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저냥

세기의 악수, 그리고 악수의 세기

새 날 2018. 10. 12.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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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과 손을 마주잡고 반가움 혹은 감사 등을 표시하는 악수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일반화된 예절법이자 친교 행위이다. 물론 이러한 악수에도 요령이 있다. 악수를 할 때는 반드시 오른손을 사용해야 한다. 이는 악수의 기원과 관련이 깊다. 수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잉글랜드에서 기사들이 상대방과 싸울 의사가 없다는 의미로 손에 무기가 없음을 입증하기 위해 오른손을 건넨 유래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따라서 왼손잡이라고 해도 악수를 청하거나 응할 때는 오른손을 내미는 게 보편적인 예의다.


악수는 직접적인 신체 접촉을 통해 상대방으로 하여금 믿음과 평등함을 확인시켜 준다. 그렇다면 모든 악수가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느냐 하면 그건 또 별개의 사안이다. 미국의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가장 비근한 사례다. 그는 이른바 세력을 과시하고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한 요량으로 악수를 이용해왔다. 이른바 '악수 정치'다. 대표적인 방식이 상대방의 손을 잡은 뒤 자기 쪽으로 강하게 끌어당기는 식이다. 그밖에 메르켈 독일 총리가 악수를 제안했을 때는 아예 외면한 사례도 있었으며, 아베 일본 총리와는 19초라는 장시간 동안의 이례적 악수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렇듯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예단하기 어려운 트럼프가 '세기의 악수' 장면을 연출한 주인공이 됐다는 건 참으로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6월 12일 싱가포르의 센토사 섬 카펠라 호텔에서 북미정상회담을 갖기 위한 만남을 갖고 8초 동안의 길지도 짧지도 않은 악수를 나눴다. 1948년 분단 이래 지속적으로 적대 관계를 유지했던 북한과 미국이 70년 만에 최초로 정상끼리 만남을 가진 뒤 악수를 나눈 까닭에 우리는 이를 '세기의 악수'라 칭한다.


세기의 악수 ⓒKBS


당시 우리가 가장 눈여겨 보았던 지점은 물론 트럼프의 손이다. 평소 악수를 통해 정치적 메시지를 띄우곤 했던 그가 이번 만남에서는 과연 어떤 제스쳐를 취할 것인지 이목이 집중됐던 까닭이다. 하지만 오만방자(?)한 트럼프도 세계인의 시선이 한꺼번에 쏠린 이번 세기의 만남 당시 가졌던 '세기의 악수' 만큼은 어찌할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냥 평범한 악수로 마무리짓고 말았다.


악수는 우리의 일상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돼 있을 만큼 잦은 행위이다. 그런데 하루에도 수 차례, 때로는 더 많을 수도 있는 이 악수가 비단 트럼프의 사례처럼 요란법석을 떨지 않더라도 아주 미묘한 차이로 상대방에게 혹은 우리 스스로의 감정과 기분을 좋게 하기도, 아니면 빈정 상하게 할 수도 있다. 과연 무엇이 이러한 미세한 차이를 만드는 것일까?



다름 아닌 '악수의 세기'다. 즉, 상대방의 손을 쥘 때 힘의 강약에 따라 아주 미묘한 차이를 만든다. 보통 세게 쥐는 행위를 결례라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일면식도 없는 이성 사이가 아닌 경우 외에는 딱히 불쾌하다는 감정을 느끼기 어렵다. 갑과 을이라는 위치에서 의도적으로 억압적 관계를 과시하기 위해 강하게 쥐어 흡사 트럼프의 사례처럼 비슷한 느낌과 분위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밖에 없었다면 물론 이는 심각한 결례에 해당할 수 있겠으나, 그렇지 않은 관계에서의 경우라면 오히려 손에 쥔 힘에 비례해 상대방을 신뢰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도리어 진짜 문제는 손을 쥔다기보다 살짝 스칠듯 형식적으로 잡는 행위가 아닐까? 물론 유명 정치인들이 대중들의 악수 세례에 고통을 호소하면서 사전에 양해를 구한 뒤 행하는 악수의 경우 여기서는 예외로 하자. 간혹 대중적인 유명 정치인도 아니면서 이들을 흉내내는 이들이 있다. 지자체나 특정 단체의 행사가 있는 곳이면 으레 나타나 얼굴을 비치곤 하는 분들, 악수로만 따지자면 이분들의 그것은 완전히 대통령급 수준이다. 깃털도 저리가라 할 만큼 가볍기가 이를 데 없다.



한없이 가벼운 그 터치는 흡사 내 손이 더러워 만지기조차 싫다는 듯 닿자마자 잽싸게 빼는 모양새가 아닌가. 그래도 이분들은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기에 이런 악수를 하게 되어도 그나마 빈정이 덜 상한다. 친구나 지인 등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사람과 악수를 할 때도 이렇듯 깃털 스치듯 손만 슬쩍 갖다 댔다가 급히 빼는 이들이 간혹 있다. 겉으로는 생글생글 웃고 있으나, 왠지 진짜 속마음은 '너 따위와는 말도 섞고 싶지 않아 임마' 따위가 아닐까 하는, 순간 더러운(?) 기분이 들곤 한다. 이쯤 되면 빈정이 상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물론 애초 악수를 청했던 당사자의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악수에 응하는 상대방이 그의 속마음까지 헤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냥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행위에 반응할 뿐이다. 우리는 비언어적 표현으로 흔히 상대방의 속마음을 파악하곤 하는데, 악수 또한 비언어적 의사소통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악수를 하지 아니함만 못하지 않을까?



악수의 세기, 어쩌면 무척 사소한 것 같으면서도 결코 사소하지 않은, 쉽지 않은 에티켓일지도 모른다. 우스갯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으나 악수의 세기와 관련한 연구 결과도 있다. 영국 라첼 쿠퍼 박사팀에 따르면, 악수할 때 유난히 손에 힘을 주는 사람일수록 건강하고 장수할 가능성이 크단다. 반면 세게 쥐지 않고 깃털처럼 스치는 사람은 쥐는 힘이 강한 사람에 비해 사망률이 70% 높단다.


뿐만 아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캐나다에서의 한 연구 결과는 악수하는 힘이 약할수록 심혈관 질환과 그에 따르는 조기 사망 위험도를 높인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렇듯 악수의 세기는 상대방에 대한 결례 그리고 악감정 유발뿐 아니라 자신의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하는 에티켓이다. 앞으로 누군가와 악수할 때는 자칫 악수(惡手)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아울러 우리 스스로의 건강을 챙기기 위해서라도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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