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잔잔한 감동과 공감 불러일으키는 영화 '에델과 어니스트'

새 날 2019. 2. 26.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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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영화 <에델과 어니스트>에서 어니스트는 우유배달부 청년이다. 어느 날 이른 아침 그는 평소처럼 우유 배달을 위해 자전거를 타고 길 위에 나섰다. 어니스트는 건물 창가에서 한 아가씨가 노란색 걸레를 털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선 손을 흔든다. 에델이었다.

매일 같은 시각 같은 곳을 지날 때마다 그녀는 한결같은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때마다 어니스트는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고, 에델은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해했다. 어니스트와 에델은 그렇게 인연이 되어 사랑을 싹 틔웠고, 결국 결혼에도 성공하게 된다.

영화 <에델과 어니스트>는 한동네 사는 우유배달부 어니스트와 가정부 에델이 만나 사랑에 빠져 가정을 꾸리고 함께 늙어가는 40여 년의 잔잔한 세월을 파스텔 톤의 그림으로 묘사한 애니메이션 작품이다.



일반 애니메이션과는 결이 다른 작품

영화 속 등장인물인 에델과 어니스트는 동화책 <눈사람 아저씨>로 알려진 영국의 동화작가 레이먼드 브릭스의 부모님으로, 실존 인물이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이 영화가 완성되기까지는 100% 핸드 드로잉에 무려 9년이라는 제작 기간이 소요됐다고 한다. 174명에 이르는 아티스트의 손길이 이 작품을 거쳐 갔다. 덕분에 같은 애니메이션이라고 해도 디즈니나 픽사 그리고 재패니메이션 작품들과는 그 결이 사뭇 달리 다가온다. 작품성도 인정받고 있다. 세계 10대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인 아니마문디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대상과 2017 BIAF 장편부문 심사위원상 등을 수상했다.



갓 결혼한 에델과 어니스트는 여느 신혼부부들처럼 신혼집 꾸미기에 여념이 없었다. 가구 배치부터 정원 꾸미기까지, 집안 구석구석에는 그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얼마 후 아기도 태어났다. 레이먼드였다. 하지만 곧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남의 일인 양 여겨져 오던 전쟁의 공포가 어느덧 이들 부부 주위로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점차 이들의 삶을 옥죄어오기 시작한다.



라디오를 통해 전장의 위급한 상황이 시시각각 전달되고, 부부는 결국 아들 레이먼드를 시골로 대피시킨 뒤 자신들은 직접 만든 방공호에서 일상을 보내게 된다. 부부는 힘들 법도 하였으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를 묵묵히 감내한다.

에델은 자식을 키우는 여느 엄마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중학교에 입학한 아들이 너무 자랑스러워 이웃에게 떠벌리며 자랑하기도 하였으며, 애써 성장시킨 자식이 부모의 바람과는 달리 다른 방향으로 진로를 정할 땐 못내 아쉬워하기도 했다. 이러한 에델의 모습으로부터는 우리네 어머니의 성정을 보는 듯하다. 부모의 마음이란 국경을 초월하는 그런 류의 것이었던 모양이다.



격동의 시대를 관통해온 부부의 평범한 삶

영화의 시간적 배경인 1920년대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는 사실상 격변의 시대라 할 만큼 많은 일들이 있었던 시기다. 영국 대공황부터 2차 세계대전, 그리고 아폴로호 달 탐사까지, 그 어느 때보다 극적인 사건들을 관통해온 시기다. 하지만 정작 영화에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부부의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소박한 일상이 담겨져 있다. 그것도 파스텔 톤의 수채화처럼 맑은 그림체로 말이다.

여기에 당시 사회상이 깨알같이 묘사되어 있는 점도 흥미를 자아내게 하는 요소다. 부부가 결혼할 당시 집안에서 쓰이던 연료는 주로 석탄이었으나 어느 순간 전기로 바뀌었으며, 전화기와 TV 그리고 자동차 등이 차례로 등장하면서 일상에 큰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반세기 가까이 지나오는 동안 인류 문명에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음을 깨닫게 하는 요소다.



에델과 어니스트가 각기 추구하는 정치 지형은 사뭇 달랐다. 노동당을 지지하는 어니스트 그리고 토리당을 지지하는 에델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조차 사사건건 상대방에게 트집을 잡는 등 분명한 노선 차이를 드러내곤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각기 다른 가치관을 지녔으면서도 갈등 없이 조화롭게 살아가던 부부의 모습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귀감으로 다가온다.

부부가 걸어온 과정은 우리 대부분이 현재 겪고 있거나 앞으로 경험하게 될 일종의 통과의례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여운이 가시지 않았던 이유는 다름 아닌 이로부터 기인한다. 영화는 에델과 어니스트 부부의 평범한 삶을 격동의 세월 속에 자연스레 녹인 뒤 이를 감성 가득한 그림으로 묘사하여 잔잔한 감동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감독  로저 메인우드  


* 이미지 출처 :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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