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20대 남성들은 왜 문재인 정부에 등을 돌렸나

새 날 2018. 12. 18.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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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우리 사회에 특이한 현상 하나가 나타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는 데 있어 일등공신 역할을 한, 그러니까 문재인 정부에 가장 많은 지분을 갖고 있던 20대 남성 계층이 급거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리얼미터가 지난 10일에서 14일 사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20대 남성의 대통령 지지율은 29.4%를 기록했다. 이는 34.9%에 달하는 60대 이상 남성의 지지율보다 낮은 수치로, 모든 연령대별 남녀 계층 가운데 최하위에 해당한다.


그동안 20대 하면 상대적으로 진보 성향이 가장 두드러진 세대로 인식돼 왔다. 이는 시대를 막론하고 널리 통용돼 온 인식이기도 하다. 물론 현 정부로부터 돌아선 것으로 알려진 세대들 또한 비록 해당 결과와는 별개로 여전히 진보적인 색채가 다른 세대에 비하면 뚜렷할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다면 작금의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한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걸까? 핵심 지지층이었던 이들은 왜 급작스럽게 등을 돌린 걸까? 이를 이해하기에 앞서 최근 20대 남성들을 급도로 흥분시킨 사건 하나부터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지난 7일 여성에 대한 폭력을 방지하고 피해자 보호와 지원에 관한 국가의 책임을 명백히 하기 위한 '여성폭력방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가뜩이나 페미 이슈와 관련하여 민감해하던 이들은 해당 법이 통과되자 일제히 여당과 대통령 성토에 나서기 시작했다. 물론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으로 달려가 해당 법에 대한 폐지 청원도 잊지 않았다.


20대 남성들이 주로 자리 잡고 활동해 온 온라인 커뮤니티는 각종 데이터를 들이대면서 자신들이 여성들과 비교하여 차별 받고 있다는 남성들의 하소연으로 온통 아우성이었다. 급기야 현 정부와 여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다는 주장마저 나돌기 시작했다. 그동안 페미 관련 이슈 때마다 상대적으로 남성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던 상황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이들이 해당 법의 통과를 빌미로 일거에 폭발한 셈이다.


그렇다면 여성들에 비해 괄시를 당하고 있다는 이들의 주장은 과연 설득력이 있는 걸까? 물론 근래 여성을 위한 정책이 많이 만들어졌고, 미투 운동을 기화로 여성 인권과 관련한 이슈가 봇물 터지듯이 터지면서 여성들에 대한 정책적 민감도가 상대적으로 높아진 건 엄연한 사실이다. 게다가 '메갈'이나 '워마드'로 통용되는 여혐 미러링 사이트가 등장하면서 젊은 남성 계층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기나긴 시간 동안 불평등의 굴레 속에서 차별 받아 온 여성들의 지난하며 고단했던 삶은 생각지 않고, 그저 최근 몇몇 분야에서 정책적 배려가 이뤄지는 현상을 두고 참지 못하는 건 매우 근시안적이다.



사회 전반에서 공공연하게 행해지는 여혐에 대해 미러링이라는 방식으로 이를 세상에 알리며 활동하려는 일부 여성들에게 이들은 남혐이라는 워딩으로 맞섰다. 그런데 사실 남혐이라는 워딩은 모순투성이가 아닐 수 없다. 몇 가지 사례로 이를 확인해보자. 백인과 흑인 그리고 비장애인과 장애인을 예로 드는 게 좋을 것 같다. 이들 계층 가운데 약자를 꼽으라면 당연히 흑인과 장애인을 말할 테다.


이들 약자를 향한 혐오 현상은 늘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이를테면 흑인 혐오나 장애인 혐오 따위의 현상 말이다. 여기서 흑인 혐오나 장애인 혐오라는 표현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반면 백인 혐오나 비장애인 혐오와 같은 표현은 사용한 적도 없고, 물론 성립되지도 않는다. 왜일까? 백인과 비장애인은 사회적 약자가 아닌 강자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남성과 여성을 놓고 볼 때 약자는 당연히 여성이다. 이에 대해서는 반박의 여지가 없다. 그렇기에 여혐은 당연히 성립되며 남혐은 성립될 수 없는 개념이다. 결코 양립할 수 없는 여혐 이슈를 남혐으로 물타기하려는 속내부터 사실은 넌센스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20대 남성들의 최근 움직임은 비이성적이다. 그렇다고 하여 누군가의 지적처럼 분탕질을 노리는 세력에 의한 휘둘림이라는 시각으로 작금의 현상을 바라보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이익 앞에서는 그간 소중하게 다루어지고 받들어 오던 가치조차도 하루 아침에 모두 뒷전으로 내차버리는 경향성을 근래 자주 보게 되기 때문이다. 즉, 여성 인권에 대한 화두는 원래 진보 진영의 주요 어젠다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근래 젊은 계층의 성향을 보면 자신들의 이익과 관련하여 권리를 조금이라도 침해 당한다고 생각되는 경우 진보나 보수 따위의 진영과 관계 없이 지극히 사사로운 이익 쪽으로 기우는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작금의 현상 또한 같은 맥락이다.


즉, 남혐이라고 주장하는 최근의 이슈에 대해서는 신기하게도 진보와 보수가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게 아닌가. 사안에 따라, 그러니까 이익의 성격과 종류에 따라, 이제는 진영마저도 이합집산이 이뤄지는 등 바야흐로 탈 이념 시대가 성큼 다가오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여권 신장 운동이 펼쳐지고 있는 일련의 움직임에 대해 20대 남성들이 유독 예민하게 반응하는 배경에는 짐작컨대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기제가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청년실신시대, N포세대로 불리는 청년들에게 있어 현실적 고통을 감내하기가 참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성들에 대한 권리가 자꾸만 높아지고 그러다보니 남성들이 더욱 소외되고 차별 받는 느낌으로 다가오게 하는 화근이 되게 한 듯싶다.


먹고사니즘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 즉 생존에 당장 필요한 1차원적인 욕구가 해결되지 않다 보니 그 이상의 가치에 대해서는 사실 생각할 겨를이 없는 셈이다. 생존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자신들이 누려오던 권리를 조금씩 침해 당하는 꼴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들에게는 지금 발등에 떨어진 불을, 즉 자신들의 이익이 경쟁 상대인 여성들에게 침해 당하는 처지를 잠재우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진보니 보수 따위의 이념이나 진영과 같은 가치가 결코 눈에 들어올 리 만무하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이처럼 극과 극을 오가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류의 비이성적인 현상에서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이 당장 해결되지 않는 한 지금과 같은 정치 혐오 현상은 한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집권 3년차에 접어드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 추진 동력이 갈수록 힘을 잃어 간다는 데 있다. 그렇다고 하여 분노에 들끓고 있는 계층을 나몰라라 내차버리거나 그들에게 선심성 정책을 남발하자는 주장을 하려는 건 결코 아니다. 다만, 이들이 왜 이토록 분노하고 있는지에 대해 적어도 정치권은 이를 올바로 헤아리고 대안을 마련해놓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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