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오늘은 달다. 어제는 지랄맞았지만,

새 날 2018. 10. 29.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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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한복판에 삐딱하게 세워진 채 길을 막고 있는 차량 한 대, 그 뒤로 길게 꼬리를 물고 늘어서있는 또 다른 무수한 차량들, 운전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비켜달라며 클락션을 연신 울려댄다. 바빠 죽겠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민폐인가 모르겠다. 직접 보지 않아도 어떤 상황일지 너무 뻔했다. 빨리 벗어나고픈 뒷차 운전자들 입에서는 거친 욕지거리가 한 바가지씩 쏟아져 나왔을 게 틀림없다.


그런데 잠시 후 세워진 차량에 탑승하기 위해 다가오는 한 무리의 사람들, 누군가가 다쳤는지 한 사람은 다친 이를 부축하며 차에 태우고 있었고, 어머니로 보이는 듯한 또 다른 한 사람은 곁에서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짓고 서 있는 게 아닌가. 이 모습을 본 뒷차량들의 클락션 소리는 그제서야 잦아들기 시작한다. 이렇듯 나름의 사정을 헤아린다면 굳이 양보 못할 일도 아니거니와 조금 여유를 부려도 될 일을 우리는 흡사 서로를 잡아먹기라도 할 듯 앙칼지게 상처를 입히고 상대방에게 흠집을 내야 직성이 풀리곤 한다.



비단 남들에게만 그러할까?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유독 스스로에게 지나칠 정도로 모질게 굴어온 경향이 크다. 작은 실수조차 용납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닦달해왔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야만 이 복잡다단하고 치열한 무한경쟁 속에서 낙오되지 않고 그나마 보통의 어른이라도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왠지 그런 방식 만이 올바른 통과의례일 것 같았다.


달다의 에세이집 '오늘은 달다. 어제는 지랄맞았지만,'은 우리처럼 평범하기 짝이 없는 어른인 저자가 그녀만의 따스하거나 독특한 시선으로, 때로는 B급 감성으로 세상의 구석구석을 바라보고, 어느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고자 하는 일상의 이야기들을 직접 그린 그림과 함께 담백하게 담아내어 독자들을 어루만지고 달래준다. 저자가 이 에세이집을 통해 일단을 드러냈던 고민들은 나를 비롯한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음직한 종류의 것이다.



학창시절에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라고 해서 그저 남들처럼 그렇게 했고, 대학에 진학하고 난 뒤엔 누구나 알 만한 좋은 회사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여 또한 그렇게 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있자 이번에는 적당한 짝을 만나 결혼을 해야 한단다. 그래서 결혼했고, 결혼을 했으면 으레 아이를 낳아야 하는 것 같아 아이를 낳았다. 사회생활 만으로도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지경이었는데, 아이를 키우는 과정은 그야말로 정신을 홀딱 빼놓는 일이었다. 그 시절에는 모두들 그냥 남들처럼 살기를 바랐다. 막연하게나마 이런 삶이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느덧 아이들은 훌쩍 자랐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삶은 벌써 저만큼 와 있는 게 아닌가. 왔던 길을 되돌아보니 아득한 거리이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눈 깜짝할 사이에, 그리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런데 그 길 위에 정작 나는 없었던 것 같다. 분명히 내가 주인공인 작품이건만, 왠지 나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나는 무얼 한 것일까? 내 삶은 어디로 표류 중일까? 그래서 지금 행복한가'?



저자는 특정 나이가 되면 저절로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단다. 그러나 막상 어른이 되고 보니 결코 그렇지 않았다. 녹록한 게 하나도 없었다. 어른의 역할 가운데 만만한 구석이라곤 일절 없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부모님을 비롯, 어른이었던 모든 분들이 삶의 고단함을 결코 내색하지 않은 채 묵묵히 제 할 일에 몰두했던 사실은 그저 놀라웠다. 저자를 비롯한 세상의 모든 어른들은 충분히 위로 받을 만한 존재였다. 저자가 이렇듯 대견한 생각을 갖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이미 한 개체의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했음을 상징한다.


나나 저자가 했던 고민의 접점은 결국 '그래서 행복한가' 라는 질문에 있다. 저자는 남들처럼 사는 삶에서 벗어난 뒤 스스로를 칭찬 중이라고 한다. 비록 가난하지만 작가로 사는 지금이 무척 마음에 든단다. 그러니까 그녀가 찾고자 했던 질문의 답변에 한 발짝 가까워진 셈이다. 이 에세이집은 비교적 짧은 글에 깨알 같은 그림을 곁들여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간결하게 전달하고 있다. 단순한 형태의 이 그림들과 시처럼 짧은 글 그리고 흰 여백이 한데 어우러지니 저자만의 감성이 왠지 더욱 잘 묻어나오는 느낌이다. 오늘도 '나는 행복한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이를 답변하기 위해 남이 아닌 나의 삶을 무던히 그려 나가고 있을 모든 이들을 응원한다.



글 그림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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