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삶에 낙이 없다는 친구에게 건네는 명함 한 장

새 날 2019. 1. 9.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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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티스토리 결산 당시 받았던 명함이 아직도 내 서랍 속에 고이 간직돼있다. 그동안 단 한 장의 외부 이탈도 없었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다른 티스토리 이용자에게 기회를 양보할 것이지 무엇 때문에 이벤트에 참여했느냐는 힐난이 들려올 법도 하다. 이를 간절히 원했던 이용자들이 부지기수였을 테니 말이다. 물론 나인들 이와 관련하여 할 말이 전혀 없지는 않다.

결산 이벤트에 당첨되고 명함을 손에 직접 건네받게 될 때까지만 해도 나 역시 명함을 과연 어디에 뿌려야 하는지 따위의 생각으로 꿈에 부풀어있었다. 친구는 물론이고, 지인들에게 죄다 뿌려야지 하면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정말이다. 허나 웬걸, 막상 명함이 내 손에 쥐어지니 생각이 180도 달라지는 게 아닌가. 무언가 복잡 미묘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내가 평소 알고 지내온 사람이든 그렇지 않든 누군가에게 명함을 든 내 손을 내미는 일이 왠지 부끄러울 것 같았다.



블로그 글쓰기가 내게는 제법 의미 있는 행위임이 분명했지만,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게 생각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핑계를 대자면 수도 없이 많았다. 이 명함 하나로 인해 굴비처럼 엮이는 소소한 걸림돌들이 나로 하여금 섣불리 이를 타인에게 내밀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가령 블로그를 내 스스로 알리는 행위는 왠지 내 속살을 슬며시 들추는 느낌 같았고, 불특정다수에게 공개되는 건 이젠 제법 익숙한 일임에도 무슨 연유에서인지 잘 아는 사람에게 내가 직접 쓴 글을 보인다는 건 시쳇말로 쪽팔리는 일로 다가왔다.



또 다른 문제점도 있었다. 내 글들 가운데는 가치판단과 관련한 것들이 제법 있다. 누군가에게는 이런 글들이 불편하게 다가올 수도 있는 사안이다. 때문에 나 역시 부담스러운 상황으로 연결 지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머리가 아득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괜스레 논란이 되게 하거나 최악의 경우 나라는 사람을 특정 시각과 진영 안에 가둬놓는 결과가 될 수도 있기에 더더욱 싫었다. 어쨌거나 내 티스토리 명함 한 장을 누군가에게 건네는 행위는 단순히 일반 명함을 건네는 것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사안이었다. 

어제 저녁 절친 녀석을 만났다. 원래는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만나는 사이였으나, 지난해 말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송년회도 갖지 못하는 바람에 결국 해를 넘긴 뒤에야 비로소 만남이 이뤄졌다. 달수로는 근 3개월만이며, 햇수로는 해를 넘기는 바람에 무려 2년만이다. 한 살 더 먹더니 녀석이 제법 이상한 소리를 다 한다. 삶에 낙이 없단다. 허허 정말 별 싱거운 녀석을 다 보겠군.



치열하게 살아오면서 어느덧 청춘의 흔적조차 남지 않은 나이가 되더니 실없는 소리를 다 하는가 싶었다. 녀석도 이제 진짜로 나이가 든 걸까? 아이들은 모두 성장했고, 회사에서는 지금 당장 나가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나이, 그동안 살아온 삶의 흔적은 휑해지는 이마와 깊어지는 주름에 켜켜이 쌓인 상황, 문득 녀석의 얼굴을 보니 왠지 나를 바라보는 느낌이 아닌가. 결코 남의 얘기 같지 않았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이 상황에서 나는 그만 너무도 빤한 소리를 지껄이고 말았다. 그러니까 무언가 꾸준히 집중할 수 있고 스스로 만족할 만한 취미거리라도 찾아보라고 말이다. 내 목소리에는 왠지 힘이 들어가 있었다. 자신감의 발로였다. 이게 웬 근자감인가. 나 나름으로는 믿을 만한 구석이 있었던 모양이다. 삶에 낙이 될지의 여부는 일단 불투명할지언정 적어도 집중해서 꾸준히 몰두하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나는 수년 간 이곳 블로그에서 글쓰기를 해왔다. 덕분에 어느덧 내 삶의 일부가 될 만큼 글의 숫자가 차곡차곡 쌓여가던 참이다. 다른 이들이 볼 땐 비록 보잘 것 없는 행위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친구 녀석의 하소연을 접하고 보니 이 글쓰기야말로 친구가 말한 상황에서 바로 내가 비빌 언덕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자신을 가다듬는데도 글쓰기만큼 좋은 건 없었던 것 같고, 그날 느꼈던 이것저것을 오롯이 글로 옮겨놓으면 감정을 배출시키는 효과 따위도 누릴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글쓰기에도 노력이 필요하다. 잘 하기 위함이 아닌 오로지 꾸준히 하기 위해서다. 다른 모든 일도 그렇지만 글쓰기 역시 꾸준함이 생명이다. 왕도란 없다. 아울러 어느 정도의 인내력도 요구된다. 글이 잘 안 써질 땐 당장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이놈의 글쓰기가 도대체 뭐라고 뻘글, 망글을 남발하기라도 한 날에는 괜스레 다른 일까지 손에 잘 잡히지 않곤 한다. 게다가 많이 쓸수록 그만큼 글 솜씨가 늘어난다고 하더니, 어찌된 영문인지 적어도 내게는 그러한 기적이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하여 반드시 작가라는 호칭을 듣는 전문가만이 글을 쓰라는 법은 없다. 개개인의 삶의 양태가 모두 다르듯이 각자의 글쓰기에는 당사자만이 지니고 있을 법한 고유한 DNA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굳이 잘 쓰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자기만 만족하면 그만이니 말이다. 매일 조금씩 끄적거리다보면 시간이 조금 더 지나 하루라도 글을 쓰지 않으면 왠지 허전해질 정도로 몸에 익숙해지게 마련이다. 적어도 이렇게 될 때까지는 어떻게든 어려움을 참고 이겨내야 한다.



나는 서랍 속에 고이 잠들어있는 티스토리 명함을 조심스럽게 꺼낸 뒤 손으로 만지작거려본다. 친구 녀석을 만난 뒤로 난 어느 누가 됐든 이 명함을 자신 있게 건넬 수 있을 것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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