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국가부도의 날은 현재진행형이다

새 날 2018. 12. 14. 13:55
반응형

지금 상영관에서는 드물게 역주행이 진행 중이다. 락 그룹 퀸의 리더 프레디 머큐리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지난 10월 말에 개봉하였으나 이를 앞서 관람한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12월 중순 현재 박스 오피스 1위 자리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고 있는 것이다. 관객 수도 700만을 훌쩍 넘어 여전히 순항 중에 있다. 과연 최종 관객 수가 얼마나 될지 이를 지켜보는 것 만으로도 재미가 쏠쏠할 것 같다.


12월 연말연시 대목을 맞이하여 새로운 영화들이 속속 개봉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스 오피스의 상위권에는 역주행 영화들이 랭크된 채 내려올 줄을 모른다. 흥미로운 대목이다. IMF 외환위기 당시 상황의 막전막후를 그린 영화 '국가부도의 날' 역시 11월에 개봉하였으나 보헤미안 랩소디에 이어 2위에 랭크되며 상대적으로 조용히(?) 순항 중에 있다. 어느덧 300만을 넘어섰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


비록 허구이지만 이 영화를 통해서도 암시하고 있듯 현실속 우리의 삶은 국가부도의 날 이전과 이후로 판이하게 갈린다. 현재 영위하고 있는 우리의 삶은 안타깝게도 '국가부도의 날'로부터 영원히 자유로울 수가 없다. IMF 외환위기 당시 정부는 친재벌 친기업 정책을 표방, 그의 반대급부로 서민들을 희생양 삼았다. 이의 후유증은 여러 갈래로 나타난다. 오로지 경제적 이익과 효율이 최고의 덕목으로 자리 잡으면서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도 바로 이때다.


덕분에 노동자들의 고용 안정은 앞서의 명분에 의해 오롯이 희생되어야 했고, 계약직 일용직 등 비정규직이라는 고용 형태가 대량으로 양산된 것도 바로 이즈음이다. 기업은 저마다 핵심 직무 및 인력만 남겨놓은 채 대부분의 업무를 외부에 맡겨버렸다. 비용이 훨씬 절약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방식은 필연적으로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수익 구조가 상대적으로 열악한 하도급 업체들은 당장 먹고 사는 일이 지상 최대의 과제가 될 수밖에 없기에 인력을 줄여야 하며, 더불어 안전 설비 따위에도 충분히 투자할 여력이 없다.



아래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국내 굴지의 한 통신기업은 심지어 통신기술자마저 모두 외주화하는 바람에 정작 기술자가 내부에 한 명도 없다고 한다. 시민들의 발이 되어야 할 서울교통공사 등과 같은 기업의 경우에도 안전 관련 직무는 사실 기업의 속성상 핵심 직무에 포함되어야 하나 이마저도 모두 외주화되고 있다. 지난 2016년 구의역 사망 사고는 바로 이익과 효율성이라는 이름 하에 핵심 직무인 안전 관리까지 모두 외부에 떠넘기면서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데일리안


얼마 전 화재로 서울과 경기 일대를 통신 대란에 빠뜨렸던 KT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KT는 국가통신망을 관리하는 국가기간산업에 해당하는 기업이지만, 정작 해당 KT 내부에는 자체 통신 기술자가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핵심 직무마저도 모두 외주를 준 탓이다. 때문에 당시 화재가 발생했을 때에도 예방은커녕 사후 조치가 신속하게 이뤄지지 못했다.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20대 비정규직 노동자가 홀로 설비를 점검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11일의 일이다. 이번 사건 역시 구의역 사고와 판박이다. 위험한 직무를 모두 외부에 떠넘겨서 발생한 사고이기 때문이다. 구의역 사고가 발생한 지 2년여가 지났으나 당시 여야가 발의한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안'은 무슨 연유에서인지 아직도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또 한 명의 귀한 목숨이 사라졌다. 더불어 시민들의 안전 역시 제대로 담보되지 못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셀프 세비 인상 등 자신들의 밥그릇을 채우는 데는 귀신 같다. 그러면서도 정작 시민들의 권리를 보듬어주는 데는 인색하기 짝이 없다. 서민 관련 법안 처리를 미루기로 일관하고 있으니 말이다. 국가부도의 날, 대한민국 국민들 삶의 토대는 확 뒤바뀌었다. 오로지 경제적 효율만 따지는 이 냉혹한 현실과 국민의 대표기관인 입법부의 수수방관 속에서 그날의 그림자는 여전히 길게 드리워진 채 물러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20년 전 대한민국을 미증유의 혼돈 속으로 몰아넣었던 국가부도의 날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