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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를 향한 항거를 넘어 여성해방운동으로 '항거:유관순 이야기'

새 날 2019. 3. 14.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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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1일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유관순(고아성)은 체포되어 공주교도소에 수감되었다가 서대문형무소로 이감된다. 수인번호 371. 그녀는 여옥사 8호실에 배정 받게 된다. 이곳은 3평 남짓밖에 안 되었으나 무려 30여 명의 수인들이 함께 생활해야 하는 공간이었다. 유관순을 비롯한 수인들은 일제의 모진 탄압에도 불구하고 저항을 멈추지 않는다.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는 서울 종로에서 3.1운동이 벌어진 이후 고향인 충청남도 병천에서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유관순이 서대문 형무소에 갇힌 뒤 벌어지는 약 1년여 동안의 뜨거웠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여옥사 8호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역사적 사실들


영화는 유관순의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만 컬러로 연출돼 있을 뿐, 옥중에서의 신 등 나머지 모든 장면들은 모두 흑백으로 처리돼 있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유관순은 물론, 서대문형무소에 함께 수감돼 있던 8호실 여성들의 생활과 행동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게 한 감독의 의도로 읽힌다. 실제로 흑백의 무채색이 감정을 최대한 절제시켜 극에 몰입하는데 큰 효험을 발휘한다.  


영화는 3.1 만세운동의 스펙터클한 활동상보다는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감옥에 갇힌 민중들, 특히 여성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냄으로써 우리가 미처 몰랐던 3.1운동의 이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게다가 유관순이라는 인물뿐 아니라 보통사람들의 당시 활약상을 스크린에 고스란히 옮겨놓음으로써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역사적 사실들을 조명하고 있다. 



당시 3평에 불과한 8호실 감옥에는 유관순 이외에도 여러 인물들이 함께 있었다. 기생 출신 김향화(김새벽), 다방 직원이었던 이옥이(정하담), 유관순의 선배로 알려진 권애라(김예은), 시장에서 장사를 하다가 아들을 잃고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만석모(김남진), 임신한 채 수감된 뒤 갖은 고초 끝에 아기를 낳아 길러낸 임명애(김지성) 등이 바로 그들이다. 


3평 크기의 조그만 감옥 시설은 예상했던 대로 매우 열악하고 끔찍했다. 형무소는 육중한 철문으로 항상 굳게 닫힌 채 일제의 철저한 감시 하에 놓인 상황이었고, 외벽은 벽돌담으로 높다랗게 쌓여있어 위압감을 내뿜고 있었다. 수감자들이 머무는 실내 공간에는 조그만 창 하나만 나있을 뿐이었다. 


조명이나 난방시설은 일절 갖춰진 게 없어 수감자들은 자연 채광에 의지해야 했고, 겨울이면 수감자들이 서로의 몸을 부둥켜안은 채 극심한 추위를 이겨내야 했다. 일제는 이들에게 침묵과 복종만을 강요하며 끊임없는 핍박을 가해왔다. 특히 유관순을 향한 시선은 더욱 차갑고 매몰찬 것이었다.



일제를 향한 항거를 넘어 여성해방운동으로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유관순을 비롯, 감옥에 수감돼 있던 여성들은 더욱 꼿꼿이 그들에게 맞섰다. 일제의 갖은 고문과 회유, 그리고 협박 속에서도 유관순은 자신의 신념을 절대로 굽히지 않고 끝까지 항거했다. 특히 그녀는 극심한 압박과 고통 속에서도 함께 수감된 이들 앞에서는 짐짓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거나 어려워하는 이들을 보살피는 등 17살의 나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강인한 기개를 드러냈다. 


날짜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감각을 유지하기 어려웠던 수형 생활 속에서도 유관순은 묘안을 짜내는 등 3.1운동 1주년에 맞춰 다시 한 번 여옥사 8호실에서의 만세운동을 주도한다. 이 운동은 형무소 밖으로까지 확산되어 많은 민중들이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오게 한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자 관객으로 하여금 뭉클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장면이다.


민중들이 펼쳤던 만세운동은 단순히 일제에 항거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당시 여성들을 둘러싸고 있던 온갖 굴레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강한 몸부림이었다는, 즉 일종의 여성해방운동이었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조명한다. 3.1 만세운동을 일제에 대한 저항운동으로부터 한 발짝 더 나가 외연을 확장시키는 대목이다.



이렇듯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는 평범하기 짝이 없던 17세 소녀 유관순의 행동과 마음을 관객으로 하여금 세세하게 관찰토록 하는 것뿐 아니라 3평 남짓의 조그만 감방 속에서 일제에 당당히 맞섰던 우리 여성들의 끈끈했던 연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관객의 호평을 이끌어낸다. 


일제에겐 눈엣가시였던 유관순은 시일이 지날수록 갖은 고문과 핍박 속에서 육체적 고통이 극에 달해간다. 고문의 후유증으로 음식물 섭취가 어렵게 된 유관순이 당시 느꼈을 고통을 몸소 체험하고 유관순이라는 캐릭터에 조금 더 완벽하게 빠져들기 위해 배우 고아성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열흘 동안 금식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극의 완성도가 높았던 건 아마도 이렇듯 보이지 않는 노력들이 더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영화는 유관순이라는 걸출한 인물의 독립운동뿐 아니라 우리가 미처 몰랐던 평범한 인물들, 특히 여성들이 그들을 옭아매고 있는 것들로부터 스스로 벗어나려고 했던 단호한 신념과 의지를 조명함으로써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해준다.



감독  조민호


* 이미지 출처 : 롯데컬처웍스(주)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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