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 경험의 즐거움

80개의 봄 75개의 봄을 겪은 이들의 성장담 '두 늙은 여자'

새 날 2018. 9. 14.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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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으로부터 동떨어진 알래스카 유목민들에게 이번 겨울은 지나치게 혹독할 것으로 예상된다. 겨울철을 앞둔 늦가을임에도 벌써부터 매서운 추위가 느껴지는 까닭에 그동안 이들의 주 식량원이 돼주었던 사슴이 아예 종적을 감췄고, 그렇다고 하여 다람쥐 따위의 작은 동물들을 잡아 부족 전체의 끼니를 해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거친 땅 위에서 생존하기 위해 이들에게 나약함이란 결코 용인되지 않는 삶의 태도다.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족장은 결국 부족 전체를 위해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 했다. 다름 아닌 나이가 많아 생산성이 떨어지고 이동하는 데 방해가 되는 두 명의 연장자를 이번 무리 이동에서 배제시키기로 한 것이다. 80살의 칙디아크와 75살의 사가 당첨됐다. 사에게는 피붙이가 아무도 없었으나 칙디아크에게는 딸과 손주가 같은 무리에 섞여 있었다. 하지만 딸이라 한들 족장의 이번 조치에 대해 아무런 항변조차 할 수 없었다. 가족들도 이럴진대 다른 부족원들의 반응이야 불을 보듯 뻔했다. 귀찮은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만큼 공동체의 생존이 급박한 사안이었다. 결국 두 사람만 남겨진 채 다른 부족원 전체는 새로운 정착지를 향해 이동하는데...


부족으로부터 버림 받은 두 늙은 여성은 배신감에 어쩔 줄 몰라해 했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자신들을 이렇게 만든 이들에게 갖은 원망을 쏟아냈다. 내면에서는 분노가 마구 솟구치고 있었다. 특히 딸조차 자신을 두둔하지 않고 외면한 사실이 칙디아크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다가왔다. 어느새 사방으로는 온통 새하얀 눈 천지였다. 서두르지 않으면 위태로워질 게 틀림없었다.



늙은 여인 두 사람이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딱히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대로 죽을 수만은 없었다. 먼저 삶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 건 사였다. 그녀는 칙디아크에게 다가가 죽을 때 죽더라도 무언가 해보자며 의욕을 북돋는다. 추위를 대비하고 끼니 마련을 위해 다람쥐와 토끼 사냥에도 나선다. 한동안 써먹을 일 없었으나 어릴 적부터 배우고 몸에 익혀 온 여러 잔 기술들을 어렴풋이 떠올리면서 사냥 도구를 만들거나 눈 신발을 직접 제작했다.


다행히 그녀들이 직접 쳐놓은 덫에 토끼가 걸려들면서 이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치솟는다. 80개의 봄과 75개의 봄을 살아오면서 이들은 어떤 시기에 이동해야 가장 적당한가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나이 듦이 무조건 나쁜 게 아님을 몸소 깨닫게 되는 그들이다. 노화로 비록 관절과 근육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아 육체적으로는 힘이 들었으나 그녀들은 오랜 관록과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들 앞에 놓인 어려움들을 하나하나 그리고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기 시작한다.



이 책 '두 늙은 여자'는 알래스카 아타바스칸족 작가 벨마 월리스가 어머니가 딸들에게 대대로 전해주던 알래스카 인디언들의 전설적인 이야기를 소설로 옮긴 것이다. 이 이야기와 비슷한 공간적 배경이 등장했던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자'에서 주인공 휴 글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아직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던 미 서부 지역에서 곰의 습격을 받고 치명적인 부상을 입게 되나 기적처럼 살아나 온통 눈으로 뒤덮인 험준한 산악과 하천 지형을 맨몸으로 횡단한다. 대자연, 그것도 추운 겨울철 이곳 오지는 오로지 죽느냐 사느냐의 생존 법칙만 존재할 뿐이다. 휴 글래스는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며 모진 고초를 겪게 된다.


이 소설 '두 늙은 여자'를 읽다 보면 문득 영화 '레버넌트'의 그 가혹했던 자연환경이 떠오른다. 스스로 생존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린 이들 여성은 힘겨운 고통과 역경을 하나하나 극복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점차 성장해 나가기 시작한다. 놀라운 변화다. 극한 환경이 이들의 내면에 잠자고 있던 무언가를 제대로 건드린 셈이다. 무리에 섞여 있을 때만 해도 젊은이들에게 의지한 채 아주 사소한 사안조차 불평 불만만을 늘어놓기 일쑤였고, 충분히 걸을 수 있었음에도 늙었다는 사실을 굳이 내색하고 싶어 일부러 지팡이를 짚으며 어렵사리 걸음을 내디뎌 공동체 생활에 짐만 되게 했던 그들의 최근 행동을 결국 반성하기에 이른다.


연장자로서 그들이 그동안 축적해온 경험과 지혜를 공동체와 나누며 함께 발전을 꾀하고 젊은이들로부터 존경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나이가 무슨 벼슬인 양 행세해왔음을 비록 늦었지만 이제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숱하게 보아온 성장담은 대부분 젊은 사람들 위주의 것이었다. 80개의 봄과 75개의 봄을 경험한 이들의 놀라운 성장담은 그래서 젊은이들의 그것과 비교해 볼 때 색다른 묘미와 깊은 울림을 선사해준다.



나이가 들수록 변화에 대응하는 속도가 떨어지고 급기야 변화로부터 이탈하게 되는 경우가 잦다. 실제로 뇌의 퇴화가 이와 같은 결과를 만들어낸다. 때문에 변화나 시류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그저 화려했던 과거의 영화에 갇혀 지내는 어른들이 주변에 제법 많다. 그에 비해 칙디아크와 사는 자신들에게 주어진 처지와 환경을 재빨리 간파하고 나이 때문에 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선입견을 과감히 떨쳐낸 뒤 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함으로써 생존에 성공하게 되고, 더불어 자신들을 잔혹하게 내차버린 공동체로부터 다시금 존경을 한몸에 받게 된다.


이 이야기는 나 자신과 사회에 시사하는 바 크다. 덕분에 늙어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에 리스트 하나를 추가해본다. 근래 외양은 멋지게 늙었으나 뒤틀린 가치관을 지닌 어른들이 지나치게 많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들고 광장에 나와 배후에 정치적 목적을 띤 세력의 말도 안 되는 주장을 그대로 읊거나 추종하는 어른들을 볼 때면 왠지 낮부끄럽다. 메신저를 통해 유포되는 가짜뉴스를 주변 사람들에게 전파시키면서 쉽게 흥분하는 어른들을 보면 괜시리 안쓰럽다.


청년세대의 앞날이니 우리 사회의 발전 따위의 담론과 당신들의 행위 사이의 간극은 멀어도 너무 멀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우리 때는 그러지 않았노라며 요즘 청년들더러 노오력이 부족하다고 부지런히 깎아내리는 어른들의 모습을 볼 때면, 아울러 자신들의 가치관과 신념만이 전부 옳은 것인 양 착각하며 억지 주장하는 어른들을 볼 때면, 그리고 나이가 무슨 벼슬인 양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어른들을 볼 때면, 왠지 마음 한켠이 씁쓸해진다. 이들에게 권장하고 싶은 소설이다.



저자  벨마 윌리스

역자  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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