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당연한 권리를 마음 편히 누릴 수 없는 세상 '내가 사는 세상'

새 날 2019. 3. 1.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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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걸 즐겨하는 민규(곽민규)는 낮에는 퀵서비스를 하고, 밤에는 클럽에서 DJ를 하는 청년이다. 클럽에서는 ‘밍구스’라는 애칭으로도 불린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퀵서비스를 하던 용삼(김용삼)이 자신에게 들어온 급여액수가 조금 부족하다며 민규에게 하소연을 해온다. 민규는 아닐 거라며 용삼을 다독이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신의 급여 통장을 확인해보니 그 역시 부족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여자친구 시은(김시은)에게 이 같은 사실을 알리자 퀵서비스 사장에게 자초지종을 직접 확인해보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이후 민규와 용삼은 사장으로부터 해명을 듣긴 했으나 왠지 찜찜한 구석은 여전했다. 그러다가 거리에서 노동문제를 상담해주는 상담센터 직원으로부터 조언을 구하게 되고, 그들은 다시 용기를 내어 사장을 찾아간다.


영화 <내가 사는 세상>은 자신들의 권리를 마음대로 주장할 수 없는 부조리한 세상에서 오늘도 하루를 힘겹게 버티며 살아가는 청년들의 일상을 경쾌한 톤으로 그려낸 흑백 영상의 작품이다.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마음 편히 누릴 수 없는 세상


퀵서비스 사장은 직원을 정식으로 고용하여 그들과 함께 근무하면서도 근로계약서 작성 따위는 아예 관심조차 없었고, 사전에 어떠한 양해도 없이 보험 명목으로 급여의 일정 액수만큼을 일방적으로 떼어가고 있었다. 근로기준법 위반이었다. 


용삼이 민규에게 급여 액수가 적다는 사실을 처음 언급했을 때 민규는 이를 매우 조심스럽게 받아들여야 했다. 민감한 사안이었던 탓이다. 동시에 자신도 같은 처지가 되면서 고민은 더욱 깊어갔다. 사장에게 이야기하기에는 여러모로 껄끄러웠다. 어쨌든 민규와 용삼은 사장에게 근로계약서 작성을 요구하고 보험 명목으로 떼어간 액수에 대한 입증을, 그러니까 보험증권 따위의 증빙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들의 조치에 사장은 거칠게 대응했다. “이까짓 조그만 업체를 운영하면서 지킬 것 다 지키고 사업을 하면 자신은 도대체 무얼 먹고 사느냐”는 등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멘트를 퍼부으며 민규와 용삼에게 도리어 화를 내고 압박해 들어왔다. 사장의 반격에 움칫하던 민규와 용삼, 이들은 과연 어떻게 될까?


한편, 시은은 모 미술학원 강사로 근무 중이었다. 대입반을 맡은 탓에 잔무가 많았다. 특히 입시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는 연구작을 그려야 했기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물론 이렇듯 가외 일을 도맡아 밤늦게까지 작업하면서도 그에 따르는 추가 수당 등의 요구는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강사의 권리가 무시되는 게 일종의 업계 관행이었던 탓이다. 그녀는 원장에게 하소연해보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뻔했다. 한숨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원장은 시은더러 대입반을 그만두고 중학교반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해온다. 시은이 예전에 가르쳤던 제자가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인연이 닿아 이번에 강사로 채용되었으니, 시은은 새로 오는 그 후배 강사의 새끼 강사 역을 맡아 달라는 내용이었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강사라는 그럴 듯한 꼬리표가 그렇지 못한 시은을 밀어내는 형국이었다. 그것도 자신의 손을 거쳐 간 제자에게 말이다. 종일제였던 근무 방식이 격일제로 바뀌면서 급여도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시은은 이 부당한 처우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게 될까?


“빨갱이에게 물들었느냐” 노동권을 둘러싼 불편한 현실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는 스스로의 시간과 재능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기가 어렵게 한다. 꿈을 향해 늘 노력하면서도 정작 손에 쥐어지는 건 쥐꼬리만 한 열정페이 아니면 모욕감에 불과한 경우가 허다하다. 민규는 너무도 당연하게 누려야 할 권리조차 쉽게 말을 꺼낼 수가 없었으며, 시은은 자신의 재능을 이용하려는 이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들이 근무하던 곳만 유독 그랬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를 둘러싼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그랬던 것이고, 물론 아직도 그렇다, 노동과 관련한 권리는 엄연히 헌법에서 보장되는 권리였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여전히 암울했다.


심지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면 이를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민규가 DJ로 활동하는 클럽은 그와 친분이 있던 지인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현실에서는 전혀 모르는 관계임에도 근로계약서 작성 따위를 생략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더구나 형과 아우로 지내는 사이였던 까닭에 두 사람 간 계약서가 존재할 리 만무했다. 그냥 좋은 게 좋은 식이었다.


적어도 민규보다는 여러 면에서 똑 소리 났던 여자친구 시은은 이러한 상황을 탐탁지 않게 받아들였다. 결국 민규의 등을 떠밀어 공연계약서 작성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클럽 사장으로부터 건네받은 건 계약서의 사인이 아니었다. “빨갱이에게 물들었느냐”는 답변이 전부였다. 비록 허구에 불과한 영화 속 이야기이지만, 어쩌면 이는 노동과 관련한 권리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불편한 현실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사례 아닐까 싶다. 



영화는 당사자들에게 보장돼있는,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주장하는 일이 여전히 껄끄럽고 어려운 현실임을 민규와 시은이 맞닥뜨리게 되는 여러 사건을 통해 적나라하게 꼬집는다. 


가진 것 없는 청년들의 삶은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녹록지가 않다. 이런 처지 속에서 헌법으로 보장된 권리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하게 하는 일종의 관행 같은 사회 분위기를 영화는 현실감 있게 흑백 영상으로 비추면서 앞으로는 누구나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를 떳떳하게 누리는 사회가 될 수 있기를 호소하고 있다.



감독  최창환


* 이미지 출처 : 인디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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