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현대인들의 자화상 '오 루시!'

새 날 2019. 8. 27.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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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따분하고 매사 심드렁하기만 한 중년 여성 세츠코(테라지마 시노부). 어느 날 조카 미카(쿠츠나 시오리)의 개인적인 부탁으로 영어학원에 등록하게 된다. 강좌를 맡은 강사 존(조쉬 하트넷)은 강의 첫날 그녀에게 ‘루시’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포옹을 통해 서로 간의 어색함을 떨쳐내도록 훈련을 시킨다.

세츠코는 존의 특이한 수업 방식에 매료된 것인지 아니면 존이라는 인물 그 자체가 좋았던 것인지 점차 관심을 드러내며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한다. 간만에 두근거리는 감정을 느끼게 된 세츠코.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감정은 오래가지 못한다. 다음 회차의 수강 날, 존이 미국으로 급히 떠났다는 황망한 소식을 접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것도 조카 미카와 함께 말이다.

세츠코는 평소 원수처럼 지내오던 언니 아야코(미나미 카호), 그러니까 미카의 엄마를 찾아가 다짜고짜 미국으로 미카를 함께 보러 가자며 종용한다. 물론 세츠코의 진짜 속내는 미카가 아닌, 존을 만나는 게 주 목적이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하여 두 자매는 본격적으로 미국 방문길에 오른다.



영화 <오 루시!>는 무기력한 일상 속에서 관계에 어려움을 호소하며 혼자 살아가는 위태롭기 짝이 없는 한 중년 여성이 외국인 영어 강사를 만나 한 눈에 사랑에 빠져들고, 그를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뒤 이역만리 머나먼 곳에서 겪게 되는 에피소드를 그린 작품이다.

사실 세츠코는 애초부터 존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무래도 한 눈에 빠져든 게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그녀는 어쩌다 존에게 그토록 쉽게 빠져든 것일까? 여기에는 남다른 사연이 있었다.



언젠가부터 세츠코의 주변은 엉망진창이다. 사람과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녀가 혼자 생활하는 집안의 꼴도 말이 아니었다. 짐작컨대 한 사건이 그녀를 이렇게 만든 듯싶다. 과거 그녀와 교제하던 연인은 홀연히 그녀 곁을 떠나 자신의 친언니에게로 향했다. 이 끔찍한 사건은 세츠코에게 치유할 수 없는 깊은 내상을 입힌다. 이후 세츠코의 일상은 온통 무기력이 지배해온다. 사람들과의 관계는 물론이며, 회사 생활도 숨만 끊어지지 않을 정도로 간신히 유지되는 등 그녀에게는 모든 게 시큰둥하기만 했다.

이런 와중에 비록 교습 방식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으나 수업 중 존과의 포옹은 사람 사이의 관계가 쉽지 않아 정에 굶주려온 세츠코의 피를 뜨겁게 달구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모든 것들이 엉망이었던 그녀에게 일순간 존은 일종의 구세주이자 해방구로 다가왔던 것이다. 학원에서 단 한 차례 그와 수업을 함께 진행했던 사실이 전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미국으로 훌쩍 떠났다는 소식에 그를 쫓아 한달음에 그 먼 곳까지 달려간 그녀 아니었던가.



한 눈에 그에게 빠져든 세츠코는 존과 미카와의 관계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에게 애정을 갈구했다. 애정 결핍증에 걸리기라도 한 양 무작정 사랑 하나만을 쫓는 그녀의 무모함은 어느 누가 보아도 애처롭기 짝이 없는 모양새였다. 세츠코, 아니 루시는 과연 자신이 찾는 사랑의 결실을 온전히 맺을 수 있을까?

초연결시대로 지칭될 만큼 관계가 많아지고 복잡해진 세상이다. 우리의 관계는 어느덧 오프라인을 넘어 온라인으로 외연을 확장시키더니 더욱 촘촘하게 얽힌 모양새다. 그런데 참으로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휴대폰에서는 쉴 새 없이 새로운 대화 메시지를 알려오는 등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은 과거보다 더욱 외로움을 호소하고 있는 게 아닌가. 더 많아진 관계, 더 복잡해진 관계 속에서 되레 외로움이 더 짙어지는 이 아이러니는 과연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극 중 노래방에서 정년퇴직하는 직원을 향해 퍼붓던 세츠코의 독설은 사실 그녀 스스로를 표현한 것에 다름 아니다. 그녀에게 처해진 현실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객관적으로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언니와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은 뒤 의도적으로 세상과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즉 회사나, 친구나, 주변의 그 어느 누구도 그녀에게 직간접적으로 위안이 되어주지를 못한다. 마치 현대인들이 쉴 새 없이 메신저 신호음이 울리는 가운데서도 더욱 외로움을 호소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세츠코, 아니 루시가 외로움에 찌든 현대인들의 자화상 아닐까 하는 생각을 더더욱 떨쳐낼 수가 없다.

수많은 관계 속에서 루시는 망망대해에 고립된 외로운 섬과 같다. 세츠코, 아니 루시는 우리 자신에게 투영된 또 다른 우리들의 모습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그녀가 그만 상처 받고 그만 방황하며, 온전한 관계 속에서 사람들과 교류를 나누면서 따스한 온기를 되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감독  히라야나기 아츠코  


이미지 출처 : ㈜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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