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100년 이웃, 연탄이 식어간다

새 날 2019. 1. 23.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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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142mm, 몸무게 3.6kg, 그리고 몸통에는 총 22개의 구멍이 나있다. 연탄이다.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따스한 온기가 되어줄 이 연탄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도 벌써 100년이나 됐다.

일제강점기이던 1920년 국내에 첫 도입되어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전체 난방의 80%가량을 차지하던 국민연료가 다름 아닌 연탄이다. 어느덧 사양산업으로 추락한 연탄은 꾸준히 그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긴 하나 근래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연탄이 품고 있던 그 본연의 따스한 온기마저 점차 식어가는 모양새다.

지난 19일 방송된 SBS <뉴스스토리> ‘100년 이웃, 연탄이 식어간다’ 편에서는 이러한 연탄의 현실을 짚어봤다.



연탄산업이 위기를 맞기 시작한 건 지난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정부는 공해를 줄이기 위해 특단의 정책을 쏟아냈다. 공해의 주범으로 지목된 연탄 사용을 억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기름보일러가 늘어나고 아파트 건설 붐과 함께 도시가스가 주 연료로 쓰이면서 연탄은 빠르게 밀려났다.



전국적으로 400여 개에 이르던 연탄공장은 어느덧 50개 아래로 줄어들었다. 연탄은 현재 소외계층과 화훼단지, 연탄구이 음식점 등 상업용 수요를 통해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박병구 연탄공장 사장은 연탄산업 흥망성쇠의 산 증인이다. “공장 설비 총 18대 가운데 8대를 철거하였으며, 그나마도 남은 10대 가운데 5~6대만 가동하는 실정”이라고 말한다. “직원은 60명에서 절반가량으로 줄었으며, 대부분이 70대 고령자다.”



하루에 서울에서 생산되는 연탄 수량은 오늘날 연탄 산업이 처한 고된 현실을 극명히 보여준다. 하루 천만 장이 생산됐었으나 근래에는 2곳에서 고작 20만 장이 생산된다고 한다.

가격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화석연료보조금 폐지로 인해 2015년 이후 해마다 20%씩 가격이 인상하고 있는 것이다. 2015년 373.5원이었던 연탄 가격은 2018년 639원으로 껑충 뛰었으며, 배달료까지 더해지면 장당 800~900원이나 된다. 가뜩이나 어려운 현실에서 가격 인상은 연탄의 입지를 더욱 좁히는 촉매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연탄을 원하는 곳은 여전히 많다. 저소득층과 산골 등에 사는 약 14만 가구에는 아직 따스한 온기가 필요하다. 경기침체가 길어지고, 여타의 연료 가격이 급등하면서 농장이나 공장, 식당 등 자영업자들도 값싼 연탄을 많이 찾는다.



연탄은 이웃사랑을 전하는 매개체 역할도 톡톡히 한다. 연탄 기부와 배달 봉사를 통해서다. 높은 지대에 사는 소외계층에게 연탄은 그림의 떡일 경우가 허다하다. 배달 비용 때문이다. 이를테면 연탄 한 장의 가격이 500원이라면 배달비용은 1천 원이 붙는 식이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다. 다행히 각종 단체나 기업체로부터 소외계층에게 직접 전달해주는 연탄 배달 봉사 활동 및 후원이 줄을 잇고 있다. 연탄은 그 따스한 온기마냥 어느덧 봉사하는 기쁨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매개가 되게 해준다.


그러나 현실은 갈수록 녹록지 않은 방향으로 변모해간다. 박주석 연탄봉사단체 부대표에 따르면 최근 소외계층에 대한 연탄 후원이 3분의 1로 크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경기침체가 가장 큰 요인이지만, 연탄값 인상에 따른 여파를 무시할 수 없단다. 가격이 오른 만큼 분량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인 연탄은행 대표 허기범 목사 역시 “연탄가격 인상을 철회하고 저소득층에게 연탄을 보다 싸게 공급하는 가격 이원화정책을 펼쳐줄 것”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현재 1인 시위 중이다. 그는 “연탄가격 인상분만큼 연탄 쿠폰을 추가로 지급하겠다고 하지만 이는 겨울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가격인상은 어려운 사람에게 큰 고통이다”라고 말한다.

한때 영광의 국민연료로 추앙받던 연탄, 어느덧 공해산업이자 사양산업이라는 오명을 듣게 됐다. 다시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이에 대해 한주우 연탄공장 부사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수는 이미 사양길이다. 다만 기대를 걸어볼 수 있다면 남북관계인데, 과거 남북관계가 좋았을 땐 북한의 서민 지원을 위해 2천만 장의 연탄이 공급되어 잠깐 활기를 띤 적이 있다. 때마침 남북정상회담도 개최되고 관계가 회복 조짐에 있으니 이것이 잘 되어 북한의 수요를 기대하고 싶다.”



연탄은 한계 상황에 직면한 이들에게는 온기를 불어넣어주어 힘을 북돋게 한다. 농장과 식당 등 현장에서는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 때로는 이웃사랑을 전하는 매개가 되어 더불어 사는 세상임을 확인시켜주기도 한다. 이렇듯 연탄 한 장에 담긴 가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크다. 점차 온기가 식어가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시, 너에게 묻는다)



* 이미지 출처 : POOQ(푹) 영상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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