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불편함을 찾는 사람들.. 도대체 왜?

새 날 2019. 1. 28.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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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말 한 마디에 음악이 흘러나오고 TV가 켜지며, 커튼이 쳐진다. 일정한 시간이 되면 로봇 청소기가 알아서 청소를 끝내고 충전까지 스스로 마친다. 사람이 들어오면 전등이 켜지고 공기정화기가 자동으로 작동을 하며, 사람이 모두 외출하면 TV의 작동이 멈추고 전등이 꺼지며 커튼이 걷힌다. 스마트 홈 시스템과 인공지능 기술이 더해져 만든 편리함이다.

인공지능은 인내심도 뛰어나다. 아이가 짓궂은 질문 세례를 퍼부어도 당황하지 않고 적절한 답변으로 그때마다 위기를 모면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스마트 홈 시스템 속에서 성장해온 아이는 인공지능을 어느덧 단순한 기계 이상의, 생명체처럼 여기고 다뤄오고 있었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발품을 전혀 팔지 않아도 모든 게 뜻하는 대로 이뤄지는 편리한 세상이다. 불편함은 모두 기계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인간은 편리함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귀차니즘에서 완전히 해방시켜준 이 편리한 세상에 더 불편하게 음악을 듣고, 더 불편하게 글을 쓰며, 더 불편하게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 27일 방송된 SBS 스페셜 ‘불편을 위하여’ 편에서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되는 이 편리한 시대에 오히려 돈을 들여 불편함을 사는 이들을 소개하고, 이들은 왜 느릿느릿 불편을 자처하는 것인지 그 이유에 대해 살펴봤다.



대학생인 이유진 씨는 30년도 더 된 고물 카세트테이프에 푹 빠져있었다. 지금은 구하기도 힘든 공 테이프를 구입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녀의 부모세대들이 좋아했을 법한 록밴드 퀸의 매력에 흠뻑 빠져든 채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12차례나 관람하고 퀸의 노래가 저장된 카세트테이프를 구입하여 이를 듣고 열광한다. 



굳이 카세트테이프를 이용하여 퀸의 노래를 듣는 이유를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퀸이 존재하던 시대의 방식으로 음악을 듣고 그때의 감성을 고스란히 느끼고 싶었다.”

MP3 음악파일을 일부러 카세트테이프로 옮겨 저장하는, 보통사람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도 그녀는 선뜻 행한다. 친구에게 전달해줄 선물도 다름 아닌 카세트테이프다. 이곳에 자신의 생각을 정성스레 녹음하고 표지까지 직접 꾸미는 수고로움을 자처한다.



그녀가 카세트테이프에 매료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MP3파일은 실체가 없다. 이 무형의 존재를 카세트테이프로 옮겨 저장하게 되면 실체가 있는, 그것도 세상에서 유일한 형태를 갖추게 된다. 음악이라는 실체를 소장하게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왜 편리함을 놔두고 굳이 불편함을 구입하려는 걸까? “너무 빨라 팍팍한 삶 속에서 느리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지금은 생산이 되지 않고 구하기도 쉽지 않은 수동타자기의 매력에 푹 빠진 사람도 있다. 박춘형 씨는 수동타자기의 매력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손맛과 귀맛이 존재한다. 타자를 쳤을 때 손으로 느껴지는 그 느낌과 소리로 전해지는 타격음은 희열감을 불러온다. 아울러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컴퓨터와 달리 타자기는 한 글자 한 글자 입력할 때마다 관절의 움직임이 다 드러난다. 집중할 수 있게 해주어 좋다.”

타자기 수리점을 운영하는 김재홍 씨 역시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타자기는 직관적이다. 컴퓨터와는 달리 글자를 입력할 때 기계 관절이 위로 올라가 종이를 때리고 타격하는 그 느낌이 손으로 고스란히 전달된다.”



타자기는 지난 2011년을 끝으로 전 세계 어디에서도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다. 하지만 너 나 할 것 없이 편리함에 흠뻑 도취된 분위기 속에서도 이 둔탁하기 짝이 없는 손맛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단양의 산골에 위치한 한 민박집은 요즘 유행하는 컨셉과는 정 반대다. 불편함투성이다. 방의 난방도 손님이 장작을 직접 패고 불을 지펴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부엌은 방과 따로 떨어져 있어서 오고 갈 땐 늘 신발을 갈아 신어야 하는 수고로움이 뒤따랐으며, 더욱 황당한 건 수도시설마저도 밖에 별도로 설치돼있다는 사실이었다. 숙박 이용자들은 돈을 내고 스스로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민박 운영자 공기대 씨는 “흘러가는 환경 속에서 한 명의 좀비처럼 그 안에 파묻힌 채 자신을 잊고 지내오다가 여기에 온 뒤로 비로소 자신을 찾게 됐다. 이러한 불편함을 통해 나를 찾게 된 것이다. 문득문득 행복이라는 게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편리해진 세상이거늘 사람들은 왜 불편을 다시 찾는 걸까? 이에 대해 계명대 의대 교수인 이현수 씨는 “뇌는 움직임을 위해 태어난 기관이다. 갈수록 덜 움직이게 되는 사회가 되면서 이 상황을 뇌가 불편해하고 있다. 뇌가 불편함을 찾도록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고 말한다.



정신과 전문의인 박한선 씨는 이렇게 주장한다. “진화심리학적으로 볼 때 인간의 진화적인 심리적 모듈은 플라이스토세에 가장 적합하도록 진화하고 적응해왔다. 257만 년 전 생성된 인간의 유전자는 대부분 플라이스토세에 형성되었다. 산업혁명부터 지금까지는 고작 200년밖에 안 되었기에 찰나에 불과하다.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는 여전히 돌도끼를 다듬던 구석기인에 해당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도구를 만들고 쓰고 조작하는 것을 통해 즐거움과 기쁨을 느꼈을 유전자가 존재한다. 너무도 편리해진 현대인들에게 이러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그동안 인류의 역사는 끊임없이 불편을 극복해온 여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결과 우리는 오늘날과 같이 손 하나 까딱 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편리한 생활을 누리게 됐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편리해지면 편리해질수록 무언가 알 수 없는 공허함을 호소하곤 한다.

불편함을 찾는 현상은 그에 따르는 반작용일까? 아니면 전문가들이 언급한 것처럼 뇌의 영향이거나 유전자 때문일까? 당신은 어떤 불편함을 남겨두시겠습니까?



* 이미지 출처 : POOQ(푹) 영상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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