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하마터면 남들처럼 살 뻔했다

새 날 2018. 10. 2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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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준생’이라는 신조어의 탄생 배경에는 ‘퇴사하겠습니다’의 저자 이나가키 에미코의 영향력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녀에게는 그날이 그날 같은, 매일 반복되는 회사생활이 언젠가부터 지겹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특히 30대 후반에 이르자 조직 내에서 중견 직원 대접을 받게 되면서 조직을 관리해야 하는 관리자의 위치라는 회사 내 역학 구도를 고려, 처신과 정치가 필요해진 것도 그녀를 피곤하게 하는 요소였다. 즉, 일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상황에서 일 이외의 요소들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 건 그녀에게는 고역이었다.


결국 그녀가 선택한 건 사직서를 가슴에 품은 채 언제든 이를 제출하고 회사로부터 영원히 탈출을 꿈꾸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도리어 조직 생활이 즐겁게 다가오는 게 아닌가. 누군가의 지시를 받고 마지 못해 하던, 무언가의 굴레로부터 벗어났노라는 느낌이 오히려 일을 재미있는 방향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그렇게 10년 동안이나 가슴에 품어온 사직서를 어느 날 회사에 제출한 뒤 그녀는 드디어 탈출에 성공하게 된다. '회사인간'에서 '인간사회'로 유턴하는 순간이다.



세상은 참으로 요지경이다. 누군가는 죽도록 열심히 공부하여 스펙을 쌓고 내로라하는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목을 매는 처지인데,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좋은 직장을 마다하고 자연인으로 돌아가고 싶어 안달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이러한 현상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리의 삶에는 정답 따위란 없다는 사실을 입증해주는 단초 아닐까? 앞서 언급한 나가키 에미코 씨는 자신의 직장 아사히신문사를 그만두고 미니멀리스트의 삶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덕분에 주변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베푸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단다.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던 급여가 들어오지 않자 처음에는 불안하고 익숙지 않았으나 이 또한 소비를 줄이니 충분히 견딜만 한 것이 되었단다.


평생 회사에 적을 둔 채 회사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개인을 일컬어 흔히 '회사인간'이라고 하듯이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의 현대사회를 ‘회사사회’라 일컫곤 한다. 왜일까? 사회의 가용자원 대부분이 기업을 향하고 있고, 평범한 사람 대부분이 직장인이 되고자 하기 때문이다.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학교에 진학, 학위를 따고 어학 공부에 자격증 취득까지, 온갖 스펙을 갖춰 어렵사리 회사에 발을 들여놓으려 한다. 이러한 모습은 바로 이 책의 제목에서 언급하고 있는 '남들처럼 사는 삶'의 전형이다.



이러한 과정의 마지막 단계까지 성공한 사람들은 그나마 운이 아주 좋은 편이다. 많은 사람들이 평범한 직장인이 되는 꿈을 꾸지만 여러 이유로 이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인 탓이다. 그러나 그토록 꿈에 그리던 직장에 들어간 이후 우리의 삶은 너무나도 천편일률적이다. 말 그대로 회사인간화의 길로 접어들게 되기 때문이다. 생계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시계추처럼 지루한 생활을 반복하지만, 이 과정에서 돌아오는 건 번아웃과 같은 고단함의 흔적들뿐이다.


이 책은 이렇듯 평범한 이들이 꿈꾸는 삶이 아닌, 그러니까 남들처럼 사는 삶이 아닌, 남들처럼 살지 않은 이들이 살아온 극적인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나가키 에미코가 그랬던 것처럼 현직 기자인 송혜진이 쓴 책 ‘하마터면 남들처럼 살 뻔했다’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영역에서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삶의 이정표를 세운 23명의 사연을 통해 성공의 방정식을 말하려 하기보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은 의외로 다양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이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어떻게 최고의 성과를 누릴 수 있었는지 그 지난한 노력들을 담담히 소개한다.



이들 23명이 살아온 환경과 처하게 된 여건은 제각기 다르다. 아울러 각자가 몸담고 있는 영역 또한 상이하다. 하지만 그들이 걸어온 삶의 궤적에는 몇 가지 측면에서 공통점이 엿보인다. 대부분은 오로지 자신만의 성공을 바랐던 게 아니라 주변의 이웃들, 특히 소외된 이들과 이익을 함께 나누려는 따듯한 심성을 간직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생득적이었던 어려운 여건과 환경을 오히려 자산으로 일궈내는 끈기와 뒷심이 뒤따랐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돈보다 더욱 소중한 가치를 지켜내려는 우직함이 유독 돋보였다.


사직서를 10년 동안 품고 다니다가 결국 이를 회사에 제출, 과감히 회사인간으로부터 탈출하게 되고, 주변에서 보이는 사소한 것을 놓치지 않은 채 수없는 실패를 거듭한 끝에 뜻을 이루게 되고, 부모로부터 버림 받아 해외 곳곳으로 입양되었지만 성장하면서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 특정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되고, 무수한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결코 도전을 멈추지 않는 강력한 추진력으로 마침내 의미 있는 성과를 일궈낸.. 결코 남들처럼 살지 않은 23명의 이 극적인 이야기는 눈앞의 얄팍한 이익 앞에서 한없이 약한 면모를 드러내는 등 오늘도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그러니까 남들처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작은 울림으로 다가오게 한다.

 
저자  송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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