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집밥이 품고 있는 고유한 성정 '대장금이 보고 있다'

새 날 2018. 10. 17.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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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에는 그것 만이 지니고 있을 법한 고유한 성정이란 게 담겨 있다. 영혼 없는 온갖 인스턴트 음식이 활개를 치고 밖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자연스레 외식이 주가 되는 식생활 패턴 속에서 요리를 직접 만드는 당사자의 손맛과 정성이 깃들어 있다는 점은 물론, 얼굴조차 마주치기 어려운 데다가 말을 섞기는 더더욱 힘들 만큼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가족이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얼굴을 맞대며 식사를 하게 된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다.

 

지난 11일(목) 밤 11:00에 첫 방송된 MBC 예능드라마 '대장금이 보고 있다'는 바로 이 집밥에 포인트가 있다. 조선 중종 시절, 뛰어난 미각과 손맛으로 이름을 떨쳤던 대장금의 후손인 절대 미각의 소유자 한산해(신동욱), 절대 후각의 진미(이열음), 절대 손맛의 정식(김현준) 이 세 남매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 모여 저녁식사를 해야 한다는 가풍을 따라야 하는 입장이다.

 


요즘처럼 저마다 바쁜 생활 속에서 매일 저녁식사를 함께해야 한다는 건 유난히 지키기 어려운 미션일지도 모른다. 이렇듯 다소 특이한 집안 내력과 독특한 가풍을 이어가야 하는 삼남매, 이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소소한 일상과 음식에 관한 에피소드가 이 드라마의 주된 줄거리다. 각 회차마다 대표 식재료가 하나씩 선정되고, 그와 관련한 다양한 레시피와 음식 등이 차례로 소개될 예정이다.

 


첫 회에서는 돼지고기가 주된 식재료였으며, 정식이 공개한 특급 레시피에 의해 정성껏 요리된 수육이 선보였다. 집안의 장손 산해는 음식을 맛보면 어떤 식재료가 쓰였는지 이름이며 질량까지 정확히 맞히는 능력을 지녔으며, 쌍둥이 동생 가운데 먼저 태어나 둘째가 된 진미는 냄새만으로도 식재료의 종류와 향신료까지 척척 알아 맞힌다. 집에서 요리 담당인 쌍둥이 가운데 둘째이자 이들 형제의 막내 정식은 손으로 감싸쥘 때마다 식재료가 최적의 조건에 맞도록 자동으로 숙성이 이뤄진다. 놀라운 능력이다.

 

 

동화속 신데렐라가 매일 밤 12시가 될 때마다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밖으로 뛰쳐나가야 했던 것처럼 매일 저녁 7시 무렵이면 이들 형제들은 각기 하던 일을 멈추고, 혹여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든 아니면 회식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있든 관계없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를 멈추고 집으로 열심히 달려가 함께 자리에 앉아 정식이 마련한 손맛 가득한 음식을 나눠 먹는다. 시간을 맞추느라 조금 바쁘긴 해도 어떻게 보면 하루 중 가장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 아닐까 싶다.

 


이 드라마에서는 작금의 고단한 현실을 살아가는 청춘들의 날 것 그대로의 모습도 비춘다. 진미는 걸그룹 후보생이다. 정식 걸그룹 멤버가 되기 위해 매일 안무에 맞춰 댄스 연습에 몰두하는 등 10년 동안 연습생 생활을 이어왔다. 드디어 정식 걸그룹 멤버가 되기로 약속된 날, 두근거리던 그녀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 기획사가 파산한 것이다. 함께 준비해온 다른 연습생들은 그나마 나이가 어려 소속사를 옮길 수 있었으나 가장 나이가 많았던 그녀를 부르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

 

 

복승아(유리)는 체대 출신으로 어렵사리 직장을 구하게 됐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출근 첫날부터 고행의 연속이다. 자신의 직속 상사인 줄 알고 따라나섰던 한산해 팀장의 영업을 조금이라도 돕고 싶은 심정에 괜시리 끼어들었다가 기존에 맺기로 돼 있던 계약까지 모두 파기시키는 등 궁지로 내몰리고 만다. 어쩔 수 없이 고객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상황, 스포츠센터에서 댄스를 배우던 고객 옆에서 춤을 따라 추는 등 갖은 노력을 경주한다. 직장 동료들과의 회식 자리에서는 막내로서 선배들의 비위를 맞추는 등 사회 초년생으로서 무엇이든 씩씩하게 해낸다.

 

 

현대인들의 삶은 고달프다. 하지만 청년들의 그것은 더욱 고달프다. 고달픈 이들에게 웃음과 음식은 위로가 되어준다. 아니 때로는 누군가가 맛있는 음식을 복스러우면서도 먹음직스럽게 먹고 있는 모습만으로도 우리는 대리만족 또는 행복감을 느끼곤 한다. 복승아가 고객과 직장 선배들의 비위를 맞추는 모습은 자연스럽게 웃음을 유발하는 대목이지만, 그 뒷맛은 왠지 요즘 청년들의 현실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싶어 씁쓸하기 짝이 없다. 반면, 진미와 복승아가 후루룩 거리며 밀로 만들어진 음식들을 먹던 모습은 무언가 허기진 듯한 우리의 마음을 든든히 채워준다.

 

10년 동안 준비했지만 결국 걸그룹의 일원이 되지 못하고 고배를 마시게 된 진미, 그 어렵다는 취업문을 뚫고 입사한 직장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갖은 애교를 떨어가며 비위를 맞추는 복승아, 이들을 위로해주는 건 뜻밖에도 지독히도 매운 컵라면이나 담백한 칼국수 한 그릇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이를 능가하는 건 뭐니뭐니 해도 정성과 손맛이 듬뿍 담긴 집밥이다. 정식이 만들어준 김치찌개를 진미가 먹으며 눈물을 흘렸던 건 비단 꿈을 이루지 못했다는 억울함 때문이라기보다 아마도 집밥 만이 고이 품고 있을 법한 그 따스한 성정 때문이리라. 앞으로 방영될 회차에서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은 물론이며 집밥은 언감생심일지도 모를 수많은 사람들을 위로해주고, 눈물을 닦아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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