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크리스마스 선물, 그 아련함과 아쉬움

새 날 2018. 12. 24.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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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살 무렵의 일이다. 크리스마스 당일 아침 눈을 뜨니 머리맡에 선물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멋진 장난감 자동차였다. 미니카는 아니었고 손에 쥐고 놀 수 있을 정도의 적당한 크기였다. 반짝반짝 윤이 나는 빨강 색상의 꽤나 근사한 형태의 승용차였다. 당시는 단순히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로부터 선물을 받는 날이 크리스마스로 알고 있었으며, 착한 일을 많이 해야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철석같이 믿던 때다.


나는 하루종일 이를 가지고 놀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싫증이 났던 모양이다. 장난감을 갖고 동생과 함께 집밖으로 나갔다. 골목을 벗어나면 조금 넓은 길이 나오는데, 차도는 아니었으나 제법 많은 차량들이 지나다니는 이면도로였다. 문득 장난감 자동차를 진짜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길 위에 놓으면 어떻게 될까 하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바로 실행에 옮겼다. 멀리서 자동차가 오는 것을 확인한 뒤 장난감을 적당한 곳에 위치시켰다. 자동차가 지나갔다. 하지만 멀쩡했다. 위치 선정이 잘못된 탓이다. 나름 머리를 굴려보았다.


당시는 비포장이었던 터라 자동차 바퀴자국이 길 위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래, 그위에 놓으면 되겠구나. 멀리서 큰 트럭 한 대가 다가오는 모습이 시야에 포착됐다. 잽싸게 움직여 바퀴자국이 남아 있는 곳에 내 장난감을 놓은 뒤 물러섰다. 트럭이 드디어 장난감을 밟고 지나간 모양이다.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부리나케 장난감 수습에 나선 나, 납작해진 모습을 보며 정체를 알 수 없는 희열감에 젖어든다.



선물로 받은 장난감 자동차를 진짜 자동차로 뭉개버릴 만큼 짓궂기 짝이 없었던 다섯 살짜리 꼬마는 어느덧 훌쩍 성장하여 어른이 되어버렸고, 그래서 이제 더 이상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신다는 사실 따위는 믿지 않는다. 결혼을 하고 아이도 가졌다. 부모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착한 일을 많이 하게 되면 크리스마스날 선물을 받게 될 것이라고 아이들을 다독이는 것도 잊지 않는다.


어김없이 다시 돌아온 크리스마스 이브, 선물 준비를 위해 마트의 장난감 코너를 찾았다. 어릴 적 장난감 자동차에 대한 그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면서 주변을 기웃거려본다. 무선 조종이 가능한 녀석이 보였다. 그래, 너로 하자. 크기도 컸으며 제법 묵직했다. 이를 포장하고 아이들 모르게 한쪽 귀퉁이에 숨겨 놓은 뒤 잠들기만을 기다렸다. 녀석들은 기대감 때문인지 아니면 크리스마스 이브의 그 들뜬 분위기 탓인지는 몰라도 어쨌거나 쉬이 잠들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밤 늦은 시각까지 재잘거리며 뛰어놀고 있었다. 밤 사이 거사(?)를 무사히 치르려면 아이들의 협조가 절실했다. 아이들 방에 가서 이제 그만 잠들 것을 종용했다. 아이들은 마지못한 듯 잠자리로 향했다. 으이구 귀여운 녀석들.. 녀석들과의 눈치 싸움이 본격 시작된 것이다. 한밤중, 녀석들이 잠들었는지 살금살금 다가가 살펴본다. 작은 녀석은 잠든 모습이 역력한데 큰 녀석이 뒤척이고 있었다. 흠.. 아직은 안되겠구나. 조금 더 기다리기로 한다.


결국 이브를 지나 크리스마스 당일이 되고도 몇 시간이 더 지난 뒤에야 녀석들이 잠든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전에 우리 부모님이 그러셨듯 준비한 선물을 녀석들 머리맡에 놓는다. 흐뭇한 미소가 얼굴 위로 절로 피어 오른다. 부모님께서도 나 어릴 적 머리맡에 선물을 놓으시면서 이렇듯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겠지? 나도 잠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잠결임에도 주변 분위기가 어수선하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새벽부터 흥분한 아이들이 우리 방으로 건너온 것이다. 자신들이 받은 선물을 각자 들고 우리 부부에게 자랑하러 온 것이 틀림없었다.



"아빠, 이것 봐. 나 무선 자동차 선물 받았다." 녀석들은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해했다. 함박웃음이 얼굴에서 떠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흥분하여 재잘거리는 녀석들을 보니 몸은 분명 피곤하였으나 신기하게도 기분은 아이들 이상으로 들뜨고 더 좋았던 것 같다. 그날 녀석들은 내가 어릴 적에 그랬던 것처럼 하루종일 그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놀았다. 다행히 나처럼 금방 싫증을 느끼지는 않았던 것 같다.


세월이 더 많이 흘렀다. 두 아이는 어느덧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선물을 주는 게 아니라 부모님이 준다는 사실을 알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훌쩍 성장했다. 나는 나 대로 5살 무렵의 크리스마스 선물에 대한 그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면서, 둘도 없는 귀한 선물을 다시 받을 수만 있다면 아주 소중히 간직하고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애써 삼키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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