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청년 빈곤 문제, 과연 그들만의 책임일까?

새 날 2018. 11. 21.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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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전파를 탄 SBS 뉴스토리 207회 ‘‘열심히 사는데도.....’ ―지금 우리 청년들은.‘편에서는 끊임없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암울한 미래 앞에서 현재를 오롯이 저당 잡힌 가난한 청년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IMF 환란 당시 우리 사회에 짙게 드리워진 그늘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26살의 청년 김선우 씨는 부모님이 IMF 환란 때 지게 된 빚을 대신 갚기 위해 대학을 자퇴하고 안 해본 게 없을 정도로 닥치는 대로 일을 해왔다. 이렇듯 자신의 삶을 희생시켜왔건만 빚은 여전히 줄어들지 않아 가난의 굴레로부터 탈출하는 일은 요원하기 만하다. 햇빛 한 점조차 잘 들지 않는 반 지하 월세방에서 살며 개인의 삶을 포기한 채 공장에 나가 죽도록 일을 하고 있으나 생활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너무 힘든 나머지 때때로 죽음을 떠올리곤 한다는 그다. 그에게 지긋지긋한 가난으로부터의 탈출구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민철식 씨는 1인 가구로 산 지 어느덧 10년차에 이르는 청년이다. 9년 동안 고시원 등을 전전하다가 그나마 최근 임대주택을 얻을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하지만 몸이 불편하여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웠던 그는 월세를 지급하지 못해 현재 밀려 있는 상태다. 임대주택 재계약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또 다시 고시원으로 발걸음을 돌려야 하는 처지인 까닭에 그는 늘 짐도 풀어놓지 않은 어수선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가 짐을 마음 놓고 풀어놓을 그날은 과연 언제쯤 오게 될까?



23살의 정이든 씨는 대학 새내기다. 남들은 한창 캠퍼스의 낭만을 맛보고 즐기는 시기라고 하지만 그녀에게 있어 낭만은 사치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매달 50만 원을 근근이 벌고 있지만, 월세와 생활비를 충당하고 나면 손에 남는 게 없다. 결국 학자금 대출을 받아 생애 처음 빚이란 걸 지게 됐다. 옷을 언제 구입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아껴가며 빚을 갚아나가고 있는 형편이지만, 500만 원이라는 거액은 그녀에게 있어 미증유의 중압감으로 다가온다. 사회에 진출하기도 전에 빚부터 떠안게 된 그녀의 삶, 과연 괜찮은 걸까?



청년 빈곤이 가난의 대물림으로 악순환할 것이라는 우려는 그냥 우려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엄연한 현실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내놓은 ‘현 세대 청년 위기 분석’에 따르면 가난은 학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핵심 인자 가운데 하나다. 2016년 기준 청년 10명 중 3명은 아동기에 빈곤을 경험한 바 있으며, 빈곤 경험이 전무한 청년은 대학 이상의 학력을 가진 비율이 79.3%에 달했으나, 빈곤 기간이 6년 이상이었던 청년은 29.1%만이 대학 이상의 학력을 갖고 있었다. 


가뜩이나 지독한 학벌사회로 몸살을 앓고 있는 판국에 낮은 학력은 안정된 직장을 구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아동기 6년 이상의 장기 빈곤을 겪은 청년들은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는 비율이 가장 높았으며, 경제활동을 아예 하지 않는 이들도 많았다. 이렇듯 대물림으로 이어지는 가난은 결혼과 출산에도 악영향을 미치기 일쑤다. 중위소득 50% 이상인 청년의 미혼율은 46.5%였으나, 50% 미만인 청년은 86.7%에 달했다. 



당장 고령사회의 진입을 목전에 둔 우리에게 있어 OECD 1위의 노인 빈곤율은 심각한 사회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에 청년 빈곤 문제까지 더해지면서 이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국가의 장래를 한 치 앞도 가늠하기가 어려울 전망이다. 아동기의 빈곤은 청년빈곤으로 이어지게 하고, 이는 다시 노인빈곤으로까지 전염시키게 하는 악순환의 굴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 통계 결과도 이를 극명하게 입증한다. 


서울신문의 조사에 따르면 취업난이 심해지면서 경제적 독립을 이루지 못한 채 부모가 주는 용돈에 의지해 사는 청년이 미취업자 2명 가운데 1명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응답자의 67.8%는 ‘부모가 경제적인 압박을 받는다’고 답했다. 부모들은 취업 못한 가난한 자녀를 부양하기 위해 은퇴 후에도 좀처럼 쉬지 못하고 일자리를 찾아 나서야 하는 실정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60대 이상 취업자 수는 2015년에서 2016년 사이 366만명에서 388만명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누구나 짐작 가능하듯이 일자리의 질은 가히 좋지 못하다. 대부분이 단순 노무직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악순환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으나 우리 사회에서 청춘이란, 희망보다는 아픔의 대명사격으로 다가온다. 실업과 비싼 주거비, 그리고 가난의 대물림 등으로 이 땅의 청년들이 아파하고 있는 것이다. 삶에서 통과의례로 받아들여지는 것들을 하나둘 포기하더니 어느새 n포세대라는 이름으로 전락해버렸다. 지난 8월 청년 실업률은 동월 기준으로 IMF 환란 이후 첫 10%대를 기록했으며, 실질적인 실업률을 보여주는 지표인 체감실업률은 23%로 통계 작성 이후 최악을 나타냈다. 취업을 포기한 구직단념자는 53만3000명으로 전년보다 5만1000명이나 증가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의 일자리 정책은 공공기관을 동원한 단기 일자리 대책과 같은 미봉책에 그치고 있어 실망감만 더욱 부풀리고 있는 양상이다. 게다가 청년 임대주택을 기피 시설로 몰아가는 이기적인 행태가 사회 일각에서 드러나는 등 가뜩이나 주거난으로 고통 받고 있는 청년들에게 심리적인 압박감까지 전가시키고 있는 기성세대들이다. 이러한 결과는 부모뻘인 기성세대와 청년세대 간의 첨예한 갈등을 야기하는 요인이 되게 하기도 한다. 



청년이 희망을 품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더 이상 희망을 찾을 수 없다.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 청년들에게 결혼과 출산을 하라고 윽박지르거나 노오력이 부족하다며 채찍질을 가하는 건 홀로서기조차 버거운 마당에 전력질주하라며 강하게 등을 떠미는 행위와 진배없다. 일어서기도 전에 자칫 고꾸라지기 십상이다. 그 전에 먼저 해결해야 할 사안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이 프로그램은 정부와 기성세대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다. 


청년들은 왜 가난과 고립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청년 빈곤 문제가 과연 그들만의 책임일까?


“가난한 청년 문제를 이렇게 방치하면 부메랑은 기성세대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죠. 미래세대 없이 기성세대가 존재할 수 없으니까요.”



* 이미지 출처 : SBS 방송 영상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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