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치란 말야

티스토리, 실망스럽다

새 날 2018. 11. 4.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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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요즘 부쩍 유행하는 용어 가운데 하나다. 공급자는 수요자가 활발히 활동할 수 있도록 기반을 제공해주고, 이들 모두가 함께 참여, 상호작용을 통해 진화해 나가며 새로운 가치와 혜택을 모색해보는 상생의 생태계다. 사용자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하는 블로그 서비스도 일종의 플랫폼이다. 현재 꽤 많은 종류의 블로그 서비스가 존재한다.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블로그는 각 포털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일 테고, 그밖에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곳도 여럿 존재한다. 최근에는 블록체인 기술인 가상화폐를 토대로 구축된 블로그 서비스도 등장했다. 


내가 현재 주로 이용하고 있는 글쓰기 플랫폼은 카카오에서 운영하는 티스토리다. 어느덧 햇수로 5년차다. 그동안 무수한 일들이 있었다. 주변 환경도 변화무쌍했다. 처음 이곳에 발을 딛을 때만 해도 메타블로그 서비스인 '다음뷰'가 살아 있었기에 많은 블로거들의 활발한 활동이 전개됐는데, 1년 뒤 안타깝게도 해당 서비스는 종료되고 만다. 그래도 이때까지만 해도 티스토리의 영향력은 여전히 건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음과 카카오의 합병 소식이 들려온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카카오의 다음 흡수다. 우려하던 대로 이때부터 다음의 색채는 급속도로 퇴색돼갔다. 티스토리도 그 풍랑에 휩쓸린 채 다음 내에서의 지분도, 영향력도 갈수록 축소돼간다. 카카오는 다음블로그와 티스토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새로운 블로그 플랫폼을 런칭한다. '브런치'다. 이후 카카오가 여기에 엄청나게 공을 들여왔음은 모두가 알 만한 사실이다. 


티스토리 창작자들은 그냥 블로거로 불리지만, 브런치의 창작자들은 작가로 불린다. 이 같은 사실만으로도 카카오가 두 종류의 서비스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단적으로 드러난다. 즉, 카카오가 브런치와 티스토리를 각기 어떤 위치에 자리매김하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카카오의 전략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른바 내로라하는 유명 인사들의 브런치 영입에 성공한 것이다. 



브런치의 노출 영역은 갈수록 넓어졌다. PC 기반이며 모바일 기반 가리지 않고 되도록이면 많은 이들에게 읽히게 하려는 카카오의 눈물 나는 전략은 눈에 띌 정도로 브런치의 노출 면적을 증가시킨다. 반면에 티스토리의 외부 노출 영역은 날이 갈수록 축소되어 갔다. 포털 사이트 다음의 개편이 있을 때마다 티스토리가 차지하던 영역을 덥썩 내주더니 이제는 명맥만 간신히 유지하는 수준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브런치에 비해 압도적인 티스토리의 트래픽을 의도적으로 줄이고, 그와 반대로 브런치의 그것을 크게 늘리려는 전략이다. 티스토리가 그동안 구축해온 이미지가 어떤 류의 것인데 카카오는 이토록 멋대로 나오는 것일까? 온갖 종류의 O2O서비스에 갖은 공을 들이며, 플랫폼 전문 기업으로서의 입지를 굳혔노라는 자신감의 발로일까? 애시당초 카카오가 철저하게 구사해온 건 티스토리 무시 전략이다. 


