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금연정책에 태클을 걸고 싶다

새 날 2019. 1. 26.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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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새해 들어서면서 금연구역이 대폭 확대되고 있다. 정부가 전국 5만여 곳의 유치원과 어린이집 부근 10미터까지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하고, 이곳에서 담배를 피우면 과태료 10만 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한데 이어, 서울시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시내 모든 전통시장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서울시의회가 서울시에 있는 모든 전통시장에 금연구역을 추진하는 '서울특별시 간접흡연 피해방지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지난 4일 발의했다. 조례안은 다음달 22일부터 3월8일까지 열리는 시의회 임시회 기간 중 표결에 부쳐진다.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서울 시내에 위치한 전통시장은 모두 352개에 달한다.

금연정책은 매년 강화되고 있는 추세다. 지난 2015년에는 담뱃값을 2천 원 인상 조치한 바 있다. 담뱃갑에도 경고문구 및 사진이 부착되고 있다. 뿐만 아니다.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음식점 등 실내에서의 전면 금연 조치가 단행됐다. 이후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조례를 개정, 실내외 금연구역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조례에 따라 지정된 실외 금연구역은 지난해 기준 1만9201곳에 달한다. 실내 금연구역까지 합하면 금연구역은 총 26만5113곳이나 된다.


ⓒpixabay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소식은 흡연자나 비흡연자 모두에게 그다지 달갑지 않게 다가온다. 담배를 피울 곳이 여의치 않게 된 흡연자들이 금연구역을 피해 술집이나 음식점 등 점포 앞에서 모여 담배를 피우거나 주택가 골목으로 숨어들어와 흡연하고, 그렇지 않으면 아예 길을 걸으면서 담배를 피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풍선효과가 시민들의 건강을 해치고 있다.


정부의 금연 정책은 확고하다. 국민 건강 증진이라는 커다란 그림 아래 오로지 금연에만 방점이 찍혀있다. 흡연에 대해서는 결코 관대하지 않다. 이러한 기조는 정책으로도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와 각 지자체는 “세계보건기구(WTO)의 담배규제 기본협약(FCTC)은 흡연시설 설치를 지양하라고 권고한다. 따라서 흡연시설 설치는 금연정책 추진과 모순된 점이 있다"며 흡연자의 흡연할 권리, 즉 흡연권에 대해서는 상당히 소극적으로 임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금연 사업에 배정된 예산을 통해서도 확인 가능하다. 국내 최대 흡연자 커뮤니티인 ‘아이러브스모킹’에 따르면 2018년 건강증진부담금 수입예산은 4조365억 원이었으나 이 가운데 금연 사업에 배정된 금액은 고작 3%에 해당하는 1500억 원에 불과했다.

현재 서울시에 있는 거리 흡연시설은 모두 43개다. 흡연시설이 아예 없는 자치구가 25개 구 가운데 무려 14개나 된다. 앞서도 살펴봤듯 금연구역은 지속적으로 늘리는 상황에서 흡연시설 설치에는 소극적으로 임하다 보니 비대칭 현상이 심화되어 흡연자들이 흡연할 곳을 찾지 못하고 일제히 거리로 쏟아져 나오거나 주택가로 숨어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연합뉴스


금연구역을 점차 늘려 국민건강을 증진시키겠다는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이 되레 독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이면도로나 골목길 같은 곳은 흡연자들이 즐겨 찾는 공공연한 흡연구역으로 알려져 있는 바람에 이곳을 지나가는 비흡연자들은 곤욕을 치르게 된다. 식당이나 술집 앞은 또 어떤가. 삼삼오오 모여 흡연하는 흡연자들로 인해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이른바 ‘길빵’이라 불리는, 아예 길을 걸으며 흡연하는 흡연자들도 부지기수다. 실내에서 용케 피한 담배연기를 밖으로 나와 다 들이마시는 이 어이없는 형국이 지금 대한민국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무조건적인 금연구역의 확대는 자칫 더욱 많은 사람들을 간접흡연에 노출시키는 결과가 되게 할 수 있다. 유치원 어린이집 부근 10미터 앞 그리고 이제는 전통시장까지 금연구역으로 지정하게 되면 그 많은 흡연자들이 다 어디로 가겠는가? 금연구역 경계 부근 어딘가로 몰려 들어가 이곳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간접흡연 효과를 낳을 게 뻔하다.

물론 그나마 금연구역이라도 잘 지켜지면 다행이다. 지하철역 입구 10미터 이내는 진작부터 금연구역으로 지정된 바 있지만, 이곳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실질적인 계도나 단속이 이뤄지는 것인지 미심쩍은 대목이다.



흡연자들이 한 차례 휩쓸고 간 주변지역은 엉망이 되곤 한다. 담배꽁초는 기본이고, 가래침이며, 일회용 커피 용기 등 온갖 생활 쓰레기들까지 그냥 바닥에 내버려져 이곳을 지나다니는 사람들로 하여금 눈살을 절로 찌푸려지게 한다. 흡연자 개개인의 시민의식에 맡기기에는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얘기다.

일본에서는 수년 전 흡연자가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불똥이 옆으로 튀는 바람에 아이의 한쪽 눈이 실명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후 길거리 전체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하는 특단의 조치가 내려졌다. 다만, 흡연자들이 흡연을 즐길 수 있는 시설을 충분히 확보, 흡연자와 비흡연자 양측 모두를 배려했다. 우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많은 대학들이 교내 금연 조치를 시행하였으나 풍선효과로 인해 흡연자들이 학교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우는 바람에 지역 주민들의 불만이 폭증하자 결국 대부분의 대학들이 전면 금연 조치를 철회하고 흡연 가능으로 돌아선 것이다. 이렇듯 융통성 있는 정책이 바로 오늘날의 일본을 만든 게 아닐까 싶다.

작금의 금연정책은 지나친 비대칭성으로 인해 풍선효과만을 대폭 늘리는 형국이다. 이로 인한 피해는 시민들의 몫으로 고스란히 돌아간다. 국민 건강을 증진하겠다며 추진한 정책이 도리어 국민 건강을 해치는 어이없는 상황이 되고 만 셈이다.

브레이크 없는 정부와 지자체의 금연정책에 태클을 걸고 싶다.

WTO의 권고만을 언급하면서 무턱대고 금연구역만 늘릴 것이 아니라, 조금은 융통성 있는 정책으로 실질적인 국민 건강 증진이 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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