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치란 말야

직접 경험해본 '스팀잇'과 '메이벅스'

새 날 2018. 10. 13.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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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하는 블로그 플랫폼이 인기 상종가다. 그동안 매우 다양한 종류의 글쓰기 플랫폼들이 존재했었고 지금도 일부는 여전히 건재하지만, 어째서 이들이 이토록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일까? 블로그 등 기존의 플랫폼은 콘텐츠 생산자에게 어떠한 종류의 직접적인 보상이 제공되지 않았던 데 반해, 이들 새로운 플랫폼은 콘텐츠 생산자에게 가상화폐를 매개로 한 직접 보상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플랫폼으로는 외국계 기업인 스팀잇과 국내 기업인 메이벅스를 예로 들 수 있다. 특히 스팀잇의 도약은 눈이 부실 정도다. 미국계 기업임에도 한국 사용자의 숫자가 전체 사용자의 20% 가까운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폭발적인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새로운 기술을 수용하고 이를 활용하는 데 있어 어느 누구보다 빠르다는 한국민들의 특성과 얼마 전 광풍이 불며 사회적 이슈로까지 부각됐던 가상화폐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 마지막으로 자신이 생산한 컨텐츠에 대한 금전적 보상에 대한 기대심리까지 더해지면서 그야말로 인기 상종가를 구가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기업인 메이벅스는 스팀잇이 제법 의미 있는 성장을 해나가자 마찬가지로 컨텐츠에 대한 직접적인 보상을 해주겠다며 사용자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하지만 블록체인 기반, 가상화폐를 통한 콘텐츠의 보상 등 기본적인 운영 토대는 엇비슷해 보임에도 불구하고 스팀잇과 메이벅스 사이에는 몇 가지 본질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이에 대해서는 조금 뒤에서 짚어보기로 하고, 일단 직접 경험해본 스팀잇 플랫폼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보자. 



스팀잇을 아직은 의미 있는 블로그 플랫폼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도리어 커뮤니티적 성격이 유난히 강한 탓에 무언가 왁자지껄한 분위기다. 차분한 글쓰기와는 거리가 멀다. 사용자들의 성향 또한 플랫폼의 그것과 비슷하다. 때문에 그냥 또 다른 SNS의 등장으로 봐야 함이 옳을 것 같다. 물론 아직은 성장 단계인 까닭에 뚜렷한 형태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왠지 가상화폐 기술을 다루는 전문가나 이에 투자하는 덕후들의 놀이터 같은 느낌이다. 어떤 측면에서는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가즈아' 열풍의 재탕을 보는 듯한 느낌도 더러 든다.


운영 방식에서는 몇 가지 문제점도 엿보인다. 여타의 플랫폼들처럼 하루에도 무수히 쏟아지는 글들 가운데 좋은 글을 선별해내는 별도의 에디터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은 장점일 수도 있지만 단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더 크다. 오로지 사용자들의 보팅으로 좋은 글을 추천하고, 또한 좋은 글을 많이 생산한 사람들의 영향력이 커질 수 있도록 하여, 일견 굉장히 민주적인 운영 시스템을 갖춘 듯 보이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고래'의 편파적인 보팅, 사심 가득한 보팅, 이기적인 보팅을 통해 얼마든 이를 왜곡시키는 게 가능하다. 실제로 커뮤니티처럼 운영되는 스팀잇의 특성상 이곳 가상 공간에서는 글의 품질과는 전혀 관계 없는 이른바 친목 행위라 불리는 서로 밀어주기식 보팅이 횡행하곤 한다. 고래의 눈에 띄지 못하는 사이 좋은 글들은 이내 사장되고, 그저 그런 일회성 소비 지향의 글들이 대세로 떠오르는 식이다. 이런 방식의 생태계라면 보팅 시스템이 갖는 애초의 의미는 퇴색되고 만다. 훌륭한 가치가 담긴 양질의 글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또 그에 따르는 제대로 된 보상이 이뤄지기란 요원한 일이다. 



한편 오프라인에서 이미 유명인사인 경우, 이를 굳이 숨기지 않는 이상, 스팀잇에서도 높은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무릇 글쓰기에 관한 한 공정하고 공평한 토대가 되어야 할 텐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가 못한 셈이다. 이는 현실 세계의 부익부빈익빈 현상을 가상공간인 스팀잇으로 고스란히 옮겨온 것과 진배없다. 이러한 시스템 속에서 높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용자가 보상의 대부분을 취해가는 탓에 일반 사용자들에게 할당되는 보상은 아주 보잘 것 없다. 의미 있는 보상은 소수의 유명 인사들이 독식하는 구조다.


