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롱패딩 유감

새 날 2019. 1. 7.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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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회 등 모임에 나가면 꼭 입고 간 옷의 뒷덜미를 들춰보거나 옷의 왼쪽 날개를 굳이 펼쳐놓고 브랜드를 확인해보는 친구가 있다. 간만에 만난 녀석인데, 사람이 반가운 게 아니라 내가 입고 있는 옷의 브랜드가 무엇인지 더 궁금했던 모양이다. 짐작컨대 지금 입고 있는 옷의 브랜드를 통해 나의 경제력을 가늠해보고자 하는 행위였음이 틀림없다. 나쁜 놈.. 정작 함께 수업을 들으며 학창 생활을 할 땐 잘 몰랐었는데, 사회생활에 몸담고 조금 더 성장한 뒤 이런 모습이 있었음을 뒤늦게 인지하게 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속물적이기에 기분이 언짢게 다가올 수도 있는 사안이지만, 우리의 오래된 인연은 이러한 허물마저도 기꺼이 덮어버리곤 한다. 하물며 어른들도 이럴진대 한창 성장하는 멋모르는 아이들은 어떨까? 더하면 더했지 적어도 덜하지는 않을 줄로 믿는다. 요즘 어디를 가든 롱패딩 패션이 유행이다. 특히 청소년들에게는 거의 교복처럼 자리 잡았을 만큼 큰 인기를 누린다.

이맘때 아이들은 무리를 지어 몰려다니는 경향이 있다. 덕분에 시커멓고 길쭉길쭉한 것들이 거리 한켠에 몰려 있으면 십중팔구 바로 그맘때의 녀석들임을 깨닫게 한다. 이러한 차림새는 비단 중고등학생들로 국한하지 않는다. 근래에는 대학생쯤 되어 보이는 또래들도 한결같은 패션이다. 이러한 현상은 수년 전 특정 아웃도어 브랜드가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하면서 등골 브레이커로써 맹위를 떨치던 기억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때문에 작금의 롱패딩 유행은 당시 아웃도어 유행의 시즌2라 부를 만한 것이다. 롱패딩은 이의 주재료인 오리털이나 거위털이 유독 많이 충전되는 까닭에 그만큼 가격도 만만치 않다. 물론 브랜드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겠으나 보통 5,60만 원은 거뜬히 넘어간다. 그러니까 온 천지를 시커멓게 물들이고 있는 이 롱패딩의 물결은 사실 경제적인 가치만 따져보더라도 어마어마한 수준이 아닐 수 없다. 불황이라며 모두가 울상이지만 적어도 아웃도어 업체는 그로부터 예외임이 분명하다.

롱패딩은 요즘 아이들에게 있어 이른바 ‘인싸템’ 혹은 ‘생존템’으로 불린다. 즉, 주류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갖춰 입어야 하는 필수 아이템이라는 의미다. 그러다 보니 애꿎은 부모들만 허리가 휠 판이다. 물론 이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사회는 원래 그래왔다. 어른들조차 사람을 평가함에 있어 입은 옷의 브랜드로 가치를 매기는 판국에 아이들인들 어련할까 싶다.



하지만 아무리 생존본능에서 비롯된 욕구의 발현이라 해도 한쪽으로의 지나친 쏠림은 무언가 사회적 병리 현상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게 한다. 물론 무엇을 입든 개인의 취향은 마땅히 존중 받아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독 아웃도어 의상을 좋아하는 바람에 해외여행지에서까지 이의 열풍이 불어 현지인들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는 보도도 잇따랐지만, 사실 본인이 좋으면 그만이다. 손가락질을 하든 말든 민폐만 아니라면 굳이 이 때문에 주눅 들 필요는 없다.

다만, 개성이라고는 일절 찾아볼 수 없게 하는 작금의 현상이 벌써 수차례 반복되고 있음에 나는 주목한다. 단순히 유행하는 패션이라고 칭하기엔 무언가 찜찜한, 모두가 자신도 모른 채 빠져들고 있는, 가까이서 볼 땐 전혀 눈치 챌 수 없으나 제3자의 시선으로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조망해볼 때 너무도 이상하기 짝이 없는 현상, 이쯤 되면 사회적 병리 현상임이 분명하다. 게다가 여기에는 수많은 이해관계들이 얼기설기 얽혀있다. 일부 아웃도어업체의 교묘한 상술이 더해지고 있고, 앞서도 언급했던 일부 사회 구성원들의 생존하고자 하는 본능 내지 욕구, 그리고 과시하고 싶은 속물적인 성향 등이 한데 어우러진 일종의 욕망덩어리다.



특히 각 대학교의 이름이 아랫단에 또박또박 적혀있는 검정색 롱패딩은 지독한 학벌주의마저 이 욕망에 관여돼있음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면서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온갖 병폐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존재로 다가오게 한다. 그래서 작금의 롱패딩 현상이 씁쓸하다. 유감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니 친구 녀석들도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기는 하다. 예전처럼 막무가내로 내 옷의 브랜드를 확인하는 녀석을 이제는 찾아볼 수가 없으니 말이다. 그러기에는 세상을 너무도 많이 알아버린 것일까? 어쨌든 또 다시 내 옷의 브랜드를 확인하려는 친구가 있으면 이제 난 점잖게 한 마디 타이르려 한다. “녀석아, 내 진정한 가치는 옷으로 평가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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