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임산부 배려석은 비워두자

새 날 2019. 2. 3.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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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임산부 배려석과 관련한 이슈는 늘 뜨거운 감자다. 이를 비워두느냐 혹은 그렇지 않느냐는 논란은 어느새 관련 민원으로 폭발, 지하철 역무원들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사안이 돼버렸고, 심지어 남성혐오 논란으로까지 불거지는 등 다양한 양태로 발현되고 있다. 최근에는 애플의 무선 통신 파일 공유 규격인 ‘에어드롭’ 기능을 활용하여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남성에게 모욕을 가하는, 이른바 ‘에어드롭 테러’도 잇따르고 있다.

 

에어드롭 테러란 임산부 배려석에 남자가 앉아있을 경우 누군가가 객차 내에 있는 아이폰 등 애플 기기를 이용하는 불특정 다수에게 해당 남자를 비난하는 내용의 이미지를 전송하는 행태를 일컫는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건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사람의 성별이 비단 남자만이 아닐진대 남자만을 콕 집어 특정하면서 자칫 남녀 갈등을 유발할 개연성이 존재한다는 대목이다.

 

임산부가 아닌 일반 승객이 임산부 배려석에 앉는 행위와 관련한 논란은 해묵은 논쟁거리이자 현재진행형인 사안이다. 강제성을 띠기보다는 '배려석'이라는, 글자 그대로 승객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바라고 유도하는 캠페인의 형태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시민의식에 오롯이 기대고 있는 실정인데, 안타깝게도 이 제도가 시행된 지 수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정착되지 못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근래에는 남녀 갈등 현상까지 이와 맞물리면서 논란은 더욱 첨예해지고 갈등의 골마저 깊어지고 있는 양상이다. 에어드롭 테러 행위가 그의 대표적인 사례다.


온라인 커뮤니티


일각에서는 임산부 배려석을 두고 “배려는 의무가 아니다” 라고 주장한다. 전용석이 아닌 배려석이기에 평상시 이를 비워두지 말고 누구나 부담 없이 이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일반 승객과 임산부 구분 없이 앉아 있다가 임산부가 나타나 자리를 비워달라고 요구하면 그때 비워주면 된다는 얘기다. 특히 출퇴근 시간대처럼 객차가 몹시 붐빌 시에는 단 한 개의 좌석도 아쉬운 판국이니 아무나 앉아 있다가 필요한 사람에게 양보하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견 합리적인 생각이라고 판단된다. 이들이 주장하는 대로 해당 제도가 운영되어 임산부가 불편과 고통을 느끼지 않고 시민 간에 쌓인 작금의 갈등 또한 눈 녹듯 사라진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그러나 현실은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 임산부 배려석에 누군가 앉아 있는 상황에서는 임산부가 괜스레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이는 통계 결과로도 극명히 드러난다. 무려 90%에 가까운 임산부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었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지난해 출산 경험이 있는 임산부들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8.5%가 일반인이 자리를 양보하지 않거나 배려석이 부족해 불편을 느꼈다고 답한 것이다.



우리의 시민의식은 고작 이 정도의 수준에 불과하다. 이쯤 되면 “배려는 의무가 아니다” 라는 주장은 왠지 공허해진다. 배려가 부족하여 등장한 제도가 바로 임산부 배려석이거늘, 이를 두고 “배려는 의무가 아니다” 라는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니 얼토당토않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동안 우리는 ‘배려’라는 용어를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해온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배려가 의무가 아니라는 주장처럼 말이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배려’란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쓴다는 의미다. 이를 한자로는 配 ‘짝 배’, 慮 ‘생각할 려’로 풀이한다. ‘짝처럼(配)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생각한다(慮)’는 의미다.

물론 배려란 의무가 아니며, 권리는 더더욱 아니다. 다만, 인류는 그동안 살아남기 위해 무리를 지어 사회라는 공동체를 만들었으며, 이때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이어주고 세상과 조화를 이루게 해주는 연결고리가 다름 아닌 배려였다. 오늘날 사회를 뒷받침하고 있는 관습이나 법 따위의 제도 역시 배려로부터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듯 사회는 배려로 유지돼온 경향이 크다.


KBS 영상


‘배려는 의무가 아니다“ 라는 주장은 결국 ’임산부 배려석 무용론‘에 힘을 실어주고자 하는 목소리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주장으로부터는 “나의 작은 불편함만큼은 결코 참을 수 없다”는 적의가 가득 느껴지기에 왠지 거북하기 짝이 없다. 적어도 우리의 얕은 시민의식 수준에서는 그렇게 해석된다.

임산부는 마땅히 보호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다. 임산부 배려석은 임산부에게 양보하고 배려해주자는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운영되고 있는 좌석이다. 이는 임산부뿐만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조금 더 행복해지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작은 정성과 관심을 모아 이 좌석만큼은 항상 비워두어야 할 것이다.



임산부 배려석이 원래의 주인을 기다리며 항상 비워져 있고, 일반 승객이 눈독을 들이지 않는다면 이른바 ‘에어드롭 테러’ 따위는 애초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울러 작금의 갈등 따위도 없었을 것이다.

임산부 배려석을 원래의 주인인 임산부에게 돌려주자.
이유 불문하고 그냥 비워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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