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치란 말야

필요는 발명을 촉발시킨다

새 날 2018. 11. 17.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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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환경오염 문제가 크게 부각되고 있다. 무분별한 플라스틱의 사용으로 지구촌이 몸살을 앓고 있으며, 이러한 결과는 결국 부메랑이 되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는 매우 현실적인 인식이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커피전문점 등에서는 플라스틱 일회용 컵 및 빨대 사용을 줄이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모양새다. 온갖 아이디어들이 꽃피고 있다. 필요가 발명을 촉발시키고 있는 것이다. 플라스틱 빨대 대신 종이로 만들어진 친환경 제품이 선을 보였다. 더 나아가 물이나 커피 등을 담는 용기를 아예 병째 먹는 혁신적인 제품도 개발되고 있다. 


해초로 만든 물주머니인 '오호(Ooho)'라 불리는 제품이 바로 그에 해당한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난 9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해로우마라톤에서 페트병에 담긴 물 대신 이 '오호'라는 제품이 제공됐다고 한다. 해초를 주성분으로 만든 오호는 껍질까지 먹을 수 있고, 혹여 이를 그냥 버린다고 해도 100% 생분해성 소재로 제조됐기에 6주 이내에 모두 분해된다고 한다. 물뿐 아니라 술이나 탄산음료, 그리고 화장품 등도 이에 담을 수 있으며, 향과 색깔도 첨가할 수 있어 활용범위가 무궁무진하다고 한다. 플라스틱보다 가볍고, 재료비마저 저렴하다고 하니 그야말로 일거양득이 아닐 수 없다. 



필요는 발명을 촉발시킨다. 지난 해부터 아파트를 제외한 모든 주택에 소화기 설치가 의무화됐다. 다세대 주택의 경우 각 세대마다, 그리고 단독주택의 경우 각 층마다 반드시 소화기를 비치해야 한다. 차량 또한 5인승부터 소화기 설치를 의무화하는 방안이 추진 중에 있다. 그런데 이 소화기라는 녀석은 참으로 한결같다. 그러니까 못생겼다. 불을 끄는 제한된 용도에, 눈에 잘 띄면 그만이기에 어느 누구도 디자인 따위엔 신경을 쓰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 녀석을 집안에 비치한다면 왠지 굉장히 이질적인 느낌으로 다가올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 건 모든 주택에 소화기 설치가 의무화되면서 이의 외형에 변화를 바라는 수요가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꽃병처럼 이쁘게 디자인된 소화기가 등장했다. 이 녀석을 던지면 깨짐과 동시에 불을 잠재우는 소화 액체가 뿌려진다. 파편이 튀어도 위험하지 않게 설계된 플라스틱 재질인 데다가 단순히 불을 끄는 용도뿐 아니라 이렇듯 인테리어 소품으로써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잘 디자인된 제품이다. 이쯤 되면 이뻐서라도 하나 장만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길 것 같다.



필요는 발명을 촉발시킨다. 삼성전자가 지난 8일 폴더블폰에 장착될 '인피니티 플렉스' 디스플레이를 공식 발표했다. 폴더블폰을 접었을 때 사용하는 커버 디스플레이는 4.58인치 크기이며, 펼쳤을 때의 크기는 7.3인치에 달한다. 이날 공개된 건 시제품이 아닌 단순히 디스플레이였음에도 접혀 있는 형태를 보니 두께가 제법 두툼했다. 정식 제품으로 출시될 때 이 문제를 과연 어떤 방식으로 극복할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업계에서는 삼성 폴더블폰이 내년 3월 중 출시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두고 시장 반응은 둘로 크게 엇갈린다. 우선 기존 스마트폰 시장의 판도를 크게 바꿀 혁신이 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시각을 들 수 있다. 또 하나는 디스플레이를 굳이 접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서 이를 평가 절하하고, 제한적인 활용성과 기술력 문제 등을 이유로 찻잔속 미풍에 그칠 것이라는 다소 부정적인 시각이다. 


물론 부정적인 시각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기술적인 문제점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데다가 지나치게 비싼 가격 또한 발목을 잡을 공산이 크다. 때문에 천편일률적인 형태의 기기들 가운데 독특한 기능과 외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조금은 특별한 기기로 자리매김된 채, 그동안 시장에 잠깐 나타났다가 이내 사라져버린 비운의 기기들 명단에 또 다시 이름을 올리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훨씬 이전, 그러니까 폴더형의 휴대폰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액정을 가로로 돌릴 수 있는 '가로본능폰'이라는 독특한 컨셉의 제품이 시장에 출시됐다. 엄청난 광고 물량만큼 반향도 컸던 걸로 기억된다. 그러나 잠깐 동안의 시선을 받은 뒤 해당 기기는 시장에서 이내 사라지고 만다. 무언가 독특한 컨셉이긴 했으나, 단순히 호기심만 유발했을 뿐, 단언컨대 혁신으로 이끌 만한 기능성 제품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출시되는 폴더블폰 역시 '가로본능폰'처럼 일시적인 호기심을 유발하며 얼리어답터에 의한 수요만을 창출한 채 가격이나 기술력 등의 장벽으로 인해 시장에서 당장 큰 반향을 불러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플렉시블한 디스플레이만이 지니고 있을 법한 상징성과 가능성, 그리고 용도의 확장성 등 상품성만큼은 얼마든 기대를 가져볼 만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접는 디스플레이는 손오공의 여의봉을 연상케 한다. '여의'란 '뜻대로 된다'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즉, 여의봉은 이름 그대로 사용하는 자의 의지에 따라 자유자재로 그 크기를 바꿀 수 있다. 손오공은 여의봉을 바늘처럼 줄여 귓속에 넣고 다니다가 필요할 때마다 그 크기를 늘여 사용하곤 했다. 때로는 하늘에 닿을 정도로 아주 길게 늘이는 경우도 있었다. 접는 디스플레이 또한 평상시 주머니에 쏙 넣을 수 있을 정도로 작게 접고 다니다가 유사시 쓰임새에 맞도록 그 크기를 키우는 게 얼마든 가능하다. 


반드시 휴대폰이 아니어도 상관은 없다. 플렉시블한 디스플레이를 여러 겹으로 접어 조그맣게 만들어 주머니 같은 곳에 쑤셔 넣고 다니다가 특별한 작업이 필요할 때마다 이를 원하는 크기에 맞도록 펼쳐 활용할 수만 있다면, 지금의 휴대폰이나 태블릿, 그리고 노트북 등 휴대성을 고려한 제품들의 쓰임새를 한꺼번에 아우르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들 제품들 중간 어디쯤엔가 새로운 쓰임새로, 혹은 기존의 기기들과는 전혀 다른 양태의 기기로 자리매김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단언컨대 그럴 만한 상품성과 확장성을 충분히 갖췄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다. 때문에 필요는 발명을 촉발시킨다. 그동안 우리는 이런 방식의 제품을 늘 원하고 꿈꿔왔다. 자유자재로 접었다 펼 수 있는 디스플레이를 상상 속에서 그려온 것이다. 이제 그 첫 작품의 탄생이 임박했다. 물론 누군가의 표현처럼 이번 폴더블폰의 출시가 지금 당장은 혁신은커녕 자충수가 되게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판을 크게 뒤흔들 모멘텀의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 이러한 시도는 언제나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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