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내가 머리 염색을 하지 않는 이유

새 날 2019. 1. 6.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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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용실에 가면 가끔 듣는 소리가 있다. 흰 머리카락이 제법 많아졌단다. 내가 볼 땐 그다지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말이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흰 머리카락은 정면보다 귀밑머리나 두정부 등 눈길이 잘 가지 않는 곳부터 점령해 들어오기 때문이다.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 원래의 것보다 이 돌연변이 녀석들의 숫자가 훨씬 많아지기 십상이다.

그러니 특별히 신경을 기울이지 않는 이상 내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노릇이었다. 아내도 제법 희어진 내 옆머리를 살피면서 놀라움을 표현해오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대로 화들짝 놀라야만 했다. 그나마 미용실 헤어 디자이너가 아직은 염색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작은 위안을 느낄 뿐이다.

예전 같았으면 흰 머리카락은 노년의 상징이자 존경의 대상이었기에 이를 굳이 검게 염색하는 일은 필요치 않았다. 물론 지금처럼 관련 산업이 발달하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그러나 현재 검은 머리카락은 일종의 젊음과 건강함의 상징이다. 굳이 젊고 아름답게 표현하여 꾸밀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되레 게으르거나 고집 센 사람으로 취급당하기 꼭 알맞다. 때문에 흰 머리카락이 한 올이라도 있으면 모두들 이를 뽑기 위해 혈안이 되곤 한다. 나 역시 아내와 번갈아가며 흰 머리카락을 뽑아주곤 했다. 근래에는 이마저도 의미가 없어졌지만 말이다. 또 다시 한숨이 나온다.



생리적인 흰 머리카락은 노화 현상에 의해 자연스레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통 40대에 시작하여 60세를 지나면 눈에 띄게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보다 훨씬 먼저 고령사회를 겪으면서 이런 쪽으로는 한 발 앞서있는 일본에는 ‘어라운드 피프티’ 라는 용어가 있다. 사회생활은 물론, 가정에서도 이제는 정점을 찍고 어느덧 노년으로 접어드는 시기, 이른바 ‘나이듦’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야하는 연령대인 50세 언저리, 즉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에 해당하는 이들을 일컫는다.


ⓒ푸드&메드


물론 우리에게도 일본의 ‘어라운드 피프티’와 유사한 쓰임새로써의 용어 하나가 있다. 다름 아닌 ‘50+(50 플러스)’다. 생리적으로 50세 언저리에 이르면 흰 머리카락이 본격적으로 나온다고 알려져 있듯이 어쩌면 이 은발은 그맘때 이후의 연령대임을 나타내는 뚜렷한 잣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굳이 어려 보일 목적이 아니라면 이를 굳이 피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우리가 사는 곳은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해있는 사회다. 덕분에 동안 만들기와 마른 몸매 가꾸기 등의 행위가 일상에 가까운 데다가 심지어 성형마저도 보편화돼있다. 그러다 보니 제 나이보다 어려 보이도록 하는 건 미덕이고, 반대로 제 나이 그대로 보이게 하거나 늙어 보이도록 방치하는 건 일종의 죄악이자 꼰대로 취급받기 십상이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개인에게 일일이 염색을 강요하고 있는 셈이며, 이렇듯 주류에 편입하고자 하는 사회 구성원들의 몸부림은 생존 본능에서 비롯된 기제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머리 위에 점차 하얗게 내려앉는 서리를 건드릴 생각이 추호도 없다. 그맘때의 나이라면 자연스레 하얘지는 것을 왜 다른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이를 인위적으로 까맣게 물들여야 하는가. 여기에는 나름의 치밀한 계산도 깔려 있다. 나는 그냥 원래의 제 나이로 보이기를 바란다. 다만, 관리에 조금 더 신경을 기울여 가장 잘 어울릴 법한 패션 아이템으로 이를 승화시킬 계획이다.

우리 사회 역시 일본처럼 고령사회로 깊숙이 접어들수록 고령 인구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질 테니, 굳이 ‘나이듦’에 대해 이를 감추려하거나 부끄러운 것으로 치부할 필요가 없어지는 시기가 곧 도래할 테다. 고령사회에 진입하면 아무래도 주류에 해당하는 연령대도 자연스레 같이 높아질 테니 말이다. 나이가 지금보다 조금은 더 들은 뒤, 나이듦 그리고 은발도 얼마든 멋져 보일 수 있음을 내 몸소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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