추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사달은 이즈음 벌어졌다. 아킬레스건 염증이 다시 도진 것이다. 다리를 절뚝거리며 걸어야 할 정도로 고통이 심했다. 아뿔싸, 무리를 했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후 아킬레스건염은 나의 왼쪽 발을 한동안 괴롭힌다. 8개월가량 뛰기를 자제하며 치료하여 어느 정도 효과를 본 결과물이 단 한 차례의 오기와 치기어린 욕심으로 한순간에 물거품이 돼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염증이 예전만큼 심하지는 않다는 점 정도랄까. 조금씩 달래고 어르니 염증은 제법 가라앉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 더 신경을 기울였더라면 완벽한 치유에 한 걸음 가까이 다가설 수 있었건만, 괜한 욕심을 부리다가 스스로 화를 자초하고 말았다. 


돌이켜보니 우리가 삶을 살아가다 보면 이와 비슷한 사례를 만나는 경우가 어디 한두 번뿐이었겠는가 싶다. 나이가 점점 들어갈수록 욕심을 줄여나가는 노력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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