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연을 잇고 가족을 만든다

새 날 2018. 12. 31.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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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이 아닌 비혼이라며 힘주어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면서 어느덧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다. 결혼 절차도 점차 간소화되어가고 있다. 그간의 앞선 세대들이 결혼식 등을 과시의 수단으로 삼아온 경향성이 없지 않았는데, 무엇보다 실리와 합리성을 추구하는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는 이러한 현상이 영 거추장스럽게 다가오는 것이다. 덕분에 그와 얽힌 전통 문화도 사라져간다.


지난 30일 밤에 방송된 KBS 시사교양 프로그램 '한국인의 밥상'은 이렇듯 변화하는 세태 속에서 점차 사라져가는 우리의 전통 혼례 음식의 면면을 들여다보며 아쉬움을 달래게 한다. 전통 혼례 음식인 이바지, 옛날에는 혼례를 치르고 난 후 신랑과 신부를 맞이하는 양가에서 큰상을 차리고 이를 사돈댁에 보내는 풍습이었는데, 근래에는 혼례 음식의 형태로 변모되었다. 이바지 풍습은 각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다.



방송에서는 최불암 씨가 전라북도 전주와 경상남도 산청의 전통 혼례 음식 전수자들을 직접 찾아가 그들의 정성 어린 음식 조리 과정과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듣고 이를 시청자들에게 풀어놓는다. 마지막으로 서울에서 이바지 음식을 전문적으로 개발하여 판매하는 이바지 음식 전문가를 만나 소중한 절차를 거쳐 탄생한 음식이 어떻게 인연으로 이어지게 하고 가족을 만드는지 그 과정도 찬찬히 살펴본다.



이바지 음식, 즉 우리식 전통 혼례 음식에 깃들어 있는 가치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무얼까? 정성 아닐까? 산청에서 나고 자라 어머니의 음식 솜씨를 그대로 전수 받은 한 출연자의 경험담은 이바지 음식에 담겨 있을 법한 그 고유의 가치를 고스란히 느끼게 한다. 그녀가 결혼할 때 홀어머니께서 밤잠을 자지 않고 10일 동안 꼬박 만든 이바지 음식을 시댁에 보냈다고 하는데, 당시엔 무슨 의미인지 몰랐으나 시간이 흘러 돌이켜보니 며느리를 괄시하지 말라는 의미와 함께 뒤에는 늘 당신이 지키고 있으니 기 죽지 말고 결혼생활에 임하라는 메시지였노라고 회고하고 있다. 남편 없이 홀로 딸을 키우고 시집을 보내야 했던 어머니의 애틋한 심경이 음식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던 셈이다.



이바지 음식에는 이렇듯 그 어떤 종류와도 견줄 수 없는, 보내는 이의 정성이 듬뿍 담겨 있다. 실제로 방송을 통해 볼 수 있었던 음식 조리 과정은 흡사 한 땀 한 땀 정성을 다해 명품이 탄생되듯이 만드는 이의 열과 성이 조리 과정 속에 모두 녹아들어 있었다. 식재료의 구입 과정도 예외가 아니다. 여느 음식보다 더 많은 신경을 기울여야 했으며 최고만을 고집하고 있었다.



말린 문어를 오로지 칼 하나로 조각을 내어 닭과 봉황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예술이 따로 없을 정도다. 곶감은 몇 차례의 손길이 닿자 이내 아름다운 꽃으로 변해 있었다. 전통 혼례 음식이라고 하여 전통만 고집하는 건 아니다. 가히 퓨전이라고 칭할 수 있을 정도의 창의력이 가미된 음식의 면모를 보노라면 입이 절로 떡 벌어진다. 이렇듯 음식을 만든이와 받아든 이는 어느덧 정성이라는 매개로 서로 간의 연을 이어가고 있었다. 가정과 가정의 결합과 더 큰 가족의 탄생은 아마도 이러한 정성이 빚어낸 놀라운 피조물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제 이 전통마저도 점차 사라져간다. 그 흔적과 징후는 여러 곳에서 드러난다. 100년의 전통을 간직한 채 여전히 서울 시민들의 발길을 끌어 모으는 광장시장에는 폐백골목이라고 하여 이바지 음식을 준비하는 점포들이 원래 즐비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떡볶이 등의 인기 있는 간식거리에 그 자리를 내어주면서 구석진 곳으로 밀려나 간신히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 또한 시대의 변화상이라 할 만하다.


전통 혼례 음식을 준비하는 데는 비용이 만만찮게 소요된다. 좋은 식재료가 사용되고 있고 정성이 듬뿍 담긴 음식이니 충분히 그럴 법도 하지만 여기에 결혼이라는 이벤트가 몸값을 조금 더 키우고 있다는 점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이 때문에 혹자는 허례허식의 대표적인 구습이기에 당장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결혼은 일종의 계약으로써 이바지 음식을 건네며 주고 받는 건 각기 다른 집안끼리 인연을 맺고 입맛을 나누는 풍습이기도 하다. 아울러 앞서도 살펴봤듯 밥상을 차리는데 들이는 정성은 어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이다. 비록 결혼이라는 제도가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변모하고 있고, 간소화 추세 역시 눈앞에 닥친 현실임이 분명하지만, 어쨌든 우리만의 소중한 가치가 담긴 전통은 어떤 방식으로든 살려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 이미지 출처 : POOQ(푹) 영상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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