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균형 잡힌 삶의 적정선은 어디쯤일까?

새 날 2018. 12. 20.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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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해외에 나가 사용한 돈이 역대 최고를 달성했다는 소식이다. 국회예산정책처에서 펴낸 '우리나라 해외소비 분석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인의 해외소비지출은 31조9천374억 원으로 전년도보다 9.9% 늘어나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것이다. 참고로 여기서의 해외소비지출은 대부분 해외여행과 유학 연수 경비로 사용된 돈이며, 국내에서의 해외 직구 지출이나 해외 출장 등의 직무를 위해 사용된 돈은 포함하지 않고 있다.


해외 소비는 2010년부터 2017년까지 연평균 8.7%가량 증가했다. 반면 국내 소비는 같은 기간 연평균 2.1% 늘어나는 데 그쳤다. 전문가들은 원화 강세와 저비용 항공 노선의 확대 등을 해외 소비 지출 상승의 이유로 꼽고 있다. 뿐만 아니다. 워라밸이나 소확행과 같은 트렌드가 사회 전반을 휩쓸면서 불확실한 미래보다 현재의 삶에 충실하려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 해외에서의 씀씀이가 증가한 것도 한 요인으로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인들은 해외여행이 유독 잦은 편이다. 우리보다 더 잘 사는 국가들조차 국민의 30%가량만 해외여행을 다녀오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무려 50%에 육박하니 말이다. 그나마 개인이 보유한 현금의 가용 범주 내에서 다녀오는 행위라면 다행일 텐데, 당장 형편이 되지도 않으면서 빚을 내면서까지 여행을 다녀온다는 사실은 적잖은 논란거리가 아닐 수 없다. 방학 때나 노는 날이 많은 5월이 되면 통상 신용대출이 많이 증가한단다.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월별 은행권 신용대출 증가 폭은 3월 4천억 원이었으나 5월에는 1조7천억 원으로 급증했다. 휴가 성수기인 8월에도 1조9천억 원이나 늘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해외여행을 위한 대출이 증가했음을 뜻한다. 즉, 성수기 때마다 공항이 북적이는 등 해외여행객의 숫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현상과 궤를 함께하는 셈이다. 빚을 내어 해외여행을 가는 행위는 일상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일부 대학생들은 한국장학재단에서 편법으로 생활비 대출을 받아 이를 해외여행비로 탕진하고 있었다. 한국장학재단에 따르면 지난 2년간 총 50만1175명이 "학교에 다니겠다"고 약속하고, 실제로는 휴학을 하는 등 등록을 하지 않은 채 생활비 우선 대출 제도를 이용했다. 이들이 빌려간 생활비는 총 71억6783만 원에 달한다. 심지어 실업급여 등의 정부 일자리 예산을 지원 받아 해외여행 등을 위해 펑펑 쓰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사실 해외여행은 기회가 닿을 경우 다녀오지 않는 것보다 다녀오는 게 여러모로 이롭다. 특히 발품 손품만 잘 팔면 국내여행 비용보다 오히려 더욱 저렴하게 다녀올 수 있는 지역도 널렸다. 덕분에 비싼 국내여행을 갈 바에야 같은 비용으로 차라리 해외여행을 다녀오겠노라는 사람들이 주변에 숱하다. 저렴한 비용으로 해외에 나가 쌓인 피로를 풀고 경험도 쌓으며, 더불어 견문도 넓힐 수 있으니 이처럼 좋은 기회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게다가 근래에는 이른바 워라밸이니 소확행과 같은 개인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풍조가 일종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어 해외여행을 더욱 부추기는 경향이 크다. 치열한 경쟁 일변도의 삶, 덕분에 무엇이든 빨리빨리 서둘러야 하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늘 타인과 비교해야 하는 매우 피곤한 삶, 이러한 우리만의 분위기와 여건이 해외여행마저도 경쟁적으로 다녀오게 한다. 소위 '아싸'가 아닌 '인싸'가 되기 위해서라도, 그러니까 주변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모두가 간다고 하는 해외여행을 다녀와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빚을 내면서라도 말이다.



워라밸과 소확행 등의 사조가 유행하는 데는 비싼 부동산과 일자리 문제 등 우리 사회의 현실적이면서도 구조적인 어려움이 자리하고 있다. 이로 인해 그동안 미래를 위해 오롯이 현재를 희생해 온 기성세대의 삶의 방식에 반기를 들고, 불투명하기 짝이 없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 잡히기보다 그냥 현재를 즐기고 충실히하는 삶을 살겠노라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남들 다 간다는 이유로, 그리고 현재를 충분히 즐기겠다는 이유로 해외여행을 떠나면서 대출을 받는 등 빚을 내면서까지 이러한 삶의 방식을 추구한다면 과연 그들이 말하는 균형 잡힌 삶이 될 수 있을까? 빚을 진다는 건 가까운 미래에 돈을 모두 갚아야 한다는 의미인데, 이는 결국 현재를 즐기기 위해 미래를 저당 잡히는 꼴과 진배없는 셈 아닌가. 불투명한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 잡히기 싫다고 하여 소확행 워라밸을 열심히 노래불렀건만, 어느 순간 미래를 저당 잡혀버리고 말았으니 이런 방식의 삶이 과연 균형 잡힌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균형 잡힌 삶의 적정선은 어디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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