물론 글을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저 글에만 집중하면 된다. 어찌됐든 글은 계속해서 쓸 수 있으며, 적어도 글 쓰는 환경만큼은 절대로 변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주변 환경에 구애 받지 말고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무언가 주장하고자 하는 내용을, 아니면 자기 만족이 될 만한 내용을 그저 쓰면 된다. 글을 쓰지 말라고 말리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러나 내가 쓴 글을 그래도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읽어주고 공감해주면 좋지 않을까? 나는 한 사람의 블로거로서 어떻게든 많은 이들에게 읽히고 그들로부터 피드백을 받는, 그러한 과정이 괜스레 좋았다. 그저 나 혼자 조용히 글을 쓰고 나 혼자 만족하는 게 전부라면, 그냥 일기장처럼 여기고 작성해나가면 그만일 테다. 애초 그렇게 할 요량으로 이곳에 발을 디뎠다면 계속해서 그런 방식으로 글을 써나가면 된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내가 주장하고자 하는 내용이, 내가 설득시키고자 하는 내용이 누군가에게 읽히고, 또 누군가에게 영향이 미쳐 조금이라도 좋은 방향으로 변화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갖게 됐는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내 글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고 더 나아가 사회의 바람직한 변화에 조금이라도 일조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러다 보니 주변 여건의 변화 따위 생각지 않고 그저 모른 채 두 눈 질끈 감고 아무 동요 없이 글만 써내려갈 수는 없었다. 다음뷰가 사라졌을 때는 내면에서 무언가가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었으며, 포털 다음의 티스토리 영역이 갈수록 축소될 때마다 가슴 언저리가 괜스레 허전하여 글이 잘 써지질 않았다. 나는 생각보다 민감한 사람이다. 브런치가 모바일과 PC 영역, 그리고 뉴스 등 모든 콘텐츠에 노출되며 승승장구할 때면 그동안 나는 티스토리에서 무얼 한 것인가 하는 자괴감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저 글만 쓰면 되는데, 왜 굳이 이런 생각을 하느냐는 사람들에게 감히 말할 수 있다. 나는 전문가가 아니다. 평범한 사람이다. 브런치에는 수두룩하다는 작가라는 명함을 결코 내밀 수 없는, 아주 평범하기 짝이 없는 보통사람이다. 하지만 단언컨대 글이라는 게 반드시 전문가만 쓰라는 법은 없다. 전문가는 전문 영역에서 말 그대로 전문가처럼 쓰면 된다. 그렇다면 나 같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비전문가로서 비전문인이 바라보는 시선으로 가장 전문적으로 쓰면 된다. 


근래 티스토리의 행보는 너무 아쉽다. 플랫폼과 그에 따르는 가치가 더욱 중요해지면서 공급자 및 사용자가 서로 가치를 공유하며 혜택을 나눠 가져야 한다고 너도 나도 떠들고 있건만, 티스토리는 공급자와 사용자의 상생보다는 일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거꾸로 가고 있는 모습이 아닌가. 이번 개편만 해도 그렇다. 사용자들의 우려가 뻔히 드러나는 데도 그들의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가장 비근한 사례로는 스토리 영역을 들 수 있다. 


각각의 카테고리 별로 세부 카테고리가 존재함에도 이를 구분해놓지 않았으며, 더구나 공감 5개가 아닌 글들은 아예 스토리 영역에서 찾아볼 수 없게 해놓았다. 그렇다면 공감이 없는 글은 무가치하다는 의미인가? 카카오가 얼마나 그럴 듯한 계획을 꿈꾸는지는 몰라도 지금과 같은 방식은 분명히 판단 오류다. 상생의 생태계는커녕 공급자의 일방적인 독주에, 사용자더러 군소리 말고 그냥 따라오라는 처사에 가깝다. 이런 방식의 생태계라면 건강하게 유지되기가 어렵다. 혹여 카카오가 티스토리 서비스를 아예 없앨 요량이 아니라면 사용자들의 의견을 무시해서는 곤란하다.


글 쓰는 작업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일이다. 글을 잘 쓰고 싶어도 주변 환경과 여건이 혼란스러우면 제대로 쓸 수가 없다. 글에만 집중하며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힘을 북돋는 게 그대들의 역할이건만, 그리도 어려운 일일까? 사용자에게 먼저 의견을 묻고 이를 존중하는 태도가 그토록 어려운 걸까? 플랫폼을 제공해주니 사용자는 그냥 고맙게 받아들이고 따라오기만 하라는 의미인 걸까? 


갈수록 힘 빠지게 하는 티스토리, 아니 플랫폼 전문 기업 카카오, 근래 너무 실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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