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점차 현실로 다가오는 특성화고의 존립 위기

새 날 2018. 11. 9.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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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덕수고가 큰 변화를 맞이할 전망이다. 덕수고는 현재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일반계와 취업을 목표로 하는 특성화계로 나뉜 종합고등학교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 가운데 일반계만 송파구에 위치한 위례신도시로의 이전을 추진, 덕수고라는 이름을 유지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사실상 명문 직업계고인 덕수상고의 명맥은 이로써 완전히 끊길 전망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러한 결과를 빚게 한 것일까? 그리고 이는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우선 저출산에 따른 학령인구 감소라는 사회의 구조적인 변화와 특성화고를 둘러싼 다양한 이슈들로 인한 인기 하락 요인에 의해 이러한 결과가 빚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실제로 덕수고의 학생수는 2015년 433명이었던 것이 올해 240명으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러한 덕수고의 변화는 곧 특성화고의 위기를 상징하기도 한다. 학벌사회의 아웃사이더로서 가뜩이나 사회의 관심 밖 영역에 놓여 있던 특성화고는 저출산의 여파로 인한 학령인구의 자연감소 폭탄을 온몸으로 끌어 안은 채 사실상 존립의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작금의 현상이 교육 현장에서는 어떤 식으로 반영되고 있는지 한 번쯤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지난 해까지만 해도 50%에 가까운 취업률을 보였던 서울의 모 상업계 공립 특성화고의 경우 올해 들어서면서 지금까지의 취업률은 고작 10%에도 채 미치지 못한다. 앞으로의 전망도 어둡기 짝이 없다. 악화된 취업 여건으로 인해 사회로의 진출이 여의치 않게 되자 불안감을 느껴온 대부분의 아이들이 진학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취업을 하겠다며 특성화고로 진학하였고, 그래서 이들에게 필요한 학비 대부분이 세금으로 충당됐건만, 이쯤 되면 악순환이다. 


제주도에서 현장실습 도중 고3 실습생이 사고로 숨진 이래 직업계고의 현장실습제도는 실습생의 안전과 학습권 보장이라는 양 갈래 방향으로의 근본적인 변화를 꾀했다. 하지만 교육 당국의 지침이 늦어지면서 일선 학교와 학생들의 혼란은 가중돼왔다. 여기에 한 가지 요소가 더해졌다. 그동안 실습생의 안전이 도외시되고 학습권마저 외면돼온 무리한 현장실습의 배경에는 취업률 제고라는 학교간 경쟁 요소가 가장 큰 요인으로 꼽혀왔다. 때문에 교육 당국은 올해 들어서면서 학교 평가 요소에서 이를 배제키로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일선 학교가 아이들을 섣불리 현장에 내보내지 않은 것이다. 모두가 몸을 사렸다.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의 몫이 되었다.


ⓒ동아일보


노동 수요의 핵심 축을 담당하는 기업들 역시 현장실습제도가 명징해질 때까지 숨죽이며 이를 지켜 봐오다가 결과적으로는 학생들을 현장 실습 형태로 끌어들인다는 게 부담스럽고 번거로워지면서 예전만큼 적극적으로 학생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사회의 구조적인 변화와 더불어 이렇듯 주요 요인들이 한꺼번에 불거지면서 아이들의 취업을 더욱 위축시키고 있고, 분명 취업을 위해 들어온 학교이건만 여의치 않다 보니 다수의 아이들이 진학으로 돌아서는, 웃지 못할 현상들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수치로도 입증된다. 지난 달 16일 국회 교육위원회 김현아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교육청별 선도기업 참여현황'에 따르면, 올해 현장실습에 참여한 학생은 전국적으로 1004명에 이르며, 이는 현장실습 대상 학생 10만1190명의 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낮은 취업률은 낮은 입학률로 이어지게 하는 불쏘시개 내지 통로 역할을 톡톡히 한다. 지난 해까지 만해도 일단 겉으로 드러난 직업계고의 취업률은 고공행진을 펼친 바 있다. 물론 그 속내를 들여다 보면 얘기가 조금은 달라지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성화고의 인기는 되레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올해의 경우 서울이나 인천, 부산 등 주요 광역시조차 미달 사태를 면치 못했다. 특성화고의 취업률이 사상 최고치를 달성했다는 요란한 구호에 비하면 정말로 초라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서울은 전체 특성화고의 62.8%인 44개 교에서 정원 미달 사태가 빚어졌고 인천은 26곳 중 12곳이 정원을 못채웠다. 부산도 33개 학교 중 14곳이 부족했다. 다시금 입학생 모집 시즌을 맞은 각 학교들은 학생 모집에 비상이 걸린 셈이다. 취업을 목표로 진학하는 학교였건만 이처럼 낮은 취업률을 보이고 있고, 그나마 대부분의 아이들이 진학을 꿈꾸고 있다면, 말 그대로 직업계고는 그 존립의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 덕수고 사태를 결코 남의 일만으로 치부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가뜩이나 학벌주의가 팽배한 우리 사회다. 이는 모든 사회적 폐해를 야기하는 대표적인 병폐이자 모순 가운데 하나다. 어떻게든 이로부터 벗어나지 않고서는 우리 사회의 발전을 논할 수 없다. 때문에 특성화고등학교 등 직업계교의 상징성은 매우 크다. 스펙 위주의 학벌사회로부터 진정한 능력 위주의 사회를 연결하는 이들의 징검다리 역할과 상징성을 무시해서는 안 될 노릇이다. 이들은 지독한 학벌주의 속에서 간신히 목숨만을 부지한 채 몸부림을 치고 있는 실정이나 이렇듯 무관심의 틈바구니로 내처친 상황이 지속될 경우 우리 사회의 변화는 요원하기 만하다. 


직업계교의 존립 자체를 뒤흔드는 위기가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저출산이라는 구조적 원인과 더불어 교육 당국 그리고 사회의 외면 탓에 직업계교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고 아이들은 아이들 대로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희생양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위기 탈출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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