하지만 스팀잇의 가장 결정적인 문제점은 정작 따로 있다. 생산한 콘텐츠는 7일이 지나면 수정도 삭제도 그 어느 것도 할 수가 없다는 점은 상당히 치명적이다. 명예훼손 등 자칫 문제가 될 수 있는 콘텐츠조차도 스팀잇 공간에 영원히 살아남은 채 박제화될 공산이 크다. 누군가는 이불킥을 불러올 만한 사연을 만들 수도 있을 법하다. 이른바 잊혀질 권리를 스팀잇에서는 주장할 수가 없다. 뿐만 아니다. 스팀잇의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말 그대로 최악이다. 스팀잇 기술 개발자들에게 있어 사용자의 편의성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닌 듯싶다. 티스토리 등 기존 블로그 사용자라면 그 불편함에 놀라 그만 혀를 내두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스팀잇 사용자들은 왜 이러한 불편함 따위를 굳이 감내하면서 이를 이용하고 있는 걸까? 블록체인 기술이 만들어낼 미래의 가능성에 베팅하기 위해서일까? 물론 이 또한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가 될 수는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보다 궁극적인 이유는 콘텐츠 생산에 대한 직접적인 대가, 바로 그 가능성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실제로 얼마 되지는 않지만, 시범 삼아 스팀잇에서 활동한 대가로 획득한 가상화폐 스팀을 국내 한 거래사이트에서 매매해 보았다. 몇 단계 절차만 거치면 비교적 손쉽게 이뤄지는 편이었다. 이러한 매력이 아마도 많은 이들을 스팀잇으로 끌어들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 그렇다면 이번에는 국내 서비스인 메이벅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스팀잇과 다른 점은 포스팅을 작성하면 그 즉시 가상화폐와 교환이 가능한 토큰을 지급해준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스팀잇처럼 보팅을 별도로 받지 않더라도 콘텐츠 생산 자체만으로도 일단 직접적인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구조다. 그 밖에 댓글과 추천, 그리고 후원을 통해 토큰 획득이 가능하다. 그러나 메이벅스의 운영 시스템은 스팀잇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구조다. 



스팀잇은 실제로 스팀이라는 자체 가상화폐 시스템 위에 플랫폼 토대가 구축되어 운영되고 있지만, 메이벅스는 자체 가상화폐도 없거니와, 스팀잇과 같은 시스템이 아닌 회사가 별도로 보유하고 있는 가상화폐를 토큰과 수동으로 교환해주는 방식이다. 과연 얼마나 많은 양의 가상화폐를 보유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이런 방식의 운영으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운영 주체도 뚜렷하게 공개돼 있지 않은 실정이다. 홈페이지에도, 포털 검색엔진에도, 메이벅스의 운영 주체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어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진 상태다. 메이벅스 사이트에서 직접 포스팅을 발행해보고 조금 둘러보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사이트의 수준도 조악하기 이를 데 없다. 블로그 플랫폼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엉성하기 짝이 없다. 사용자의 숫자나 포스팅의 수준도 아직은 여러모로 미흡하다. 혹자는 이를 한국판 스팀잇이라 호칭하고 있으나 단언컨대 아직은 스팀잇과 견줄 만한 대상은 아닌 듯싶다. 



블록체인과 가상화폐는 과연 미래 기술의 핵심으로 떠오를 것인가? 물론 아직 이에 대한 예단은 섣부르다. 다만, 해당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각종 실험들이 이 시간에도 속속 전개되고 있다. 블록체인 기반의 블로그 플랫폼 역시 이들 실험 가운데 하나다. 이들 실험이 실험 수준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생활 속으로 본격 파고들 때 비로소 앞서 언급한 기술의 가능성을 점칠 수 있을 테다.



스팀잇과 메이벅스를 몸소 체험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내가 주축으로 사용하고 있는 티스토리 서비스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티스토리는 비록 스팀잇의 커뮤니티 같은 아기자기한 느낌이 없어 포스팅을 쓸 때면 혼자서 허공에 떠들어대는 것 같지만, 적어도 생각을 가다듬고 차분히 글로 옮길 수 있는 공간인 것만은 확실한 데다가 이를 읽는 이들 또한 호흡을 반 박자 늦추고 조용히 글을 음미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준다. 게다가 비록 나처럼 비전문적인 시각으로 쓴 글이라 해도 정성스레 작성한 글이라면 이를 많은 이들이 읽을 수 있도록 배려도 해준다. 티스토리를 더욱 사랑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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