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을 아시나요?

새 날 2018. 10. 9.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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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무척 기상천외한 식당 하나가 있다. 손님이 먹고자 하는 메뉴를 주문하면, 전혀 다른 메뉴가 나올 수 있음에도 어느 누구 하나 불만을 토로하지 않고 되레 즐거워하기까지 하는 식당이다. 이름부터 조금은 특이하다. 간판에는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라 쓰여 있다. 간판 이름 그대로 간혹 자신의 주문과 다른 메뉴가 서비스될 수 있다는 사실은 이 식당만의 특징이다. 이를테면 햄버그스테이크를 주문했는데 만두가 나오거나, 후식으로 콜라를 주문했음에도 아이스커피가 나올 수 있다. 


보편적인 고객의 입장이라면 자신이 지불하는 비용 이상의 대가를 바랄 테지만,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자신의 주문과 달리 전혀 엉뚱한 메뉴를 받아들고서도 왠지 함박 웃음을 짓는 등 시종일관 관대하다. 세상에는 모든 측면에서 완벽하더라도 까칠하기 이를 데 없는 소비자들 투성이이건만,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이 '주문을 틀리는 음식점'에는 도대체 무슨 비밀이 숨어 있길래 우리의 상식선을 벗어나 있는 걸까?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사실 이 식당의 홀 서비스는 치매를 앓고 있는 어르신들이 담당한다. 바로 앞의 일도 기억하지 못하는 등 인지 장애를 앓는 치매 환자들에게 있어 메뉴를 주문 받고 그에 따르는 음식을 서비스하는 일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때문에 이 식당은 애초 주문과 전혀 다른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서비스가 시작된다. 그러니까 가끔 실수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리고 있는 셈이다. 이렇듯 충분히 불편을 초래할 수 있는 서비스임에도 신기하게도 대중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과연 무엇이 이러한 분위기를 자아내게 하는 걸까?


일본 NHK 방송국에서 PD로 활동 중이던 오구니 시로가 쓴 책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에는 바로 이러한 특이한 운영 시스템을 갖춘 식당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저자는 어떤 계기로 이렇듯 엉뚱한 식당을 계획하게 됐는지, 또한 식당의 실제 운영 과정과 서비스를 이용했던 대중 및 해당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스텝들의 반응은 어떠했는지, 아울러 해당 프로젝트의 지난했던 기획 과정과 이후 진행돼온 물밑 움직임들,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 것들이며, 현재 진행 중에 있는 건 또 무언지에 대한 소회를 밝히고 있다. 



저자로 하여금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라는 프로젝트의 영감을 떠올리게 한 건 치매 환자들을 소수의 그룹으로 묶어 가족적인 도움을 통해 지역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던 한 그룹 홈에서의 우연한 경험 덕분이다. 이곳에서 그는 30년 동안 치매 환자의 간병을 돕고 있다는 와다 씨를 만나게 되며, 그를 통해 그동안 자신이 알고 있던 치매라는 질병과 환자에 대한 인식이 편견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치매에 걸린 사람들을 개개인의 독립된 인격이라기보다 대상화로 뭉뚱그려 가둬뒀던 그의 인식이 얼마나 그릇됐는가를 깨닫게 된 것이다. 


식당은 단 이틀 동안만 운영됐으나 만족스러울 정도로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게 된다. 손님으로 하여금 실수를 용인케 하거나 관용을 베풀게 하는 기회를 제공했더니 서비스에 나선 치매 어르신들의 실수가 잦아지더라도 불만을 표시하기보다는 되레 흡족해했다. 다른 식당들처럼 빠르고 정확한 서비스가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손님들은 기꺼이 기다려주거나 치매 어르신들의 실수를 용인해주었다. 



하지만 이 시스템 운영 방식에는 매우 치명적인 모순 하나가 감춰져 있었다. 실수가 있을 수 있다는 서비스를 전면에 내세운 데다가 치매 어르신들이 직접 서비스에 나서는 탓에 자칫 실수를 부러 즐기려는 등 치매라는 질병 그리고 환자들에 대한 인식 변화를 꾀하려다가 자칫 희화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상존했던 것이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해당 프로젝트의 취지는 오히려 하지 않음만 못하게 되는 셈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불식시키기 위해 프로젝트 참여자들은 머리를 맞대야 했으며, 결국 식당 운영 원칙이란 게 만들어졌다. 식당답게 음식의 질인 맛과 멋을 고집하는 것이었고, 실수가 목적이 아니니 일부러 실수를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메뉴가 뒤바뀌는 경우가 있더라도 제공된 음식의 질만큼은 이렇듯 최고를 지향했던 까닭에 식당으로서의 고유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고, 덕분에 고객들의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던 셈이다.



치매 어르신들이 스스로 일을 해내고 누군가를 위해 공헌했다는 사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도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는 점에서 이번 식당 운영은 매우 긍정적인 프로젝트였다. 그러니까 사회적인 치매 돌봄 시스템이 전제된다면, 치매 환자로 하여금 얼마든 일을 창출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보게 한 실험이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저자가 그러했듯 사회 구성원들이 치매에 대해 막연히 품어 왔던 좋지 않은 감정과 인식을 전환하게 된다면 이 또한 나쁘지 않은 결과물이 될 수 있을 테다. 


우리는 온통 빨리빨리만을 추구하는 합리적인 시스템 속에서 작은 실수조차 용인되지 않는, 숨이 턱턱 막히는 건조한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우리는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프로젝트를 통해 작은 실수는 얼마든 용인해줄 수 있으며, 조금 느리더라도 이를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주고, 틀려도 괜찮다는 관용이라는 미덕을 잠시나마 맛볼 수 있었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강퍅하기만 할 줄 알았던 현대인들에게 이런 측면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 사실은 무엇보다 큰 수확이다. 그렇다면 이 너그러운 마음, 즉 관용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바로 상대방과 그의 처지를 인정하는 지점에서부터 출발한다. 식당을 찾는 고객들은 홀에서 서비스를 하는 직원들이 이미 치매 환자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던 상황이다. 그동안 우리는 바쁘다는 핑계로, 때로는 무한경쟁 구도 속에서, 오직 자신의 처지에만 몰두하는 바람에 바로 앞 혹은 옆과 뒤에 있는 이들의 처지를 헤아리지 못했다.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은 우리로 하여금 이들을 돌아보라는 호소다. 


우리 역시 사람인 이상 어느 누구도 실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누군가가 실수할 경우 이를 책망하며 꾸짖기보다 '틀려도 괜찮아' 하며 오히려 격려해주고 힘을 북돋워주면 좋겠다. 조금은 너그럽고 친절하며 부드러운 세상이 되면 좋겠다. 느리더라도 이를 느긋하게 기다려주고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응원해주면 좋겠다. "뭐.. 괜찮아요"라는 관용이 물 흐르듯 흐르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저자  오구니 시로

역자  김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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