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첫 발자국을 향한 인간적인 고뇌 '퍼스트맨'

새 날 2018. 10. 19.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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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신 삐그덕거리는 소리에 덜덜 거리기까지 하는 좁아터진 동체, 이곳에 탑승한 사람은 제아무리 고도의 훈련을 받았다 해도 온전하게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온몸이 혹사를 당하기에 꼭 알맞다. 이 동체엔 닐 암스트롱(라이언 고슬링)이라는 인물이 탑승해 있다. 동체는 다름 아닌 우주선이며, 일순간 대기권을 벗어나자 그제서야 막간의 평화가 찾아온 듯 진동과 온갖 소음이 일시에 멈춘다. 그와 동시에 조그맣게 난 창 밖으로는 푸른 행성 지구의 경이로운 풍경이 닐의 눈앞에 활짝 펼쳐진다. 


때는 바야흐로 1960년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양대 진영의 대표 주자격인 미국과 소련의 패권 경쟁이 점입가경에 이르던 시기이다. 이들의 경쟁은 어느덧 우주라는 외연으로까지 확장됐다. 하지만 미국은 번번이 소련에 뒤처지며 자존심을 구겨야만 했다.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은 소련의 몫이었으며, 유인 우주선 역시 소련에 양보해야 했다. 두 패권 국가의 우주 탐사전은 이렇듯 엎치락뒤치락 앞서거니뒤서거니 하면서도 늘 소련이 한 발자욱 앞서가던 형국이었다. 



미국의 조바심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만 갔다. 급기야 달 탐사만큼은 소련에 양보할 수 없노라는 결론에 이른다. 자존심을 건 끝없는 패권 경쟁의 완성은 결국 달 착륙이었다. 이를 직접 행동에 옮길 적임자는 이성적이고 늘 조용하며 온건한 성격의 소유자 닐 암스트롱이었으며, 덕분에 달 탐사의 예비 프로젝트인 '제미니'부터 본격 달 착륙 프로젝트인 '아폴로'까지 그가 핵심적인 역할을 도맡아하게 된다. 



이 작품은 제임스 R. 한센의 전기 'First Man: The Life of Neil A. Armstrong'을 원작으로 하며, 닐 암스트롱의 달 탐사를 향한 도전과 아폴로 프로젝트의 뒷이야기들을 다룬다. 닐 암스트롱에게는 사실 감당하기 힘들 만큼 아픈 개인적인 사연이 존재한다. 소련에 뒤처진다는 조바심으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우주 개발이 한창이던 시절, 딸이 암 투병 중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딸은 세상을 떠나게 되고, 웬만해서는 감정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던 그는 북받치는 슬픔과 상실감에 어쩔 줄 몰라해하며 남몰래 오열하고 만다. 이 장면은 여기서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달 탐사에 앞서 비행 테스트에 나선 동료들이 각종 사고로 하나둘 숨져가자 그의 고뇌는 더욱 깊어진다. 가족을 생각하면, 더구나 숨진 딸 아이를 생각하면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이 가장 앞서야 하는 상황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숨져간 동료들로 인해 그들의 몫까지 자신이 다 해내야 할 것 같은 책임감이 그의 어깨를 자꾸만 짓눌러오기 때문이다. 



달 탐사에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된다. 미국 정부는 우주 개발이 미래 인류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달 탐사 및 착륙 계획을 추진하고 있으나 사실 진짜 속내는 소련과의 패권 경쟁에서 절대로 밀릴 수 없노라는 절박감 때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제미니와 아폴로 프로젝트가 연이어 진행되면서 엄청난 혈세가 투입되고, 게다가 어느 누구보다 우수한 인재들이 그 과정에서 자꾸만 희생되자 미국 일각에서는 달 탐사 계획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품으며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심심찮게 들려오기 시작한다. 



스크린 위로 펼쳐지는 다소 거칠지만 인물을 크게 부각시키는 영상은 닐과 그의 아내 자넷(클레어 포이)의 당시 불안한 심리 상태를 고스란히 투영시킨다. 우여곡절 끝에 아폴로 11호가 마침내 장도에 오르고, 탐사선이 달 표면에 착륙하는 순간, 세상은 일시 정지 모드에 돌입하기라도 한 듯 일제히 고요 속으로 침잠한다. 이때 관객은 닐 암스트롱이 당시 달에서 겪었을 무중력과 진공 상태를 함께 공유하는 기묘한 체험을 하게 된다. 숨이 멎은 듯 온 사위가 온통 고요한데, 닐 암스트롱이 달 위로 역사적인 첫 발자욱을 내딛는 순간 관객의 숨은 동시에 멎고 시선은 조용히 그의 발자국을 쫓게 된다. 



당시에는 굉장한 기술력으로 평가 받았겠으나, 정작 달 궤도로 쏘아올려진 우주선은 사람 몇 명이 간신히 앉아있기에도 비좁을 만큼 형편 없었으며 동체에 장착된 컴퓨터는 오늘날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일반 컴퓨터의 성능에도 못미칠 정도로 조악한 수준이었음에도 달 표면에 착륙했다가 다시 지구로 무사히 귀환한 사실은 흡사 기적과도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소 거친 듯한 영상 위로 덧씌워진 아름다운 선율은 닐의 인간적인 고뇌와 함께 잔잔히 흐르면서 깊은 여운을 남기고, 독특한 촬영 기법과 요소요소에 적절하게 배치된 배경 음악 및 음향 효과 덕분에 마치 꿈을 꾸듯, 혹은 아스라한 흑백 영화 한편을 감상하듯 관객들을 몽환의 세계로 이끈다. 영화는 왜 달 탐사에 나서야 했는지 끝내 그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물론 미국과 소련의 패권 경쟁 속에서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산물임을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말이다. 그 대신 닐 암스트롱이라는 인물 그리고 그의 아내, 그들의 인간적인 고뇌에 천착한다. 


"이것은 한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거대한 도약이다" 



감독  데이미언 셔젤


*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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