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추악한 권력의 이면 '바이스'

새 날 2019. 4. 3. 19:38
반응형

예일대학교를 중퇴하고 주정뱅이로 지내오던 딕 체니(크리스찬 베일)를 변화시킨 건 그의 아내 린 체니(에이미 아담스)의 역할이 컸다. 성공 지향의 그녀는 삶의 목표가 뚜렷한 여성이었다. 당시만 해도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여 두각을 나타내기란 쉽지 않던 시절. 린은 자신의 꿈을 남편을 이용하여 펼쳐 보이려는 속내를 지니고 있었으며, 이러한 그녀의 야심은 딕 체니를 통해 하나둘 실현되기 시작한다. 그녀는 주정뱅이로 살아가던 남편을 변화시켜 권력의 정점에 이르게 한 야심찬 전략가로서의 면모를 드러낸 것이다. 


영화 <바이스>는 미국 부통령의 자리에 올라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며 미국은 물론, 전 세계를 쥐락펴락했던 실존 인물 딕 체니의 삶의 궤적과 함께 그를 둘러싼 정치와 권력 이면의 막전막후를 위트 있게 그린 블랙 코미디 장르의 작품이다. 



영화는 딕 체니의 술주정뱅이 시절이던 20대의 풋풋한 모습과 "위협으로 간주되는 항공기는 격추하라"고 지시하던 2001년 9.11테러 당시 백악관에서의 위엄 있는 모습을 번갈아 비추면서 시작된다. 두 장면 사이에는 사실 수십 년이라는 시간적 간극이 놓여 있다. 영화는 일개 술주정뱅이로부터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인물로 성장하게 된 그의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삶의 흔적과 정치적 역경을 비교적 빠른 템포로 훑는다.


정계에 첫발을 내디딘 딕 체니는 시간이 지날수록 차츰 정치와 권력의 속성을 꿰뚫어보는 혜안을 갖춘 인물로 성장한다. 권력을 향한 야망도 남달랐다. 딕 체니가 본격적으로 정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계기는 미 정부에서 국방부장관을 지낸 도널드 럼즈펠드(스티브 카렐)와 연이 닿으면서다. 



영화에서 도널드 럼즈펠드는 거칠 것 없는 인물로 그려져 있다. 그의 권력은 ‘접이식 나이프’의 달인으로 비유되며, 누군가 그의 앞을 막아서는 순간 그 자리에서 가차 없이 베어버리는 냉혹한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딕 체니는 그의 수하에서 정치를 수련하며 내공을 탄탄하게 쌓아간다.



이후 딕 체니는 백악관 최연소 수석보좌관에 임명되는 등 승승장구하다가 국방부장관이라는 요직을 맡게 되고, 얼마 후 세계 최대 석유회사 ‘홀리버튼’의 대표이사까지 역임하게 된다. 이로 인해 딕 체니는 한동안 정계를 떠나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랬던 그에게 부통령이 되어달라고 먼저 접근해온 건 조지 W. 부시였다. 


은밀한 조건을 내걸고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 딕 체니는 부통령의 자리에 오름과 동시에 막강한 권력을 손아귀에 쥐게 된다. 부시의 비호 아래 그는 백악관의 주요 인사들을 자신의 심복들로 차곡차곡 채우기 시작한 것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움켜쥔 그는 사실상 대통령을 꼭두각시로 만들 만큼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이후 그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결정을 내리면서 세계를 혼돈 속으로 빠트리게 된다. 



딕 체니가 권력의 정점에서 보여준 행보는 광기에 가까운 것이었다. 개인정보법 훼손, 전쟁, 반인도적 고문 행위, 테러 응징이라는 명분하에 행해진 무차별 살육 등 그가 결정한 사안들은 하나같이 무고한 이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거나 절대로 되돌릴 수 없는 끔찍한 결과물들이었다. 딕 체니는 이의 반대급부로 막대한 부를 챙겼다. 당시 그의 광기는 미국은 물론이며 전 세계를 돌아 결국 우리에게까지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딕 체니가 럼즈펠드를 포함한 새 참모진과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면서 고문 및 전쟁 등 비인도적이고 반도덕적인 메뉴들을 일제히 늘어놓은 채 시시덕거리며 풀코스를 선택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괴기스러우면서도 섬뜩한 신으로 꼽힌다. 



풋풋했던 20대부터 노련미가 느껴지는 70대를 오고가는, 반세기에 걸친 딕 체니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묘사한 크리스찬 베일의 연기는 흠 잡을 데가 없었다. 이를 위해 살을 찌우기도 하고 삭발하는 등 그의 연기 투혼은 남달랐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 받아 그는 제76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아울러 샘 록웰이 연기한 조지 W. 부시의 분장은 놀라울 정도로 섬세했다. 부시와의 완벽한 싱크로율을 자랑한다.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의 분장상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건을 통렬하게 비튼 영화 <빅쇼트>를 감독한 아담 맥케이의 연출력은 이번에도 반짝반짝 빛이 난다. 감독은 어느 지점에서 관객의 집중력이 흐트러지는지를 귀신 같이 알고 있는 듯 보였다. 다소 딱딱하게 다가올 수도 있는 정치적 색채의 작품이지만 적절한 순간에 웃음 포인트를 섞는 등 이를 맛깔스럽게 요리, 오락적인 요소도 결코 간과하지 않았다. 덕분에 132분에 달하는 다소 긴 러닝타임이 결코 지루하지 않게 다가온다. 



감독  아담 맥케이


* 이미지 출처 : 콘텐츠판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