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자코메티의 인간적 고뇌와 예술적 열정 '파이널 포트레이트'

새 날 2019. 4. 4.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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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제임스(아미 해머)는 알베르토 자코메티(제프리 러쉬) 및 그의 동생(토니 샬호브)과 오랜 시간을 친구처럼 지내온, 친분이 꽤 두터운 사이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자코메티가 제임스의 초상화를 그리겠다며 모델이 되어줄 것을 부탁해온다. 3시간이면 완성된다고 했다. 아니 아무리 오래 걸려도 반나절이면 전부 그릴 수 있다고 자신했다. 제임스는 자신의 결정이 치명적인 덫으로 다가올 줄은 미처 모른 채 이를 흔쾌히 승낙하고 그의 초상화 작업을 돕기 위해 모델이 되어준다. 


영화 <파이널 포트레이트>는 조각계의 1인자로 알려진 알베르토 자코메티가 작가이자 친구인 제임스의 초상화 작업에 몰두했던 18일 동안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한 예술가의 고통스러운 창작 과정이 스크린 위에 오롯이 표출돼있다.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인간의 본질을 조각으로 재현해낸 실존주의 예술의 거장으로 알려진 조각가이자 화가다. 그의 주요 작품 가운데 하나인 <걷는 남자I>은 지난 2010년 조각 경매 사상 가장 비싼 가격인 1억430만달러(한화 약 1,200억원)에 팔린 바 있다.


영화는 자코메티의 일대기가 아닌 불과 18일 동안의 그의 행적을 좇으며 이를 스크린 위에 옮겨놓고 있지만, 그만의 예술을 향한 투혼과 인간적 고뇌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영화에서 자코메티는 완벽주의자로 그려져 있다. 덕분에 그가 애초 장담했던 작화 시간은 공염불이 되고 만다. 캔버스를 앞에 두고 정작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는 시간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길어도 반나절이면 완성된다던 초상화가 수 일이 지나도 도무지 완성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제임스는 초조해졌다. 당장 고국으로 돌아가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았으나 자신을 모델로 삼은 자코메티의 작품 및 그와의 의리 때문에 파리에 몸이 묶인 채 옴짝달싹할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만 것이다. 



제임스와는 달리 자코메티는 한결 여유로워 보였다. 물론 그 나름으로는 창작의 고통에 몸부림치며 무수한 시간을 고뇌로 소비했을 것으로 짐작되게 하지만 말이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그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더 흘렀다. 그러나 여전히 작품이 완성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자코메티는 시간에 쫓겨 어쩔 줄 몰라해하는 제임스에게 “초상화를 완성하는 건 불가능해. 단지 그리려고 노력할 뿐”이라는 말을 무심히 던진다. 제임스의 표정은 일순간 굳어지고 만다.


자코메티가 미완의 작품을 완성 짓기 위해 캔버스 앞에 앉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별 성과 없이 일어나기를 수차례 반복하는 가운데 제임스는 점차 지쳐갔다. 자코메티는 그림을 그려야 할 시간에 창녀 카롤린(클레멘스 포시)에게 홀딱 빠져 함께 지내기 일쑤였다. 그는 부인인 아네트(실비 테스튀)는 물론, 돈에 대해서도 일절 관심이 없었으며, 오로지 카롤린에게만 집착하는 편집증적인 면모를 드러냈다. 제임스는 이러한 자코메티의 기행에도 불구하고 차분히 그를 기다리며 인내심을 발휘하곤 했다. 덕분에 미국으로 돌아갈 날짜는 갈수록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자코메티는 자신의 작품에 만족한 적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그는 불완전하고 불편한 상태로 스스로를 끊임없이 담금질하고 몰아붙이는 독특한 경향마저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가끔은 자신이 작업한 작품들을 부숴버리는 기행을 일삼기도 했다. 제임스의 초상화가 완성되지 못하는 건 이러한 증상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여지며, 한 예술가의 인간적 고뇌가 읽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자코메티는 자신이 그린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물감으로 덧칠하며 지우고 또 지우기를 반복했다. 완벽과 완전함을 추구하려는 그의 편집증적인 경향에 따르는 결과물이다. 거의 완성되어가던 그림 위로 캔버스 색상의 물감이 덧칠될 때마다 제임스의 속은 자꾸만 타들어갔다.



반나절만에 끝낼 수 있다며 호언장담하던 작업을 무려 18일 동안 이어가면서도 도무지 그 끝을 짐작할 수 없게 하던 천재 예술가의 지난한 작업, 결국 이를 완성 짓게 만든 제임스의 기지는 매우 재치 있게 다가온다. 


영화는 1960년대 프랑스 파리의 고풍스러운 도심과 뒷골목을 멋들어지게 재현하고 있다. 여기에 당시 유행했을 법한 음악이 배경으로 흐르면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영화는 잘 알고 있는 사람이거나 그렇지 않은 사람 모두에게 천재 예술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인간적 고뇌와 예술적 열정을 엿볼 수 있게 하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감독  스탠리 투치


* 이미지 출처 : (주)팝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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