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갚아주는 법

새 날 2019. 8. 23.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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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주인공 월터는 모 잡지사 소속 직원이다. 회사는 최근 인터넷 매체가 득세하면서 폐간 위기에 몰렸다. 월터 역시 구조조정의 날카로운 칼끝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월터는 구조조정을 총괄 지휘하던 경영진과는 평소 감정이 좋지 않았던 터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던 어느 날, 엘리베이터 안에서 바로 그 인물과 단둘이 맞닥뜨리게 된 월터, 느닷없이 그를 조롱하더니 심지어 주먹다짐까지 벌인다. 속이 다 후련해지는 순간이다.

물론 이 모든 게 비록 망상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기는 하지만 관객들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갑질을 행사해온 직장 상사에게 통쾌하게 앙갚음하는 월터의 행동을 바라보며 대리만족을 느끼게 된다.

용기가 부족한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망상을 해왔을까? 그렇다면 이번에는 영화가 아닌, 웹툰을 통해 월터에게서 느꼈던 비슷한 감정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 인기리에 연재됐던 웹툰 <삼우실>. 주식회사 대팔기획에서 근무하는 ‘조용히’와 ‘꽃잎 씨’의 활약은 한 마디로 핵사이다다.



그동안 연재됐던 웹툰은 단행본으로도 출간되었는데, 제목 자체가 사뭇 저돌적이다.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갚아주는 법>이라는 제법 긴 제목은 조용히나 꽃잎 씨의 활약 이상으로 묵직한 돌직구가 아닌가.

글의 저자와 그림 작가는 각각 CBS 기자 및 그래픽디자이너 출신이다. 책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에게 조용히 갚아주는 법>은 직장생활을 하다 마주하게 되는 온갖 불편한 상황들을 가정하고, 이에 대한 대처법을 재미있게 담아낸 책이다. 기존 웹툰과 비교되는 지점은 그림으로 미처 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에세이 형식으로 담아 한층 무게감을 더했다는 대목이다.


ⓒ청림출판


직장상사가 “옛날에는”으로 시작되는 표현을 일삼는다면 꼰대로의 무시무시한 변신이 시작되는 신호로 봐도 무방하고, “우리 때는 말이야”로 운을 떼면 이미 꼰대로의 변태가 완전히 끝나 본격적으로 파괴를 일삼는 꼰대들이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라는 저자의 충고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일단 나는 어떤 부류에 속하는지 자기검열부터 해봐야 하는 게 아닐까? 

파릇파릇 신입에 가까운 직원들일수록 “요즘에는”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아울러 직장 내에서는 “옛날에는”과 “요즘에는”이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팽팽히 맞서기 마련이다. 이렇듯 다른 두 노선의 접점을 찾아주는 것이 좋은 선배의 역할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췄다.

웹툰에서 조용히는 상사의 부당한 요구에 맞불로 응수하며 독자들에게 핵사이다를 선사해주기도 하지만, 다양하게 익힌 분신술과 호신술을 활용, 교묘하게 위기를 피해가는 신묘한 묘기를 선보이기도 한다. 독자들은 조용히의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적절한, 그리고 너무도 통쾌한 대처법에 절로 탄성을 내지르거나 물개박수를 치게 된다.



사무실에서 손톱, 심지어 발톱까지 깎는 지저분한 상사, 커피는 여자가 타주어야 맛있고, 과일은 여자가 깎아야 예쁘다고 말하는 얼빠진 동료, 얼굴품평과 몸매품평을 일삼는 정신 나간 남직원, 퇴근시각이 임박해서야 일거리를 던져주는 얄미운 상사, 노래방에서 여직원들을 마치 도우미처럼 다루는 미친 상사, ‘우리 좀 따뜻한 거 좀 마실까’ 하며 커피를 종용하는 몰상식한 상사, 주말에 등산 가자고 말하는 용감무쌍한 상사

일일이 손으로 꼽아보고 헤아려보지 않아서 그렇지, 곰곰이 생각하고 되짚어보면 직장 내에서 평소 우리를 열 받게 하는 일은 차고도 넘친다. 이 책은 그러한 독자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듯 다양한 사례들을 추려내어 꼼꼼하게 그림과 글로 옮겨놓았다.

우리는 월터처럼 그저 망상 속에서만 움직이고 실제로는 행동으로 차마 옮기지 못한다. 용기가 부족해서일 수도 있고, 뒤탈이 두려워서 그럴 수도 있다. 어쨌거나 마음속에만 꼭꼭 눌러 담아두고 누군가에게 하소연조차 못했던 순간들을 주인공 조용히가 이름 그대로 조용히 해결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독자들은 후련함에 대리만족을 느끼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움과 아픔이 비단 나만 앓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함과 동시에 동류의식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는 사실도 작은 위안으로 다가오게 한다.



글  김효은

그림  강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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