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하룻밤의 판타스틱 로맨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새 날 2019. 3. 13.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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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머리의 아가씨가 어느 날 어른스럽게 술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에 교토의 이곳저곳을 홀로 떠돌아다니기로 작정한다. 처음의 장소는 결혼 피로연이었다. 그러한 그녀를 좋아하는 탓에 최대한 눈에 띄도록 늘 그녀 곁에서 배회해오던 선배라 불리는 남성 역시 그녀의 여정을 몰래 뒤쫓는다. 


영화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는 어른스럽게 술을 마시고 싶어 하룻밤 동안 밤거리를 헤매는 천진난만하기 짝이 없는 검은 머리 아가씨와 그녀를 짝사랑하는 어수룩한 대학 선배, 그리고 다양한 인물과 신들 사이의 얽히고설킨 에피소드를 그린 판타지 로맨스 장르의 애니메이션이다. 



영화의 원작은 일본에서 누적 판매 부수 130만을 돌파하고 제20회 야마모토 슈고로상 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제4회 서점대상 2위, 출판 전문지 ‘다빈치’ 선정 올해의 책 1위를 차지한 모리미 도미히코가 쓴 동명의 판타지 소설이다. 


영화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는 제28회 오타와 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장편 부문 그랑프리는 물론, 제41회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수상하고 시체스 국제 영화제 등에 공식 초청되면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이다.



영화는 자신을 짝사랑하는 남성의 존재를 알 리 없는 검은 머리 아가씨의 기묘한 하룻밤 여정, 그리고 그녀를 좋아하면서도 이를 표현하지 못한 채 그녀의 주변만 맴돌던 선배라는 남성이 검은 머리 아가씨를 좇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일련의 에피소드들이 각각의 시점으로 스크린 위에 펼쳐진다.



검은 머리 아가씨의 밤거리 기행은 끝이 없다. 그녀는 일행의 손에 이끌려 폰토초 마을의 각종 연회에 참석하게 된다. 결혼 피로연 장소를 벗어나 여자 친구에게 차여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려던 한 남성의 송별회에 참석, 함께 술을 나눠 마시며 그를 위로해준다. 이윽고 할아버지들의 환갑잔치에도 참석하여 인생무상을 논하고 우울해하던 할아버지들에게 그녀만의 밝고 맑은 에너지를 전파해준다. 


왠지 범접하기 어려운 느낌의 노인 이백 앞에서도 그녀의 패기는 결코 주눅들 줄을 모른다. 인생은 불행하다고 외치는 이백과의 ‘모조 전기 브랜디’ 술내기에서 그녀는 그와 반대로 “인생은 밝고 풍요롭다”고 주장하면서 결국 승기를 잡게 된다. 완승이다.



검은 머리 아가씨는 헌책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긴 뒤 어렸을 때 읽었던 책 ‘라타타탐’의 아스라한 추억 속으로 빠져든다. 이즈음 대학은 축제로 한창 들떠있었다. 이곳에서 그녀는 단속을 피해 자리를 옮겨 다녀야 했던 연극 공연에 배우로 참여하기도 한다. 그녀가 하룻밤 사이 이곳저곳으로 자리를 옮기는 동안 신기하게도 계절은 봄에서 여름을 지나 가을 그리고 어느덧 겨울을 가리키고 있었다. 



검은 머리 아가씨의 뒤를 묵묵히 뒤쫓던 선배는 낯선 사건과 잇따라 맞닥뜨려야 했다. 본의 아니게 술에 거나하게 취해야 하거나, 헌책시장에서는 검은 머리 아가씨가 찾던 ‘라타타탐’을 구하기 위해 매운 음식 먹기 대회에 참여하는 등 기묘한 사건에 휘말리면서 온갖 고초를 경험하게 된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오고가고, 다양한 종류의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등장, 엉뚱한 사건들이 벌어지는 등 극의 흐름은 번잡스럽기 짝이 없다. 하룻밤에 불과한 이야기이지만 4계절의 흐름이 모두 녹아들어있는 등 혼란스러운 시간의 설정도 이에 한 몫 더한다. 하지만 극중 에피소드들은 결코 우연히 빚어진 조각들이 아니었다. 감독이 설정해놓은 가상의 세계관은 생각보다 무척 튼튼하고 정교했다.  



그렇다면 원색의 선명한 색감과 독특한 형상의 작화로 표출된 이 작품이 관객에게 말하려고 했던 것은 무얼까? 영화에서 헌책시장의 신은 “책과 책이 연결돼 있다”며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뿐만 아니다. 극중 등장했던 모든 인물들 역시 어떤 식으로든 서로 연결돼 있다. 이백이 전파시킨 감기는 물론이고, 그가 빌려준 돈 역시 “누군가에게 힘과 기쁨이 되어 되돌아올 것이며, 모든 인연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검은 머리 아가씨는 힘주어 주장한다. 



계절이 바뀌는 동안 검은 머리 아가씨는 선배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해 두 사람의 관계는 겉도는 듯 보인다. 그러나 돌고 돌아 두 사람은 결국 인연으로 맺어진다.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비교적 명확해 보인다.



감독  유아사 마사아키


* 이미지 출처 : ㈜라이크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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