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20대, 그들이 마음껏 떠들도록 내버려두라

새 날 2018. 12. 19.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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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론조사기관이 발표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국정 수행 지지율 결과를 놓고 정치권은 물론이며 다양한 계층에서 연일 갑론을박 중이다. 20대 남성들의 낮은 지지율 때문이다. 리얼미터가 최근 조사하여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20대 남성의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긍정 평가는 29.4%였으며, 반대로 부정 평가는 64.1%에 달했다. 예상 대로 각계 각층에서 다양한 의견이 분출되고 있는 양상이다.


20대 개X끼론부터 보수세력의 분탕질설, 그리고 세대 갈등까지 그야말로 백인백색의 주장들이 난무하는 실정이다. 물론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상대적으로 진보적 성향이 가장 두드러지는 것으로 인식돼왔던 20대 남성들이 작금의 현상을 보이는 건 의외의 결과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러한 그들을 향해 또 다시 개X끼라 부르며 타자화를 시도하거나 심지어 세대 갈등의 불쏘시개로 삼으려는 행태는 엄연히 경계되어야 하는 대상이다.


20대 남성들이 젠더 문제로 지금 흥분하고 분노하고 있다는 분석은 나름 정확하다. 강남역 살인사건 그리고 미투 운동 등을 통해 여성들의 사회적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고, 그에 따라 정치권에서는 여성들을 배려하는 정책들을 너나 할 것 없이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는 상황이며, 아울러 남성들이 이른바 페미라고 설정한 커뮤니티 '메갈' '워마드' 등의 왕성한 활동 탓에 그들의 권리가 침해 당하고 있고 오히려 역차별 받으며 소외 당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적인 맥락으로 보았을 땐 남혐이라는 워딩은 사실 성립 불가한 개념임에도 이들 세대로 국한시켜 본다면 충분히 그렇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법한 사안이다. 왜냐하면 기성세대들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여성들에게 불평등을 강요했고 성차별적인 요소가 여전하다는 사실을 직접 목도하고 체험해왔지만, 세기말 무렵에 태어난 현재 20대 세대에게는 앞서의 요소들이 상대적으로 둔감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지난 7일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함과 동시에 20대 남성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현재의 20대가 어떤 세대인가. 역사상 부모보다 더 가난한 유일한 세대라고 하지 않던가. 고성장시대는 저물고, 앞으로는 저성장 기조의 경제 상황이 지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고성장시대의 규모에 맞게 한껏 부풀려졌던 경제 볼륨을 어쩔 수 없이 쪼그라뜨려야 한다. 오늘날 일자리가 부족한 건 바로 이로부터 기인한다. 당장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인 사안이라는 의미다.


그러다 보니 가난한 우리 청년세대는 이른바 청년실신, N포세대 등으로 불린다. 이들에게 노오력이 부족하다는 기성세대의 주장은 언어폭력이자 언어도단이 아닐 수 없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라는 수사는 되레 비수가 되어 그들의 아픈 속내를 후벼 판다. 가진 것 하나 없고, 미래마저 불투명하기 짝이 없는 가난한 청춘들에게 젠더 이슈는 너무도 민감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기성세대가 볼 땐 뒤늦게 여성의 권익을 신장시키는 일이 참으로 다행스럽고, 페미라 불리는 여성들 스스로의 운동 역시 그동안 차별 받고 살아온 삶이 어디인데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며, 젠더 이슈를 논란으로 물고 늘어지는 20대 남성들의 행태를 향해 참 남자답지 못한 데다가 옹졸하기 짝이 없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존 위기에 놓인 그들에게 있어 상대적으로 역차별 받는 이 괴이한 느낌은 너무도 절실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너무나 아프니까 괴롭다고 의사 표현을 하는 중이다. 그들이 떠들도록 내버려 두라.


20대 개X끼론은 우리 사회의 참 오래된 담론이다. 매 선거 때마다 여러 사람들의 입을 통해 오르내린다. 진보와 보수라는 진영 논리 그리고 이념에 갇힌 시각으로 현재의 20대를 바라볼 경우 어쩌면 개X끼론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들은 기성세대의 시각과 프레임으로 가둬둘 수 없는 세대다. 이른바 자유로운 영혼에 가깝다. 이념이나 진영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사례 하나를 들어보자.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 이 촛불의 든든한 밑거름이 되어주었던 20대 청년들, 그러나 촛불혁명 1주년을 앞둔 시점에서 이들이 어떻게 행동을 했는지 혹시 기억하는가?


한 마디로 생뚱맞았다. 촛불혁명을 물밑에서 진두지휘한 세력은 모두가 알다시피 과거 민주화운동을 주도해온 세력이다. 민주노총, 전교조 등도 당연히 지분을 갖고 있다. 하지만 20대에겐 되레 그들로 인해 탐탁지 않게 다가왔던 것이다. 이념을 앞세우는 구태의연한 운동 방식이 신물 난다며 광화문에서의 본 행사를 마다하고 자기들끼리 여의도에서 별도의 행사를 개최한 이들이 바로 20대 청년들이다. 최근 20대 일부 여성들은 강남역 살인사건 등으로 인해 여성들이 마음 놓고 다닐 수 없는 세상이라며, 남자 대통령인 문재인을 끌어내리고 여성 대통령이었던 박근혜를 되돌려놓으라 주장한다. 이렇듯 이들은 이념이나 사상과는 관계없이 오로지 실리만을 추구할 뿐이다.



이러한 경향성은 사실 각 대학교 총학생회의 성향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과거와는 달리 정치적 이념보다는 생활이나 학내 문제 따위의 실용적인 사안에 천착해 왔다. 무언가 자신들과 맞지 않을 경우 서슴없이 그와의 인연을 끊고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내곤 하는 게 현재의 20대들이다. 기성세대들은 이들에게 정치 참여가 저조하다며 한 걱정을 늘어놓지만, 사실 이들의 입장에서는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그 자체 또한 정치 참여의 일종이다. 이러한 경향성을 헤아리지 못하고 기존의 틀로만 이들을 바라보니 입에서는 개X끼가 절로 나오는 셈이다.


요즘 청년들,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예단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어쨌든 이들 또한 사회 문제에 열심히 참여하며 자신들의 의사를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하고 있다. 촛불혁명에서 확인했듯이 무언가 바꿔야할 필요성을 느낄 땐 그 어느 세대보다 현실 참여에 열심이다. 문재인 정부를 향한 최근의 비토 역시 그의 일환으로 다가온다. 때문에 이들이 등을 돌렸다며 무언가 큰 일이라도 벌어진 듯이 이를 확대재생산하고 되레 이를 세대 갈등 따위로 부추기려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그들 역시 그들 방식대로 치열하게 오늘날의 삶을 살아가는 것뿐이다.


그들이 마음껏 떠들도록 그냥 내버려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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