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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초월한 한 끼 식사의 가치 '삼청동 외할머니'

새 날 2018. 12. 16.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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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한 끼, 특히 집밥에 담긴 성정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가 한결같을 것으로 짐작된다. 우리가 식사를 할 때 밥 한 알조차 허투루 여기지 않고 귀하게 다루는 건 곡식을 재배한 이들의 수고로움에 대한 고마운 마음도 담겨 있지만, 한 끼 식사에 대한 가치를 그만큼 소중하게 여긴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다국적 집밥을 소재로 한 KBS의 예능 프로그램 '삼청동 외할머니' 4화에서 할머니들이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앞에 놓고 개그맨 김영철이 장난을 치자 벨기에 출신 베로니끄 할머니가 "음식으로 장난하면 안돼요" 하며 정색을 한 것도 바로 한 끼 식사, 특히 집밥에 담긴 성정과 가치란 비단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인들의 공통된 정서임을 확인시켜준다.


해당 프로그램의 이름인 '삼청동 외할머니'는 그런 측면에서 볼 때 굉장히 감각적인 워딩이다. 우리 정서상 음식과 외할머니의 존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데다가 여기서의 외할머니란 원래 다국적 할머니를 의미하는 외쿡할머니의 약자이면서 또한 '쿡'은 요리를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삼청동 외할머니'라는 이름만으로도 해당 프로그램이 지향하는 바가 한 눈에 읽힌다. 프로그램 작명가의 언어유희적 센스가 읽히는 대목이다.



4화의 메인 셰프는 프랑스의 로헝스 할머니, 그리고 벨기에의 베로니끄 할머니로 낙점됐다. 음식점 오픈에 앞서 심야 시식회를 통해 수십 년 동안의 관록과 손맛이 밴 요리 솜씨를 출연진들에게 선보였다. 로헝스 할머니는 프랑스식 소고기찜인 '뵈프 부르기뇽'을, 베로니끄 할머니는 벨기에 리에주 지역의 전통음식인 미트볼 '불레트 어 라 리에주'를 각각 준비했다. 요리를 정성껏 빚어내는 할머니들의 손끝에는 자신의 나라와 지역 그리고 삶의 문화가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다국적 집밥을 우리의 전통 가옥인 한옥, 그것도 한국의 전통이 멋스럽게 보존된 지역인 삼청동에서 다양한 사람들에게 선을 보이고 맛볼 수 있도록 기획했다. 예상대로 반응은 뜨거웠다. 출연진만큼이나 다양한 국적의 손님들이 찾아와 할머니들의 정성이 듬뿍 담긴 두 가지의 메뉴를 맛보고 모두들 주저없이 엄지손가락을 척하고 치켜 올린다. 무엇보다 평생을 가정에서 익혀온 요리 솜씨만으로 만들어낸 진짜 집밥이라는 점에서 '삼청동 외할머니'의 음식은 더욱 가치 있게 다가온다.



그런데 이날 방송분에서 할머니들 사이에 뜻하지 않은 문제가 발생했다. 사건의 단초는 지극히 사소한 것에서 비롯됐다. 헝가리 국적의 안나 할머니가 코를 심하게 골아 함께 방을 이용하는 할머니들이 수면을 제대로 취하기 어렵자 독방을 쓰는 태국 출신의 누댕 할머니를 설득시켜 방을 서로 바꾸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고, 이를 흔쾌히 받아들인 누댕이 안나를 설득시키겠다며 직접 나섰다가 사달이 벌어진 것이다.



서로가 사용하는 언어가 틀렸고, 그러다 보니 의사 소통이 원활치 않자 스마트폰의 번역기 앱을 이용하여 소통을 시도했는데, 이 앱이 완벽하지 않다 보니 자꾸만 엉뚱하게 번역을 하게 되고 또 그러다 보니 오해가 발생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갈등과 반목으로 진화한 것이다. 안나는 결국 그날밤 짐을 쌌다. 자신과 같은 방에서 잠을 함께 청하는 당사자들이 아닌 누댕을 시켜 의사를 전달했다는 사실이 그녀를 몹시 빈정 상하게 한 것이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소통이 중요해지고 소통이 자주 이뤄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때로는 지나친 소통 때문에 되레 피로를 호소하게 되곤 한다. 소통 도구 또한 발전을 거듭해 오고 있다. 언어와 문화가 각기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더라도 인공지능기술이 탑재된 번역기 앱 하나면 웬만한 의사소통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의 감정과 정서까지 기계에 의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번역기 앱으로는 사람의 세세한 감정을 온전하게 담아낼 수 없다. 때문에 "마음도 번역이 되나요?" 하며 방송 제작진이 시청자들에게 던지는 화두는 미래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삼청동, 그것도 전통식 한국 가옥, 그 안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다국적의 할머니들, 그리고 각자의 국적에 해당하는 전통과 문화가 담긴 소중한 집밥 요리, 하나 같이 엇박자인 듯하면서도 도리어 이렇게 조합을 이루니 무언가 또 잘 어울리고 잘 맞는 듯한 느낌은 아마도 한 끼 식사, 그 중에서도 특히 집밥에 담긴 성정이 국경을 초월하는 가치이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 이미지 출처 : POOQ(푹) 영상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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