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막장 드라마는 왜 욕을 하면서도 빠져들까?

새 날 2018. 12. 12.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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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빈은 오 부회장으로 인해 드디어 자신이 미성 그룹의 손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니까 윤도빈이 아닌 오도빈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윤도빈의 동생이자 미성 그룹의 가짜 손자 오재빈에게 있어 작금의 상황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내상이다. 원래 순수하고 여리기만 했던 윤재빈이 미성 그룹으로 들어가 오재빈이 되면서 돈과 권력의 맛을 몸소 경험한 탓이다. 물론 그의 아내 신화경의 계략도 한 몫 단단히 거든다.


오재빈은 어떤 일이 벌어져도 이제 과거의 윤재빈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물론 이에는 신화경의 꼬드김과 부추김도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어쩌면 윤재빈 스스로가 실토했듯이 그의 내면에는 애초부터 이러한 속물 근성이 자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재빈은 어떻게든 이번 사태의 확산을 막아야 했다. 형 도빈을 찾아가 미성 그룹의 비리를 밝히는 방송을 내보내지 말아줄 것을 애걸복걸한다.



하지만 윤도빈이 어떤 인물인가. 심지가 굳고 강직하기로 치자면 대한민국 제일갈 인물이 바로 그 아닌가. 도빈은 재빈의 간곡한 사정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도리어 재빈을 강하게 꾸짖는다. 한편 섬망증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척 연기를 꾸미며 미성가의 집사로 들어간 한주원은 미성 그룹의 비리를 밝힐 결정적인 자료를 몰래 빼내 도빈에게 넘겼으나 멀쩡히 전 남편 신명준과 통화하는 모습이 오 부회장에게 포착되고 마는데...



드라마 제목 그대로 온갖 비밀과 거짓말 그리고 간계가 난무하는 가운데 이야기는 어느덧 절정을 향해 치달아 가는 중이다. 윤도빈이 결국 미성 그룹의 핏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미성가와 그의 가족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이제 그의 행동에 모든 운명을 맡기게 됐다. 잘못된 줄 알면서도 신화경을 향한 비뚤어진 사랑과 미성가에서 잠시나마 맛보았던 달콤함에 취해 도빈의 길을 물리적으로 가로막고 선 동생 윤재빈이 유일한 걸림돌이라면 걸림돌일 뿐이다. 한편 신명준을 향한 오 부회장의 애증도 거의 끝 지점에 이르렀다. 마침내 섬망증이 거짓임이 들통나고 오 부회장의 미끼에 덜컥 걸린 한주원, 과연 그 두 사람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MBC 일일 드라마 '비밀과 거짓말'은 이른바 막장 드라마다. 막장 드라마라면 으레 있어야 할 요소들을 두루 갖췄다. 출생의 비밀은 막장 드라마의 단골 소재다. 윤도빈과 재빈 형제 사이의 얽히고 설킨 출생의 비밀은 이 극을 이끌어나가는 큰 줄기 가운데 하나다. 삼각관계의 로맨스도 빼놓을 수 없다. 신명준을 사이에 두고 한주원과 오 부회장이 벌이는 애증의 관계는 어쩌면 드라마속 모든 불행의 근간일지도 모른다. 


정작 우리 주변에는 흔치 않지만 재벌가 역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지금은 이혼한 사이이나 신명준과 오 부회장은 각기 미성 그룹의 요직을 차지, 막강한 권력을 휘둘러 온 인물이다. 신명준은 한주원과의 과거 관계 그리고 둘 사이에서 낳은 딸 한우정으로 인해 오 부회장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툭하면 기억을 잃어버리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신화경이 저지른 악행의 후유증 탓에 섬망증이라는 질병에 걸려 과거 일부를 기억하지 못하는 한주원이 바로 그에 해당한다. 악녀 열전은 또 어떤가. 오 부회장의 신명준을 향한 애정은 사랑과 질투를 넘어 어느덧 애증으로 질적 변화,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신화경의 악행은 가히 독보적이라 할 만하다. 원하는 건 무리수를 써서라도 얻고야 마는 희대의 악녀가 다름 아닌 바로 그녀다.



하지만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던, 심지어 사람의 목숨까지 앗으려 했던 신화경은 알고 보면 비운의 캐릭터다. 신명준과 오 부회장 사이에서 태어난 진짜 신화경이 사고로 죽자 입양되어 두 사람의 딸로 미성가에서 성장하였으나 비록 그녀의 심보가 못되긴 했어도 어쨌거나 하루아침에 핏줄이 아니라는 이유로 오 부회장의 선친인 오 회장에 의해 버림을 당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이 드라마는 출생의 비밀부터 삼각관계, 그리고 재벌가까지 막장적 요소를 배경으로 두루 갖춰놓았으며, 질투의 화신 오 부회장과 입양 딸 신화경, 이 두 사람의 복수극으로부터 이야기의 단초가 시작되는 셈이다.



근래에는 조금 뜸한 편이나 불과 몇년 전까지 만 해도 이 막장 드라마는 전성시대라고 불릴 만큼 시청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던 장르다. 오죽하면 욕을 하면서도 보게 된다고들 했을까. 그렇다면 현실성이 떨어지며 개연성마저 턱없이 부족하고 갈 데까지 간 드라마임에도 사람들은 왜 이런 드라마에 열광할까? 일정한 시간대가 되면 TV 앞으로 절로 끌어 당기는 마력의 비밀은 과연 무얼까? 머리로는 분명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억지투성이이며, 심지어 내용까지 온통 불온한데, 사람들은 왜 욕을 해 가면서 이를 시청할까?


머리 이전에 마음을 먼저 강하게 끌어당기는, 그러니까 호기심이나 흥미 따위의 요소 때문이 아닐까? 머리로는 이해 불가한 까닭에 일단 입에서는 욕부터 쏟아져 나오겠지만, 자극적인 소재로 얼기설기 얽혀 있는 그 내밀한 무언가가 우리의 마음을 강하게 끌어 당기는 게 아닐까?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분명하지만, 오히려 이렇듯 극의 현실성이 떨어지고 개연성이 부족한 요소가 더욱 끌리게 하는 건 아닐까? 누구나 한 번쯤 달콤한 일탈을 꿈꾸면서도 그저 머릿속에서만 맴돌고 말 뿐, 결국 막장 드라마는 마음속 일탈 욕구를 대리 충족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이룰 수 없는 욕구를 흔히 판타지라는 장르를 통해 해소하듯이 말이다.



* 이미지 출처 : POOQ(푹) 영상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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