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편린들

'대충 살자'는 청년들의 넋두리

새 날 2018. 12. 3. 18:13
반응형

모 공기업이 청년들을 대상으로 고작 이틀 동안 근무하는 초단기 체험형인턴을 채용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체험형인턴은 청년들에게 조직 문화를 익히게 하고 취업의 기회를 제공해준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없지 않으나, 사실 정식 일자리도 아니면서 숫자상으로만 일자리를 늘려 실업률 통계를 왜곡시키는 부정적인 효과를 동시에 야기하는 탓에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더욱 어이가 없었던 건 고작 이틀 근무에 불과하면서도 이에 지원하기 위해 취준생이 준비해야 하는 제반 서류들은 정식 직원 채용 절차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차후 채용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면서 이틀 동안 근무하는 조건으로 지원자가 작성해야 하는 서류는 산더미였다. 이에 소요되는 노력과 시간이 아까울 지경이다. 하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일부 청년들에게는 이런 험지(?)마저도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알바와는 달리 가까운 훗날 정식 일자리를 구하고자 할 때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에 한 줄이라도 더 채워넣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는 데다가 적어도 최저임금 이상의 급여만큼은 보장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청년을 둘러싼 제반 여건은 최악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청년들의 자립 기반을 도맡게 될 일자리의 문제가 가장 시급하다. 정부에서도 이를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 어떤 정책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렇지만 앞서 사례로 든 기업처럼 이틀짜리 초단기 인턴을 채용하는 등 일자리 늘리기 꼼수 따위가 여전히 횡행하고 있는 까닭에 과연 천문학적인 혈세를 쏟아부은 정책적 효과가 제대로 발휘될 수 있을지의 여부는 불투명하기 짝이 없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가난한 청년들은 연애, 결혼, 출산, 집 장만, 인간관계 따위의, 반드시는 아니더라도 마땅히 누려야 할 대부분의 것들을 본의 아니게 포기하게 된다. 이른바 N포세대다. 그렇다고 하여 기성세대처럼 노오력한들 계층 상승을 꿈꿀 수도 없는 처지에 놓인 그들이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서 계층 사다리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까닭이다.



아무 의미 없으며, 특별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그저 아무나가 되고 싶다는 의미의 '무민세대'는 이런 배경 속에서 탄생했다. 올해 초 취업포털 사람인이 성인남녀 118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2030 세대의 절반 가까이가 자신을 무민세대라 자처하고 있었다. 그 비율이 20대는 47.9%, 30대는 44.8%에 달했다. 무민세대가 된 이유로는 ‘취업, 직장생활 등 치열한 삶에 지쳐서’를 가장 많이 꼽았고, 이의 등장 원인으로는 ‘수저계급 등 개선 불가능한 사회구조’를 들고 있었다.


어느덧 단순히 노오력만으로는 자신들의 처지를 타개할 수 없노라는 현실을 절실히 터득하게 된 이 땅의 청년들이다. 참으로 씁쓸하다. 이런 가운데 SNS에서는 '#대충 살자' 시리즈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건 유명 연예인을 등장시킨 시리즈를 꼽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서로 높이가 다른 흰색 양말 한 쌍을 신은 사진과 함께 ‘대충 살자, 양말은 색깔만 같으면 상관없는 김동완처럼'이라는 문구를 삽입한 그룹 ‘신화’ 멤버 김동완 시리즈가 가장 대표적이다. 그밖에 배우 황정민이 머리에 풍선을 끼우고 찍은 사진이 담긴 ‘대충 살자, 숫자 풍선 들기 귀찮아서 머리에 끼운 황정민처럼’ 등 다양한 종류의 패러디물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기발한 작품들도 많다. 혹자는 이렇듯 재미 삼아 릴레이식으로 진행되는 시리즈물을 보며 정말 유쾌하다고 평가하곤 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네티즌들의 놀라운 창의력에 혀를 내두르며 이러한 시리즈물들을 '웃음 지뢰'로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청년들이 재미 삼아 툭툭 내뱉는 듯한 그 웃음이라는 겉포장의 이면에는 사실 노오력만으로는 작금의 현실을 결코 바꿔나갈 수 없노라는, 생존 자체를 염려해야 하는 자조적인 쓴 웃음이 감춰져 있기에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온라인 등에서 여전히 유행하고 있는 '소확행'의 연장선쯤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니까 그들 앞에 닥친 어려운 현실 탓에 성인이 되어 통과의례로 받아들여지는 대부분의 것들을 포기하거나 내려놓은 채 무민세대가 되어 그저 일상 속에서 작은 행복을 길어 올리겠노라는 '소확행' 류의 자조적 표현이, 겉으로 볼 땐 우습지만 알고 보면 씁쓸하기 짝이 없는 '#대충 살자'라는 해시태그의 형태로 고스란히 옮겨 간 셈이다.


청년들의 '대충 살자'라는 넋두리에는 사실 어느 누구보다 치열하게 이 세상에 맞서왔고, 어느 누구보다 노오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이 어두운 현실로부터 벗어날 엄두가 나지 않게 되자 자신들의 처지를 스스로 비웃는 자조적 의미가 내포돼 있다. 그러니까 사실 '대충 살자' 라는 청년들의 중얼거림은 더 노력하고, 더 열심히 살아보고 싶지만, 결코 녹록지 않은 현실 앞에 치여 생존을 호소하고자 하는 반어법에 가깝다. 그래서 유쾌하기보다는 웃프고 씁쓸하다. 우리 사회, 특히 기성세대가, 이들의 몸부림에 더욱 세심하게 귀를 기울이고 개선시키기 위해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